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나, 엄마의 나에게
엄마는 과거를 떠올리기 싫어했다. 유년 시절은 힘들어서, 나이가 들고는 후회되는 기억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나와 동생이 자리 잡지 못하고 힘든 게 모두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느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내가 괜찮지 않은 것에 대한 죄책감만 더해졌다. 엄마와 대화는 표현하지 말자는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렇듯 우린 서로에게 힘내라는 말 한마디가 어려운 관계였다.
우리의 관계에서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한 적 있다. 하지만 입장 바꿔보면 엄마의 인생도 상흔뿐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피해자였다.
처음에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는 얘기에 엄마는 큰 충격을 받았다.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했다.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화를 냈다. 나도 알고 있다. 그 시절, 그 모든 것들이 엄마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운한 것들만 떠올랐다. 첫째라서 받은 혜택과 사랑, 동생보다 먼저 가졌던 두 발 자전거, 디지털카메라, CD플레이어와 MP3, 함께 쑥을 캐던 순간, 늦은 밤까지 기다려주던 엄마, 무거운 가방을 대신 들어주던 귀갓길, 둘이 떠났던 여행은 모두 잊고 있었다. 좋은 추억들은 기억의 밑바닥에 깔려 쉽게 잊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깨달았지만 정작 엄마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빠에겐 그러지 않으면서) 자기 탓만 하냐고 화를 냈다. “그만큼 내가 엄마를 좋아하니까. 엄마에게 갖는 기대가 컸으니까 그렇지.”라고 대답했고 엄마와 함께 둘 다 눈물을 흘렸다. 처음부터 엄마를 탓하고 싶던 건 아닌데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우리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각자 다르지만, 서로에게 받은 상처는 다르지 않았다. 사랑 때문이었다. 서로의 존재에 행복하면서도 마음 같지 않은 날들이 이어졌다.
과거의 나는 늘 예민했다. 어떤 일에도 화가 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처럼 날이 서있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애증이라는 단어처럼 사랑하는 만큼 원망했다. 사랑이 클수록 아픔도 컸다. 엄마에게 더 많이 사랑받고 인정받고 좋은 말만 듣고 싶어서 자꾸 서운해졌다. 서운함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엄마에게 꽂혔다.
뒤늦게 소중함을 깨닫고 후회하는 건 자식의 운명일까? 일부로 안 좋게 되라고 하는 부모는 없다. 최고로 좋은 것만 해주고 싶어도 부족한 게 부모의 마음인데 엄마라고 달랐을까. 다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사랑을 사랑으로 표현하고 싶다. 후회를 내 몫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