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백일글쓰기 027
오랜만에 친정에 왔다. 원래 친정은 집에서 10분 거리의 아파트였는데 부모님께선 코로나를 계기로 1시간 거리의 전원주택에서 지내고 있다. 내 딸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할머니 집을 좋아하는데 주말이고 남편은 바빠서 단둘이 오게 되었다.
우리는 차가 없는 뚜벅이라 택시를 타고 한 시간 거리를 달려 도착했다. 오랜만에 차를 타니까 멀미 때문에 속이 메슥거렸다. 그런데도 도착해서 밥을 보니까 입 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있던 찬밥에 국을 말아먹었고 친정 엄마가 새로 김치전을 부쳐주었다. 특별할 것 없는 밥상인데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음식을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그냥 좋았다. 그동안 늘 먹어도 속이 허하고 배고팠는데 밥 반공기만으로 간단히 든든해졌다. 어쩌면 그간 내가 고팠던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딸이 종일 내 곁을 서성이는 것처럼 나도 친정엄마의 옆에 머물렀다. 친정집엔 TV가 두 대인데도 굳이 엄마와 함께 방송을 봤다. 품에 안긴 내 딸이 “엄마, 이거 봐!”라며 쫑알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친정엄마가 “네 엄마 아니라 할머니 딸이거든.”라고 장난치며 말했다. 그 말이 굉장히 낯설어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분명히 내 얘기인데 나를 말하는 게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딸이라는 호칭보다 엄마가 익숙해진 것은. 문득 앞으로 엄마를, 아빠를 보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훌쩍 자란 딸과 함께 하고 싶은 게 많은데 한 편으로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서 부모님의 곁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리고 젊을 때에는 언제나 좋은 딸이 되길 바라며 노력했다. 이제 나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산다. 나의 평생은 딸이었고 남은 평생은 엄마로 살아갈 것이다.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았다. 내 인생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다른 이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해서 정작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잊었지만 이런 내 삶이 싫지 않았다.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 믿었다. 한 번도 엄마, 아빠의 딸로 태어나 내 딸의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 적 없다. 그것만으로 신에게 감사한 삶이었다.
지금부터라도 엄마와 아빠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마 금방 까먹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