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백일글쓰기 006
자기소개는 언제 어디서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늘은 엄마로서 나 자신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나는 32살에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었을 때엔 9년차 방송작가였는데 낮밤 없는 일정과 입덧, 호르몬 때문에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육아 5년차가 된 지금, 다른 선배들과 달리 나는 육아와 일을 병행할 자신이 없어서 아직도 (어쩌면 영원히) 복직 못 하고 있다.
이전의 삶은 전생처럼 아득하다. 아이가 생후 17개월이 되었을 무렵에 육아 우울증이 심해져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그제야 방송작가 시절에 출근할 때마다 교통사고가 나길 바랐던 마음이 우울증 증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복직할 용기가 더욱 없어졌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했기에 20대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친척동생들을 종종 돌봐주곤 했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며칠 동안 남의 아이를 보살피는 것과 24시간, 365일 내내 내 아이를 돌보는 건 천지차이였다. 게다가 친정 엄마와 관계 때문에 생긴 강박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도 치료를 받고 있다.
몇 년에 걸쳐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우울증 때문에 기억력 감퇴, 감정 기복이 심해진 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ADHD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고 인상적으로 사건들 또는 사진으로 당시 상황을 떠올리곤 했는데 그 역시 ADHD 증상이었다.
예전에 본 미셸 공드리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좋고 행복한 추억들은 나쁜 기억들 밑에 켜켜이 가라앉아 있는 줄 알았다. 내가 그렇듯 다른 모든 사람들도 과거를 쉽게 잊는 줄 알았다. TV 프로그램인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댄서 가비와 연예인 박소현이 성인 ADHD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전부 나 같은 건 아니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시작은 성인 ADHD의 극복과 자식에 대한 애정이었다. 내가 기억력이 나쁘다,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했기에 예전부터 자신을 믿지 못했다. ADHD 진단을 받은 후에는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강해져 기록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사랑하는 딸의 모든 모습, 행복한 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일기, 사진, 동영상으로 기록했다. 그때부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육아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취미지만) 유튜브도 한다.
비로소 36살의 나는 ‘이청조’라는 이름과 ‘방송작가’라는 직업 대신 ‘똥똥엄마’가 되길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