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밀리언 달러 베이비- 미래의 저편

cinema- 매기의 데님 캡 슬리브 셔츠

by 블루 캐롯







인상적인 첫 만남, 단호한 거절에도 프랭키를 다시 찾아간 매기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여자 아마추어 권투 선수 매기 피츠 제럴드는 자신의 시합 뒤에 이어진 경기를 지켜보다 관중석에서 온몸을 써가며 경기에 임하는 트레이너 프랭키 던을 발견한다. 프랭키에게 자신을 선수로서 키워줄 것을 제의하지만 거절당하고, 그가 운영하는 체육관에 등록해 훈련하며 다시 말해보지만 "난 여잔 안 키워!"라는 매몰찬 답변만 듣게 된다.




권투로 이어진 인연의 시작된다 / 이미지 출처-영화 캡처



전직 프로 복서로 프랭키의 체육관 시설 관리인으로 일 하는 에디 스크랩 아이언 듀프리스는 영업시간 종료 후 어둠 속에 홀로 연습 중인 매기가 잘못된 방법으로 샌드백을 치는 모습에 시범을 보이고 펀치볼을 찾아 빌려 주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를 뒤에서 조금씩 돕게 된다. 본인의 펀치볼로 연습하는 매기를 본 프랭키는 여자가 30대의 늦은 나이에 선수로서 운동을 시작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충고한다.



갑작스러운 윌리의 소속 이전 통보에 하루아침에 담당 선수를 잃은 프랭키는 늦은 저녁 스크랩을 찾아갔다가 연습 중인 매기를 본다. 당일 생일을 맞아 늘어난 그녀의 나이를 묻자, 밑바닥 인생인 자신의 처지를 얘기하며 말한다. 그럼에도 권투가 좋다고. "서른두 살이 늦은 거라면 저한텐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오직 권투에서만 삶의 희망을 찾는 모습에 그는 매니저를 구해 줄 때까지라는 조건부로 수락하며 선수로서 받아들인다.







(좌) 영화의 감독 겸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원작 소설가 제리 보이드(필명: FX Toole) / 이미지 출처- 구글
(좌) 2000년 발간된 초판 북커버, 영화 개봉 후 인기에 힘입어 제목을 바꿔 재판한 2004년 북커버, 2016년 복간한 북커버 / 이미지 출처- 아마존



권투라는 운동이 삶의 중심이며 전부인 사람들의 이야기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 >. 최고의 컷맨(지혈 전문가)이자 권투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늦게 시작한 꿈인 권투 선수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여자 매기(힐러리 스웽크), 권투를 사랑하는 청년들을 조용히 돕는 체육관 관리인 스크랩(모건 프리먼)으로 분한 세 배우의 섬세하고 노련한 캐릭터에 대한 몰입은 이야기의 실제감을 부여하며 다가와 관객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힐러리 스웽크는 여성 복서를 실감 나게 연기하기 위해 혹독한 트레이닝으로 짧은 시간에 근육을 8.6kg 증량하고 매일 운동으로 단련한 외형을 만들어 권투 시합 장면도 대역 없이 소화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 운동선수의 배역을 훌륭히 해냈다.




영화는 2005년 제77회 아카데미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을 수상 하는 영애를 얻었다. 주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할리우드 서부 영화의 대스타로 이름을 알리며 명성을 쌓았고 1971년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영화감독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다. 그가 만든 다수의 명작 중에서도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흥행은 물론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으며 배우 데뷔 이후 겸업으로 시작한 영화감독에 대한 재능을 온 세상에 인정받게 했다.




단편 소설 원작인 영화는 미국의 소설가 제리 보이드(필명: FX Toole)의 <로프 번스: 코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Rope Burns: Stories from the Corner)라는 소설집에 수록된 6개의 단편 중 'Million $$$ Baby'에 중점을 두고 각본가 폴 해기스가 각색하여 만들었다. 권투 매니저와 지혈 전문가로 25년 넘게 권투 업계에 몸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로 그는 영화의 주인공인 매기와 같이 가난 속에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다 갔다. 명작 영화를 탄생시킨데 기여한 이 소설집도 죽기 2년 전인 2000년도에 처음으로 발간된 책이다. 자신의 소설로 만든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는 놀라운 모습에 가장 기뻐했을 원작자가 끝내 이를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좌) 2004년 미국 개봉 당시 포스터와 2005년 한국 개봉 당시 포스터 / 이미지 출처- 구글
2005년 한국과 일본 개봉 당시 영화 전단지 / 개인소장




2004년 개봉 당시 미국에서 만든 메인 비주얼 포스터는 흑백 톤으로 영화 주역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표정 연기와 극 중에서의 비중을 크기 차이로 나타내고 빛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하이라이트가 가장 강조되는 주인공 매기의 등 근육은 권투 선수로서 단련한 열정의 산물인 몸과 다부진 표정의 측면 얼굴을 보여준다. 대비가 큰 흑백 음영으로 인해 눈 밑과 입가의 주름이 도드라져 멀리서 보면 흡사 눈물 자국 같은 모습에 비장한 각오마저 느껴진다. 이어서 빛은 프랭키의 얼굴로 향하여 고뇌에 가득 찬 모습을 보여주고 희미하게 남은 빛은 두 사람을 지켜보는 스크랩의 존재를 인지시켜 주며 사라진다. 빛과 어둠의 대비로 표현한 얼굴 표정은 이야기의 중대 사건을 응집해 그들이 처해질 슬픈 미래를 암시하며, 영화를 구성하는 전체적 톤 앤 매너인 블랙&화이트까지 한 번에 포함시킨 정말 잘 만들어진 포스터다.




반면 2005년 국내 개봉 당시 수입사에서 오리지널 포스터의 색감과 캐릭터의 모습이 영화적 감동을 전달하기엔 부족하다 판단해 감독에게 여러 시안을 보여준 뒤 채택 되었다는 국내용 포스터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로선 흔치 않은 여자 복서의 얘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글러브를 낀 손을 전면에 내세우고 주인공을 중앙에 배치, 양 옆엔 중요 인물이 자리했지만 스토리를 담았다기엔 임팩트가 떨어지는 표정과 애매모호한 얼굴각도 및 시선은 포스터 제작의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 영화적 감동과 이해를 돕기보다 흥행몰이 요소가 미흡하다고 판단한 결정으로 만들었음이 보인다.




한때 이 영화는 결말부에 있을 무거운 내용으로 제작사가 투자를 기피해 각본을 완성하고도 오랫동안 만들지 못했다. 내용과 분위기를 함축하는 포스터의 기능을 따르자면 오리지널 포스터를 사용하는 게 알맞다고 할 수 있지만, 많은 관객이 보아야 돈을 버는 수입. 배급사의 입장에선 티켓을 예매하기 전부터 어두운 결말이 예감되는 영화를 꺼려할 소수의 관객조차 사전에 이탈 여지를 주지 않는 안전한 선택이 유혹적 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국내에서 만들어진 포스터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고 다른 나라 개봉에도 영향을 주어 오리지널 이미지를 대신해 메인 포스터로서 쓰이게 된다. 일본의 경우 한국 포스터를 기본 틀로 하되 미흡했던 인물 사진을 변경하고 권투 선수를 떠올릴 추가 이미지를 보강해 재해석한 포스터로 관객에게 영화를 알렸다.





어둠 속에 묻힌 듯 보이는 빛의 표현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오리지널 포스터에서 보여준 흑백의 명암 대비는 이 영화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시각적 메시지다. 영화 속 음영이 강조된 인물 표정과 배경의 묘사는 빛과 어둠의 공존이 당연한 것처럼 삶과 죽음도, 행복과 불행도 맞닿아 있음을 말한다. 빛이 가득 차 환한 세상보다 칠흑같이 어두운 암흑이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일생을 통틀어 만나기 힘든 소중한 존재를 뜻하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영화의 제목으로 사용해 어둠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도 작지만 빛나는 행복을 마주 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빛이 희박하고 전반적으로 어둡게 깔린 화면이 만든 세상은 상대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색채의 주목도를 높인다. 덕분에 이야기 속 캐릭터의 서사를 만드는데 필요한 장소와 배경, 심리와 속뜻을 담은 옷차림에 표현된 컬러는 자연스럽게 보는 이의 뇌리에 명료하고도 강렬한 인상을 주게 된다.







매기를 상징하는 붉은 버건디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불타는 사랑이라는 빨간 장미의 꽃말처럼 권투를 좋아하는 마음을 자신의 주먹에 실은 열정 하나만을 밑천으로 30대의 나이에 여자 프로 권투 선수가 되려고 노력하는 매기. 그녀를 대표하는 버건디(Burgundy) 컬러는 운동복과 착용하는 글러브 및 체육관 안의 주변 용구나 배경에도 함께 나타난다. 체육관에 있는 총 4개의 샌드백 중 오직 붉은 버건디 색만 이용하며 손의 보호와 타격감 상승을 위해 휘감는 밴디지(Bandage) 조차 같은 색상만을 쓴다. 이 색(色)은 고된 삶 속에서도 아름답게 지켜내고 있는 꿈, 권투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열정을 상징한다.




극도의 절약으로 이어가는 매기의 꿈을 위한 노력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자산이라곤 튼튼한 몸이 전부인 매기는 16살 때부터 식당일을 하며 집안의 가장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28살에 권투의 꿈을 갖고 독학으로 훈련해 아마추어 권투 선수가 된다. 그러다 31살이 되던 해 경기장에서 본 트레이너 프랭키를 스승으로 삼아 권투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 여자는 키우지 않는다는 거절에도 그가 운영하는 체육관에 찾아간다. 여전히 낮에는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돈을 벌지만, 저녁엔 자신이 스승으로 여기는 프랭키가 있는 체육관에서 연습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꿈에 한 발짝 다가선 거라 여기는 긍정적인 여성이다.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식당에서 손님이 남긴 잔반을 챙겨 와 먹고 어두운 저녁에도 집안의 형광등을 일체 켜지 않으며 자신이 앉은 테이블 앞만 간신히 비출 정도의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전기세를 아낀다. 손님이 팁으로 남긴 지폐와 동전도 유리병에 차곡차곡 모아 권투 훈련을 위한 개인 용품을 마련하는데 쓴다.




낡고 오래된 평상복을 재활용해 운동복으로 입는 매기, 가난한 복서의 삶과 꿈에 대한 열망이 옷에 담겨 있다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근검절약은 연습용 운동복에서도 보인다. 수선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가위로 잘라낸 스웨트 팬츠의 밑단은 박음질이 되지 않아 하얀 올 풀림이 정돈되지 않은 채 입었다. 상의도 유행이 한참 지나 보이는 물고기 티셔츠로 평상복으로 착용하다 쓰임을 바꾼 것으로 여겨진다. 낡고 바랜 무엇하나 제대로 갖춘 게 없는 아마추어의 차림이지만, 프로 권투 선수가 되겠다는 신념은 퇴색 없이 굳건하다.



그녀의 철 지난 티셔츠의 물고기 프린트는 연어의 일생을 떠올리게 한다. 바다에서 살지만 번식을 위해 반드시 태어난 민물로 돌아가는 회귀 본능에 사로잡힌 존재. 거센 물살과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건 산란 여행을 위해 일생을 산다. 이것은 매기 역시 인생의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있다 하더라도 '권투'를 통해 세상에 성취를 이루겠다는 포부와 같다.



프랭키에게 선수로서 시작하기엔 서른한 살은 너무 늦었다는 핀잔을 듣지만, 한 사람의 여성으로선 아직 젊다. 예쁘고 멋진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하지만 그녀는 본인의 형편 안에서 소망을 이루기 위해 꾸밈을 내려놓았다. 여성으로서 아름다움보다는 링 위에서 경기복을 입고 땀 흘리는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아무것도 약속된 바 없는 불확실 미래에도 꿈을 꺼뜨리지 않고 자신만의 붉은 희망의 불씨를 지핀다.







프랭키를 상징하는 녹색이 체육관 내부에 보인다
그가 운영하는 'HIT PIT GYM'의 로고가 프린팅된 티셔츠의 색상은 체육관의 벽면 페인트 색깔과 유사해 일체감을 보인다.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황갈색의 시든 나뭇잎 같이 생기 없는 낮은 채도의 상의와 탁하게 톤 다운된 옅은 초록색의 바지를 입은 프랭키. 나이 든 그와 마찬가지로 낡은 체육관의 내부 인테리어는 허름한 목재에 옷과 같은 계열의 녹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노후된 시설 일부는 도색이 벗겨 저 있는 상태를 보여주며 업계에 오래 몸담아 일과 생활이 분리될 수 없는 프랭키와 권투가 동화된 모습을 나타낸다.



링 위의 최고의 컷맨(지혈 전문가)이자 권투 트레이너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8년 동안 공들여 키워온 선수 윌리가 챔피언 타이틀 도전을 미루는 미적거림에 더 이상 비전이 없다고 판단해 그를 떠난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오랜 기간 딸과도 절연 상태다.



프랭키가 선수와 가족을 모두 잃은 행동엔 망설임이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선수를 위험에서 보호하는 트레이너로서, 가족에게 안정된 삶을 주기 위한 가장으로서 의무와 책임은 망설임 앞에 되려 아끼는 대상과 결별하게 했다. 망설임이 시작된 것은 과거에 위험을 예상했지만 강하게 말리지 못해 경기 중 출혈로 눈에 피가 들어가 오른쪽 눈이 실명하게 된 스크랩을 지켜주지 못한 데서 나오는 죄책감의 일환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소중한 사람들을 처음부터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도록 최대한 안전한 경로를 택하기 위한 장치로 망설임을 쓰게 된 것이다.




프랭키를 상징하는 녹색 계열의 옷
영화의 초반 매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상의와 자신을 표현하는 녹색의 하의를 입은 프랭키, 두 사람이 사제관계가 될 거라는 암시를 보여준다
프랭키가 자주 입던 옅은 황갈색은 짙어지고 매기의 길고 무거운 연습복은 가벼운 차림새로 변한다.
매기와의 유대가 강해질수록 그를 상징하는 녹색은 점차 색상이 짙어진다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인생의 끝자락. 아끼던 선수는 갑자기 떠나고 딸과의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매주 보낸 편지는 어김없이 반송되어 상자 안에 수북이 쌓이는 반복이다. 성당에 나가 하느님께 기도하고 신부님에게 질문해 봐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상황에 이제는 나이도 있으니 체육관만 운영하며 지내려 한다. 그러나 계속된 거절에도 프랭키에게 권투를 배우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 매기의 열의에 자신에게 배워 백만 달러를 벌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키우고 유능한 매니저를 찾기 전까지만 가르칠 거라는 전제조건을 붙여 허락했다. 하지만 믿고 맡긴 매니저가 그녀를 다른 선수가 딛고 올라서기 위한 소모품으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데려와 진심으로 선수로서 끝까지 키울 것을 다짐한다.




매기를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녀를 상징하는 버건디색 옷을 입어 미리 예고된 운명적 미래였다. 트레이너로서 끝까지 함께 할 마음을 먹게 된 이후 프랭키의 흐린 녹색과 황갈색의 옷은 청록색과 갈색으로 진해지며 매기와의 유대로 뚜렷해진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매기 또한 길고 무거운 연습복을 벗고 움직임이 더 잘 보일 수 있는 짧은 상하의로 바꿔 입어, 믿고 의지할 스승 프랭키가 있어 선수로서 자신감이 붙은 모습을 운동으로 단련된 피부를 노출시키며 나타낸다.







제대로 갖춰진 유니폼의 유무는 근무 장소의 분위기와 여건도 함께 나타낸다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입었던 데님 캡 슬리브 셔츠 /이미지 출처-영화 캡처



두 사람이 각자에게 받아들여지며 하나의 안정을 이뤄 간다는 것은 '데님(Denim)'이라는 옷의 착용으로 표현되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 아마추어 권투 선수로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일하는 매기는 자신의 데님 스커트를 유니폼으로 사용한다. 직원을 위한 유니폼도 없이 근무자 개인의 옷으로 대체하는 모습은 그녀가 손님에게 팁을 받을 때조차 지폐에 스테이크 소스가 흥건히 묻은 상태로 받는 등 존중받지 못한 삶을 사는 모습에 비유다. 그러나 프랭키에게 제대로 된 훈련을 받으며 프로 권투 선수가 된 이후, 삶의 방향도 변화한다. 여전히 식당일을 겸업하지만 정돈된 새로운 환경에서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달고 가게를 상징하는 유니폼을 입어 전보다 나아진 인생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이때 그녀의 상징인 버건디색의 표현이 유니폼과 식당 내부의 카펫 및 조화 장식으로 함께 이뤄지며 밤에 체육관에서만 펼칠 수 있었던 불안전한 꿈이 낮으로도 연결돼 완전히 확립됨을 드러낸다.




일상복과 유니폼으로 활용했던 데님은 강한 내구성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던 매기에게 최고의 가성비를 준 옷이다. 무일푼에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권투는 힘든 여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 안에 자리 잡았고 그 꿈을 향한 강인한 집념을 버텨주기에 데님이 가진 튼튼한 물성은 더없이 안성맞춤이었다. 데님 소재로 된 그녀의 청바지, 스커트, 셔츠는 험난한 세상 속에 질긴 생명력으로 오랜 시간 함께 하며 고군분투하는 여자의 삶에 유일한 방패막이와 같았다.




프랭키의 지도를 받고 1년이 지나 서른세 살이 되어 프로 선수로서 실력과 경제적 여유도 생긴 시점, 스크랩은 그녀가 세계 챔피언 도전을 위해 윌리처럼 그를 배신하고 상처 주기 전에 새로운 매니저를 소개해 내보내려 한다. 우연을 가장해 식당에 나타난 매니저에게 프랭키를 안 떠날 거라며 단호히 거절 의사를 밝히는 매기. 자신의 길을 향한 확신과 프랭키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상태를 편한 티셔츠만 입던 그녀가 잘 만들어진 데님 셔츠를 갖춰 입음으로써 나타낸다. 몸의 곡선 라인을 살려주는 다트, 앞판의 더블 포켓과 타원형의 디자인 포인트가 들어간 캡 슬리브까지 깔끔한 봉제로 마무리된 셔츠는 마음의 척추와도 같이 옷의 중심을 잡아주는 카라가 있어 당당히 소신을 피력하는 때에 뚜렷한 존재감으로 뒷받침했다.




걷고 서는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모든 것을 새로 가르치는 프랭키
서로를 상징하는 색과 소재의 옷으로 나타낸 유대감
어려서부터 힘들었던 매기의 삶을 나타내는 데님 소재의 옷을 재킷과 셔츠로 입게 된 프랭키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걷고 서는 법부터 훈련하는 프랭키의 권투 트레이닝은 부모가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듯 매기와의 인연이 사제지간을 넘어서 부녀관계의 유대로 발전되어 갈 것을 뜻한다. 각자에게 딸과 아버지를 투사한 관계는 프랭키는 녹색과 버건디색을 매기는 녹색의 옷을 청바지와 같이 착용하며 권투로서 하나 된 내적 유대감을 보여준다. 프랭키가 그녀의 가난한 삶과 동행한 옷 데님을 셔츠와 트러커 재킷의 형태로 입기 시작하면서 소녀 가장으로 어렵게 살아온 지난날의 아픔까지 공감하는 사이가 되었음을 표출한다.




기량이 빠르게 성장한 매기는 경기마다 1라운드에 모두 이겨 다른 선수들과 시합 잡기가 어려워지자 체급을 올린다. 체급을 올린 뒤 곧바로 12연속 KO승을 달성하자 독일의 WBA 웰터급 세계 챔피언 푸른 곰 빌리에게 경기 제안이 들어오지만 반칙으로 유명한 선수라 프랭키는 매기 몰래 거절한다.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경기에 임하는 매기를 보호하기 위해 위험한 선수와의 대결은 잡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녀는 권투를 좋아해 경기를 뛰고 싶고 큰 시합을 할수록 많은 파이트머니를 벌 수 있다는 말로 설득하려 한다. 프로 선수로 시합하며 돈을 벌고 있음에도 식당일을 겸업하는 매기가 안쓰럽지만 많은 돈이 걸린 만큼 큰 위험에 노출된 경기에 출전시키고 싶지 않은 그의 마음은 변함없다.




권투를 통해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매기의 의지에 프랭키는 세계 챔피언에게 패한 영국 선수의 경기를 잡아 직접 알려 주기 위해 집으로 찾아간다. 낡은 세간살이와 좁고 대낮에도 어두운 모습에 버는 돈을 어디에 쓰는 거냐며 집부터 마련하라고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다 테이블에 놓인 수첩에서 그녀가 가족에게 돈을 송금한 내역을 보게 되며 왜 지금까지 식당일을 겸업했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선명히 빛나는 녹색이 함께한 두사람의 권투 시합에 찬란한 승리의 영광이 뒤따른다
프랭키가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이 입은 녹색 제의, 실크의 원재료를 만들어내는 누에 / 이미지출처- 영화 캡처, 사진- 픽사베이
매기로 인해 다가설 수 있던 신의 희망을 뜻하는 선명히 빛나는 녹색은 마침내 프랭키에게도 도달한다 / 이미지 출처-영화 캡처




영국에서 치러진 시합 전 프랭키는 선명한 녹색 바탕의 등 부분에 '모쿠슈라(Mo Chuisle)'라고 금빛 자수가 새겨진 가운을 매기에게 선물한다. 뜻을 물어봐도 게일어(스코틀랜드의 고대 켈트어)라 모른다고 둘러댄다. 어느새 관중들이 연호하는 '모쿠슈라'는 링 위에서 불리는 그녀의 별명이 되었고 이 날의 승리 이후 세계 각지의 시합에서 우승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선다.



녹색은 삶이 곧 권투인 프랭키를 상징하는 색으로 그가 입는 옷과 체육관에 보이며, 옷의 흐린 색상이 채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매기와의 유대감이 깊어짐을 표현해 왔다. 충만한 기쁨의 최고조는 생생하게 맑은 초록색의 실크 100% 가운으로 전해진다. 누에나방의 유충 누에가 초록색 뽕잎을 먹고 만들어낸 누에고치에서 추출하는 하얗고 가는 원사는 가볍고 부드러운 촉감의 고급스러운 윤광이 나는 천연 견직물로 태어난다.



프랭키가 녹색의 옷을 입고 2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성당에 나가며 신의 곁에 머물고자 한 것은 신의 대리인인 사제가 착용하는 녹색 제의가 뜻하는 생명의 환희와 희망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픈 그의 소망이었다. 수십 년을 성당에 다니며 기도해도 근접할 수 없었던 희망의 색은 매기와의 만남으로 인해 선명히 발현되고 마침내 프랭키에게 도달하게 된다. 제 몸에서 실을 만들어내는 누에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풀고 가족이 있어도 기댈 곳 없는 매기에게 진심을 담아 권투라는 꿈에 닿을 수 있는 삶의 빛을 주었기에 하느님은 그에게 창조주의 뜻을 담은 희망의 색을 허락하셨다.







매기를 곁에서 보살피는 프랭키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세계 챔피언 빌리와의 경기에서 그녀의 반칙으로 회복 불가의 부상을 얻은 매기는 경추와 척수 손상으로 평생 움직이지 못하고 자가 호흡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프랭키를 통해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다친 것을 알려 달라고 부탁하는데 자신의 몸 상태보다 오히려 부상 소식에 가슴 아파할 가족들을 더 걱정한다. 그리고 다 이겼던 경기에 순간의 방심으로 언제나 "항상 자신부터 보호하라." 했던 프랭키의 말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무치게 후회하며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매기의 병을 고치기 위해 프랭키는 미국 전역에 병원을 수소문하지만 가망이 없다는 소리만 듣게 된다. 온종일 누워만 지내다 보니 몸에 욕창이 생겨 간호할 때나, 더 나은 돌봄을 위해 재활병원을 알아보고 6시간 거리를 앰뷸런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그녀의 곁을 언제나 프랭키가 지킨다.




끝까지 매기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가족들과 피와 사랑을 뜻하는 붉은 제의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구글




재활병원으로 가족들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매기는 휠체어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며 2주를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다. 미리 도착해 실컷 관광 후 놀다 온 복장으로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난 가족들. 옷을 갈아입고 다시 오는 게 어떻냐는 프랭키의 만류에도 병실로 들이닥친다. 가족들이 반가워 미소 짓는 그녀에게 어머니는 모든 재산을 자신에게 양도하면 가족이 편해진다며 변호사 앞에서 서류에 서명을 재촉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매기를 보고 볼펜을 입에 물어서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어머니와 가족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봤는지 묻는다.




"싫어하는 걸 알잖니, 어차피 넌 졌어."라는 말과 함께 다시 입에 볼펜을 물리지만 인간성을 상실한 어머니의 모습에 서명을 거부하고 다신 찾아오지 말라며 가족들을 쫓아낸다. 매기가 권투 선수로서 성공해 많은 돈을 벌고자 한 이유 중에는 하나뿐인 가족. 붉은 피로 맺어진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돕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권투에 대한 꿈과 열정을 나타냈던 매기의 버건디색은 붉은 제의가 지닌 피와 사랑의 뜻으로 연결된 상징이자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부양했던 혈육에 대한 애정이 바탕에 있었다. 그러나 선의와 희생을 고마워하지 않고 끝까지 착취하려고만 하는 허울뿐인 가족은 피부를 괴사시킨 욕창처럼 자신의 인생을 좀 먹었을 뿐이라는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모쿠슈라의 뜻을 알게 된 매기는 편안히 눈을 감는다 / 이미지 출처- 영화 캡처




가족들의 방문 이후 욕창으로 인한 감염으로 다리를 절단하게 된 매기는 프랭키에게 이대로는 살 수 없다며 안락사를 부탁한다. 무엇이든 부탁해도 그것만은 꿈도 꾸지 말라는 프랭키에게 이미 권투로 원하는 세상을 경험했다며 더는 원이 없음을 호소하고 떠나는 길을 자신의 의지로 가고 싶다 말한다. 완강한 그의 거절에 스스로 혀를 깨물어 과다 출혈로 죽기 직전 상태에서 살아나지만 깨어나자 또다시 혀를 깨문다. 강한 응급조치로 의료진은 매기의 입에 거즈를 가득 채워 넣고 다량의 진정제를 투여해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만든다.



프랭키는 매기와 함께 살고 싶지만 이대로 그녀가 사는 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차마 죽음은 도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진정제 때문에 정신마저 온전치 못한 상태를 보며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기로 결심한다. 산소호흡기를 떼고 다신 깨어나지 않을 깊은 잠에 들기 전 매기에게 말해준다.



"모쿠슈라(Mo Chuisle)는 나의 사랑, 나의 혈육이란 뜻이야."



아픔이 가득 찬 붉은 피로 엮였던 매기의 육신은 하느님의 세상으로 건너가기 전 신이 맺어준 온전히 진실한 가족의 배웅을 받으며, 삶의 희망을 품은 초록의 이름 '모쿠슈라'로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영면에 들었다.











열심히 모은 돈으로 가족들을 위한 집을 사서 어머니에게 열쇠를 주었을 때, 매기는 얼굴을 맞아가며 권투 선수로 돈을 버는 것에 비웃음을 받는다. 돌아가는 길에 프랭키와 방문한 식당은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온 적이 있는 레몬파이가 유명한 맛집. 통조림 레몬이 아닌 홈메이드 제조법을 쓰는 레몬 파이를 오랫동안 찾아온 그에게 최고의 파이 맛을 선사했던 날. 함께 보낸 행복한 시간. 말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 순간을 넘어 다가올 미래의 저편에도 서로가 곁에 있을 것을 소망했다.



평온한 장소에 만족스러운 음식이 있고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가장 소중한 나의 일부가 남긴 추억은 이제 신의 은총을 받은 색의 이름으로 남겨져 언제고 다시 찾아 올 그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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