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나, 엄마의 나에게
예전에 20대의 어느 날, 엄마와 운동 삼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의 나는 취업이 되지 않아 힘든 시기였다. 가끔 심하게 우울해서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고 엄마에게 털어놓은 적 있었다. 엄마는 운동으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힘들게 운동하고 피곤하면 우울할 틈도 없을 거라며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누구나 그 정도 우울감은 갖고 있다고 사는 게 바쁘면 모두 잊힐 거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30대의 어느 날, 아이를 낳고 17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에 결국 나는 병원을 찾았다.
처음 우울증 때문에 병원을 찾기 전 날을 기억한다.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엄마가 아닌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병원에 가는 게 맞는 걸까? 이 정도는 우울증이 아닌 것 같은데. 병원에서 꾀병이라고 그냥 돌아가라고 할 것 같아.”
병원은 예약제로 운영되어 일주일 전부터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일주일간 내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한 게 잘 한 선택인지 아닌지 계속 고민했다. 병원을 가게 된 계기는 스스로의 감정을 제어할 수 없는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가 울고 떼를 쓸 때 아직 어리니까 그러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났고 그런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가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힘들었구나. 한 번 가봐. 가보고 아니면 돌아오면 돼.”라고 말해주는 친구에게 용기를 얻고 병원에 방문할 수 있었다.
첫 내담엔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비교적 꼼꼼하게 검사가 진행되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자율신경(스트레스)검사와 beck 작성 검사를 하고 약 30분간 무엇 때문에 병원을 찾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등에 대해 상담을 받았다. 검사 결과 중증의 우울증이었다.
사소하게 감정이 제어가 안 되는 부분부터 출산 후유증이라고 생각했던 기억력 감퇴, 성격인 줄 알았던 우유부단함도 우울증 증상이었다. 기억력 감퇴는 무언가를 기억하는데 쏟을 에너지가 없어서 발생하는 거라고 하셨고 우유부단함은 스스로가 내린 결정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일 자신감 부족과 두려움 때문에 결정 장애로 이어지는 거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한 번은 아이가 울어서 남편이 짜증을 내니까 혼자 아이를 데리고 집 앞에 산책을 나선 적 있다. 집 앞에 있는 카페, 놀이터, 마트, 공원,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겠어서 집 앞을 30분간 배회했다. 결국 어딘가 들어가긴 했지만 추운 날씨에 못난 엄마 때문에 아이까지 고생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 밖에도 식당이나 카페에서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일이 늘었다.
엄마의 말처럼 힘들어도 혼자 견디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도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많았으니까. 살이 쪘을 때, 취업이 안 돼서 스트레스받을 때, 일이 힘들 때에도 견뎠고 이겨냈다.
의사 선생님께선 “혼자서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었을 거예요. 다만 넘어졌을 때 혼자 서는 것보다 누군가 손을 잡아줬을 때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도움을 받으면 그 기간을 더 단축시킬 수 있고 조금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셨다. 그리고 지금까지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본 덕분에 잘 버틸 수 있던 거라며 격려해주었다.
출산을 하면서 급격하게 살이 쪘고 육아를 하면서 9년간 하던 일을 그만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내 뜻대로 안 되는 육아도, 일 때문에 바쁘고 예민한 남편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산후조리로 친정에서 머물던 100일이 지나고 10평 남짓 우리 집으로 돌아와 종일 아이와 단둘이 있었다. 허리디스크가 생겼지만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울고 떼쓰는 아이를 내내 안고 있어야 했다. 남편은 일 때문에 바빠서 가끔 집에 들어왔고 피곤에 지쳐 기면증처럼 잠들었다. 애가 울면 짜증을 냈다.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스스로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은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내가 몰랐던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주 양육자는 누구인가요?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나요?” 나는 남편이 바빠서 거의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는 것과 친정에서 엄마의 도움을 받아 100일간 산후조리를 한 것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반면 잔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상하게 선생님께선 자꾸 엄마에 대해 물어보셨다.
“엄마는 잔소리가 심한 편이에요. 자연분만을 하는 게 아이에게도 산모에게도 좋다, 모유수유를 해라, 나는 너희를 그렇게 키웠다. 시어머니가 따로 없어요. 시어머니조차 조심스러워하는 얘기들을 친정엄마라는 이유로 편하게 하시죠. 나이에 비해 좀 고지식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원래 엄마와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자취하고 결혼하며 서로 거리를 두게 되니까 더 애틋해진 것 같아요. 제가 아이 엄마가 되면서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되기도 했죠.”
내 딸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사랑받는다고 느끼도록 표현도 많이 해주고, 내가 아니라 딸이 배우고 싶은 걸 가르치고 싶었다. 자신 때문에 부모가 무언가를 포기하고 희생했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던 것들은 생각하다가 그것들은 사실 내가 엄마에게 바랐던 것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언젠가 내 딸이 자라서 우울증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내더라도 나 때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끔 남편이 예민하다고 말할 정도로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있어서 거리를 유지하다가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으면서 친정엄마와 자꾸 부딪히게 되니까 그 부분에서 우울증이 좀 심화된 것 같아요.”
내가 부족하거나 육아에 소홀했던 남편 탓만 하면서 병원에 방문했던 터라 선생님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를 낳을 때 유일하게 날 위해 울어준 사람이 우리 엄마인데,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인데 그런 엄마 때문에 내가 우울증이 심해진 거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해 치료를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물도 좋은 영향을 미쳤겠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에 큰 힘을 얻었다. 그는 나에게 관심이 없지도 않고, 자신의 상황에 버거운 사람도 아니었다. 나의 힘듦을 알아주면서 어딘가에 얘기할 가능성도 없는 100% 완벽한 타인이었다. 병실을 나서면 다시는 볼 일 없는 대나무 숲이었고, 일주일에 한 번 10분간 숨을 쉴 수 있는 구멍이었다.
나는 처음 만난 낯선 사람이 가족보다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