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나, 엄마의 나에게
나는 엄마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주기를 서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느껴졌다. 내가 그렇듯 엄마도 나를 이해하지 못 해서 내내 서운했다.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 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됐다. 진통 끝에 아기가 탄생한 분만실에서 웃고 기뻐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를 보는 사람은 엄마뿐이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엄마뿐이었다.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에 읽었던 엄마의 일기를 떠올렸다. 오랜 시간, 나에게 자양강장제 역할을 해줬던 엄마의 사랑을.
1987년 9월 25일 (음력 8월 3일)
새벽 3시부터 잠을 깨워버린 배는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은 약 20분 간격,
한 시간 이상을 혼자 아파하다가
4시가 넘어서 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7시쯤 해서 10분을 못 넘기고서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혼자서 방에 누워서 통증을 이겨야만 했다.
9시가 넘고 10시가 다 되어서 산파가 왔다.
예정일을 묻고 나이를 물었다.
예정일보다 15일 지났다.
다른 사람보다 자궁이 길고
다른 이유 때문에 예정일보다 늦어졌다고 했다.
주사를 맞고
배는 쉴 틈도 없이 쥐어짜듯 아파온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너무 아파서
정말 죽고 싶을 정도였다.
세상에 이런 아픔이 또 있을까.
유난히 길고 긴 탯줄을 감고서
딸아이는 탄생했다.
아이가 내 몸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아팠던 통증은 깨끗이 사라졌다.
너무나도 신기하리 만큼 허전하다.
어머님은 서운하신 모양이다.
아들을 무척 기다리신 모양이다.
그러나 난 그렇지가 않다.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고
내 아이라는 것
비록 남들이 봐선 안 예쁠지라도
난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쁘다.
사랑으로 충만한 아침 되게 하소서
잠 깨면
충만한 미소 짓게 되는 사람이 함께 있으니
이 아침은 참으로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이는 시간이어라.
햇빛처럼 환한 웃음 내게 던지는 그대여.
좋은 아침.
행복한 하루가 되길 빌어드립니다.
그대와 함께하는 순간들.
내게는 영원한 행복이어라.
아, 꿈처럼 환상적인 아침을 맞게 하는
행복의 요정이여.
나의 행복을 영원히 지켜주소서.
BLUE BIRD, 보석처럼 투명하고 영롱하여라.
청조, 푸른빛이 달린 새야.
파랑새, 너의 꿈을 한껏 펼치고 날아보아라.
24살의 엄마는 아빠를 만나 1년 만에 결혼을 하고 그 해에 나를 낳았다. 아빠는 8남매 중에 넷째였지만 엄마는 맏며느리 역할을 하며 큰아빠의 속옷까지 손빨래를 했다. 날마다 작은아빠의 도시락을 쌌고 고모들을 챙겼다. 고모들은 대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거나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남을 때면 집안일을 하는 엄마 대신 나와 놀아주곤 했다.
엄마는 병원이 아닌 메주가 걸려있던 작은 구석방에서 나를 낳고도 몸조리를 못 했다. 딸이었기 때문이다. 출산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쭈그려 앉아 손빨래를 했다. 그때 때마침 집 담장 너머 고등학교 방송에서 김연숙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단다.
“먼 산 부엉이 밤새워 울어대고
앞 냇 물소리 가슴을 적실 때
나는 사랑이 무언 줄 알았네
그러나 당신은 나를 두고 어딜 갔나
아아, 그대를 기다리네
돌아와요 내게 돌아와요
기다리는 내 사랑”
엄마는 결혼 후에 군대(대체복무)를 간 아빠를 원망하지 않았다. 빨래를 한 아름 안겨준 할머니도 밉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 줄 알았단다. 엄마가 이렇게 살 듯 나도, 내 동생도 이렇게 살줄로만 알았단다. 그때는 그랬단다. 그때 엄마의 나이는 고작 24살이었다. 24살 때에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면서 꿈, 희망 같은 단어들로 가슴이 뜨거웠던 시기였는데 24살의 엄마는 어떤 가족의 일원이 되려고 혼자 낯선 시댁에서 생활했다. 그간 열심히 모은 돈을 모두 시아버지께 드렸을 때, 홀몸도 아닌 몸으로 남편의 일곱 남매와 시부모님의 뒷바라지를 할 때, 내 엄마가 되었을 때. 짧고도 긴 2년 6개월이란 시간이 큰 상처로 남았던 엄마. 엄마는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