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 나 엄마의 나에게
염색을 했다. 44000원짜리 염색을 하려고 미용실에 방문했는데 새치염색은 77000원이라 컷트까지 총 9만 원이나 썼다. 뿌리에서 멀리 검은 머리가 자라는 것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건 듬성듬성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흰머리들이었다. 하나, 하나 늘어나기 시작해서 이젠 남편이 귀찮아서 안 뽑아줄 정도로 많이 났다.
지금의 내 나이였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흰머리가 나기 시작해서 13살의 내가 하나에 100원씩 뽑아주기 시작했던 때가. 언젠가부터 점점 개수가 늘어나서 하나에 10원씩 단가가 내려갔다. 그런데 머리카락을 이렇게 많이 뽑으면 머리숱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은데?라는 핑계로 흰머리를 뽑지 않기 시작했다. 사실 귀찮았다. 엄마의 머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족집게도 없이 흰머리를 뽑는 시간이 지루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아빠는 쉰이 훌쩍 넘고서야 흰머리가 하나, 둘 나기 시작했다. 얼굴이 동안이라 콤플렉스라며 염색 한 번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와 함께 나가면 부부로 오해받곤 했다. 그땐 그런 일들이 즐거운 해프닝이었다. 할머니라며 놀릴 때에 발끈하는 엄마를 보는 게 재밌었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속상하고 억울하다. 남편은 “내가 머리숱은 없어도 흰머리는 안 난다”며 자신만만한 표정인데 왜 흰머리는 나만 나는 걸까? 나도 아빠를 닮아 흰머리가 느즈막히 날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를 닮았나보다. 흰머리도 유전인가?
남편이 먹고 바로 눕고 운동도 안 해서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하자 엄마는 말했다.
“나도 그랬어. 니네 아빠는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 밖에 안 했잖아. 근데 정작 암은 내가 걸렸어. 너도 조심해.”
엄마는 아빠가 생각이 없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대신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보니 암이 생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네 신랑보다 너를 더 신경 써”라고 했다.
이렇게 하나씩 엄마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복잡한 마음이 든다. 나는 이렇게 조금씩 엄마를 떠올리며 앞으로의 미래를 대비하면 되는데 엄마는 뒤따라갈 엄마가 없어서 힘들었겠다. 쓸쓸하고 외로웠겠다. 무서웠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