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나, 엄마의 나에게
어렸을 때부터 나는 평범한 아이였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라 눈에 띄지 않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집에서는 동생과 싸우거나 엄마 말을 듣지 않는 개구쟁이였고 친구들과 노느라 학원을 빼먹고 학습지도 밀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옷을 벗겨 집에서 쫓겨나거나 엄마의 손에 잡히는 걸로 맞았다. 빗, 빗자루, 신발 등. 나중에는 아빠의 회사에서 가져온 각목이나 동생이 동아리 활동할 때 쓰던 죽도로도 맞았다. 주로 엉덩이를 맞았고 화장실에서 피멍 든 엉덩이를 친구에게 훈장처럼 보여줬던 기억이 있다.
한 번은 반찬투정을 했다가 엄마에게 뺨을 맞았다. 그때 나는 11살이었던 것 같은데 이후에 그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을 때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옛날 일이지만 그 상황이 굉장히 억울해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때린 놈은 몰라도 맞은 놈은 기억한다는 걸 느꼈다. 고등학생 때는 새벽까지 컴퓨터를 하다가 엄마에게 마우스로 맞아서 이마가 살짝 찢어졌다. 다음날 아침에 양호실에 가서 동생과 싸우다가 그랬다고 거짓말을 했다.
진짜 크게 혼났던 기억은 13살 무렵, 학원 선생님의 지갑에 손을 댔을 때였다. 당시 꽤 큰돈을 훔쳐 그 돈으로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 우리 집은 IMF 때문에 가정형편이 힘들었고 용돈이랄 게 없었다. 나는 그 돈으로 친구들에게 간식을 사고 장난감을 사주며 환심을 사려했던 것 같다. 이유가 어떻게 됐건 비 오는 날 먼지 나듯 맞았고 다시는 돈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맞아서 힘든 것보다 누군가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 더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한 번도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 내 잘못이라고 했다. 맞을 짓을 한 거라고 했다. 지금까지 내내 내가 맞을 짓을 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내가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맞을 짓을 하는 아이’는 없다는 걸 느꼈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으려고,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으려고 강박적으로 노력한 바탕에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상처받은 내가 있었다. 나는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고 함께한 행복한 기억도 있다.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땐 내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사랑을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젊고 서툴렀던 엄마를 이해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엄마는 나한테 왜 그랬지? 나라면 안 그랬을 텐데’라고 불쑥불쑥 화가 올라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우리 엄마처럼 내 딸에게 상처를 줄까 봐 무서웠다. 그 두려움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몇십 년간 곪은 상처가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몰랐다.
처음 내가 우울증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엄마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모가 그러는데 육아 우울증은 다 남편 때문이라더라.”며 육아에 소홀한 사위 탓을 했다. 엄마는 세계가 좁은 사람이었다. 본인이 보고 들은 것, 본인이 아는 정보, 본인이 만난 사람이 세상의 전부였다. 엄마는 혼자만의 <트루먼 쇼>를 찍는 사람이었다. 집 밖에 나가는 것을 경계했고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몇 년간 우울증 치료를 받는 나를 보면서도 엄마는 아직까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엄마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기에 엄마도 우울한 시기가 있었다. 그때 엄마는 술을 마시거나 아빠와 싸우거나 운동을 했다. 그렇게 이겨냈다고 믿었다. 자신만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일에 나나 가족들이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본인을 놀리거나 괴롭힌다고 느꼈다.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상처받은 얘기들을 엄마에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