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나 엄마의 나에게
어린 시절의 엄마는 바나나를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바나나는 어떻게 생겼어? 무슨 맛이야?” 그런 엄마에게 외할머니는 바나나가 가지를 닮았다며 달고 맛있다고 이야기해주셨단다. 어렸던 엄마는 바나나는 부자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가난한 형편의 외할머니께서 어떻게 바나나를 먹을 수 있었을지 놀랐다. 어린 마음에 “바나나도 먹을 정도로 부자였는데 지금 고생을 하고 있네.”라고 말했더니 외할머니께서 “우리 선자는 나중에 자라서 맛있는 것 많이 먹게 될 거다.”라고 해주셨단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먹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빠의 끼니 걱정 때문에 친구들과 여행 한 번도 안 갔다. 어느 날, 나와 단둘이 강릉으로 1박 2일 놀러 갔던 때에는 반찬에 김까지 구워놓고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자신을 밥순이로 안다며 서운해하면서도 따끈따끈한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했다.
그런 엄마는 집에서 대접을 받아야 밖에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며 남편에게 집밥으로 힘을 줘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며 엄마와 다툴 준비를 했다. 손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도 못 챙겨 먹는 밥을 만들어 먹여야 된단 말이야? 엄마는 나에게 “그러려고 결혼했어?”라며 화를 내고 나는 “이러려고 결혼한 줄 알아?”라며 화를 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싫었다.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길 바라면서도 같은 방식을 강요하는 엄마가 싫었다.
우리 남편은 엄마(장모님)가 해준 음식이라면 뭐든 좋아해서 처가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뭐든지 그렇게 잘 먹었다. 언젠가부터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나도 요리를 했다. 뛰어난 실력은 아니더라도 남편이 좋아하는 밥맛을 위해 돌솥을 구입했고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 김치볶음밥에는 계란 프라이, 떡볶이에는 튀김, 남편이 좋아하는 조합으로 식사를 준비했다. 맛있게 먹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엄마가 왜 그렇게 집 밥, 집 밥 노래를 불렀는지 알 것도 같았다.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요리하는 것, 그게 엄마의 사랑이었다.
엄마는 사랑을 못 받아서 표현하지 못했다며 지난 시간을 사과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