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내 이름을 찾아서
아카데미를 다니기 전까지는 한 번도 방송작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들이 방송작가를 해서 나도 했다. 비교적 문턱이 낮아 보였던 것 같다. 아카데미를 이수만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는 방송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었고 방송에 어떤 게 필요한지 몰랐다. PD나 조연출이라는 존재조차 몰랐다. 대학교를 다닐 때 교내 방송국에서 동아리처럼 활동하긴 했지만 콘솔이나 카메라 등 기계를 만졌던 터라 대본을 작성하는 쪽에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 관심이 있던 영화 시나리오를 제외하고는 대본이라는 걸 본 적도 없었다.
나 또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수능을 망쳤지만 실기를 보고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순수문학에 작은 뜻을 품고 대학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그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나 또한 소설가가 되길 꿈꿨다. 아니, 꿈꾸는 것처럼 보였다. 나보다 글 잘 쓰는 친구들이 많았고 나는 빠르게 포기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게 아까웠기 때문에 적성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게 바로 방송작가였다. 어떤 친구는 M사 교육원에 갔고 어떤 친구는 K사 교육원에 갔다. 나는 뒤늦게 H교육원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비교적 비용이 저렴해서 그쪽으로 택했다.
교육원에서 수업을 듣기 위해 먼저 면접을 봐야 했다. 면접 분위기는 경직되지 않고 부드러운 편이었다. 다른 대화는 다 잊었지만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냐”는 면접관의 질문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나의 대답은 가족이 함께 모여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금처럼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적고 대화도 줄어드는 시대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나는 면접 끝에 아카데미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방송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방송작가는 힘든 일이었다. 돈, 경력, 칼퇴 셋 중에 하나라도 있는 프로그램에서 일하려고 노력했지만 한 번도 그 조건이 충족되는 프로그램에서 일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도 있었다. 예전에 한 나눔 방송을 한 적 있었는데 연예인들의 재능기부를 통해 음원을 제작하고 그 수익을 힘든 이들에게 나누었다. 힘든 이들을 찾아가고 나누는 과정을 방송으로 제작했는데 돈도 안 되고 경력도 안 되고 퇴근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 프로그램을 할 때 좋았던 건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통해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명분. 내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명분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점점 변했다. 어떤 때에는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고 이후에는 먹고 살만큼 돈을 벌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냥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