잃어버린 내 이름을 찾아서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썅년이었다
어떤 후배가 좋은 후배인지, 어떤 후배가 나쁜 후배인지 생각해본다. 그 조건에 따르면 나는 좋은 후배일 수 있을까? 자신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후배는 또 같이 일하고 싶은 후배다. 최고로 좋았던 후배로 떠오른 사람이 있는데 그녀를 지칭해 A라고 하자. A는 어린데도 또래로 느껴질 정도로 생각이 깊고 어른스러웠다. 그녀는 비유하자면 네이버페이 같은 후배였다. 요란스레 알을 까놓고도 1원, 2원 주는 카카오페이와 달리 가맹점이 많아 사용할 수 있는 곳도 많고 적립율도 높은 네이버페이.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A와 나는 꽤 많은 프로그램을 함께 했다. 같은 프로그램을 하지 않을 때에도 큰 힘이 되었다. A와 함께라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처럼 든든했다.
그 밖에도 좋은 후배들을 많이 만났다. 일하면서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버틸 수 있었던 건 좋은 후배들 덕분이다. 방송작가의 경우, 연차별로 팀이 꾸려지기 때문에 비슷한 연차의 동료를 만나기 쉽지 않다. 동갑이더라도 몇 개월 차이로 선후배가 되어 마냥 편하진 않다. 호칭은 ‘언니’지만 전혀 가족 같지 않은 분위기 때문에 동갑인 선후배 사이에서도 말을 놓네, 안 놓네 눈치를 봐야 했다.
그리고 나쁘다.. 고 하긴 힘들지만, 나와 맞지 않았던 후배도 있었다. 그녀를 B라고 부르자. B는 나 때문에 방송작가를 그만두었다.
그때는 나도 후배를 받아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미숙한 선배였다. 그간 스스로 알아서 일을 잘하는 후배들만 만났던 터라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끌어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처음 느꼈다. B에게 자주 화를 냈던 이유는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실수가 고쳐지지 않아서였다.
B가 문서를 줄 때마다 내가 오타 체크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보도자료를 못 쓰는 것도, 자료조사가 부족한 것도 화가 나지 않았다. 알려주고 함께 하면 되니까. 그런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신입이었다면 이해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경력이 3년이나 있었고 다른 후배에겐 자신이 선배랍시고 텃세를 부리고 있었다.
나도 후배였던 때가 있고 무서운 선배들에게 일을 배워서 누구보다 좋은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몇 번 따로 불러내어 최대한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너에게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우리 함께 노력하자.” 그런데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더 이상 B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최소한의 일만 시켰고 문서에 오타가 있어도 내가 수정했다. 일은 더 많아지고 피곤해졌지만 그 아이를 혼내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편했다.
얼마 뒤, 그 아이가 일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 이유를 말했고 핑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B가 그만두는 건 나 때문인 것 같았지만 미안하거나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B는 결국 방송작가를 그만두고 부모님께서 카페를 차려주셔서 사장님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느꼈다. 방송작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으니까. 자영업은 잘 해낼 수 있을까 미심쩍었지만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중에야 그 후배가 편집실에 가서 조연출, PD들에게 자기 혼자 일을 다 하는 것처럼 입을 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B가 바라는 자신의 모습은 실수 연발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혼자서도 일을 잘 해내는 방송작가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바라는 모습처럼 되는 게 쉽지는 않지.
내가 그 아이를 이렇게 떠올리듯 나도 B에겐 최악의 선배였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를 이해하는 것처럼 언젠가 나를 이해하게 되는 날이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B의 인생에서 잘 된 선택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