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 월킨슨의 데님 점프슈트
물건이 널브러진 주방에서 달걀을 삶고 토스트를 구워 식사를 준비하는 소년 빌리 엘리어트. 음식을 드실 할머니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황급히 찾아 집 근처에서 모시고 오며 함께 방을 쓰는 형은 텐테이블이 이상 하다고 화풀이하는 일상에 산다. 광부로 일하는 아버지와 형이 파업으로 시위에 참여해 예민해진 집 안 분위기는 빌리가 피아노를 치고 노는 것에도 핀잔을 준다.
마을의 유소년 클럽에서 권투를 배우는 빌리는 아래층이 파업한 광부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로 쓰이게 되면서 앞으로 발레 수업이 권투 체육관에서 같이 진행됨을 알게 되고, 링 위에 올라 스파링을 하지만 로프에 반동을 주며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 상대의 일격에 녹다운되어 바닥에 쓰러진다. 관장님은 권투를 진지하게 하지 않고 장난스럽게 춤을 추는 듯한 빌리의 행동에 수업 종료 후 혼자 남아 펀치백 훈련을 할 것을 지시한다. 샌드백을 치며 연습하고 있는 도중 피아노 반주에 이끌려 보게 된 발레 수업에 호기심을 느낀 빌리. 어느새 소녀들 사이에 끼어 발레 동작을 따라 배운다.
여자 아니면 게이가 하는 게 발레라고 여겼던 빌리의 생각은 흥미는 느끼지만 해도 되는지를 망설이게 한다. 그러나 두 번째 배울 때 권투 대신 발레를 선택하고 매주 수업에 나가며 마을의 도서관 버스에서 관련 책을 몰래 가져와 집에서도 혼자 연습할 정도로 머릿속이 온통 발레를 더 잘하기 위한 것으로 가득 찬다. 파업 시위 중 체육관 관장님에게 빌리가 몇 달째 권투 수업에 나오지 않는다고 얘길 들은 아버지는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서는 뒤를 쫓고 소녀들 틈에서 발레를 배우는 모습에 당장 나오라고 소리쳤다. 이후 빌리는 남자라면 당연히 축구, 권투, 레슬링을 하는 게 정상이라 말하는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친다.
국내에 2001년 개봉해 꿈꾸는 소년의 대명사가 된 영화 <빌리 엘리어트>. 영국의 각본가 리 홀이 만든 픽션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도 꿈을 잃지 않고 이뤄내는 소년 빌리 엘리어트의 이야기를 그렸다. 어릴 적 탄광촌에서 자란 성악가 토마스 앨런의 삶이 글을 쓰는데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졌으며, 영화 촬영 전 자신이 쓴 각본의 빌리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로열발레단의 캐릭터 아티스트 필립 모슬리와 만나 얘기한 것이 와전되어 영화가 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빌리 엘리어트 역할로 오디션을 통해 뽑힌 배우 제이미 벨이 어려서부터 춤을 배우며 남자로서 편견을 겪어 온 것과 춤에 천부적 재능을 지녀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어도 기막히게 발레와 탭댄스를 추는 소년 빌리를 연기한 적임자가 된 것은 가히 실화 없이 신화를 창조한 위대한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리지널 포스터에서 새하얀 발레복을 입은 소녀들 사이 헤드기어와 권투 글러브를 차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낯선 공간에 들어와 얼굴엔 불안한 표정이 감돌며 같은 성별로 무리 지은 집단에서 동떨어진 다른 성(性)은 정제된 공간을 흐트러뜨린 불순물이 된다. 하지만 망사가 겹겹이 층을 이뤄 입체감을 만든 *튀튀(tutu)를 입은 소녀들과 다르게 볼륨감 없이 밋밋한 쇼트(short)를 입은 소년의 다리가 곧은 자세로 심지처럼 뻗어 몸을 지탱하고 한쪽 팔은 발레바에 올려두며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모습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만들었다. 관객은 익숙지 않은 세상에 온 소년으로 인해 놀라운 이야기가 벌어질 거란 걸 이 한 장의 포스터로 예감한다.
*튀튀(tutu)- 발레를 할 때 입는, 주름이 많이 잡힌 스커트./ 표준국어대사전
이미지로 세련되게 메시지를 전달한 오리지널 포스터처럼 영화도 그 방법에 맞춰 의미를 부여한다. 'STRIKE NEW'(당장 파업)란 말이 쓰인 파업 '포스터가 붙은 벽'을 지나면 전투 경찰이 만든 '인간 벽'이 나타나고 길을 걸어 당도한 곳의 '큰 벽면'은 드럼 세탁기 광고 이미지가 '당신의 항상 충실한 세탁일 노예'(Your ever-faithful washday slave)라는 헤드 카피로 정부가 보는 광부 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심하게 경사진 비탈 위에 지어진 광부들의 마을에서 시위자 한 사람과 경찰 수백 명의 무리가 대치하는 상황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리한 싸움에 놓여 있는 노동자의 위치를 대변하며, 비탈 위에 세워진 광부들의 집과 중산층 가정이 사는 지역의 평지에 지어진 집의 비교를 통해 각자의 위치에 놓인 상황이 험준한 투쟁과 평탄한 순조로움으로 현격히 차이 남을 표현했다. 크게 돈을 들이지 않고도 소품을 활용해 이미지에 뜻을 담고 지형과 지물을 이용하여 이야기의 내용과 연결지은 부분은 촬영 전 시나리오를 깊게 연구하고 장소를 면밀히 살펴 적용한 저예산 영화의 승리다.
영화는 1980년대 영국의 탄광 마을을 배경으로 제71대 총리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따라 벌어진 탄광 노동자와의 파업 시위라는 실제 사례를 가져와 극의 현실감을 높였다. 오랜 시간 적자로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유지해 가던 영국 내 탄광들은 국가 권력의 시장 개입으로 망가진 대표적 예시로 지목되며 구조조정을 실시해 즉시 보조금 지원을 중단하고 광산을 폐쇄하거나 폐광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이에 반발한 전국의 광부들은 자신이 속한 광산을 지키고자 대규모의 파업 시위를 벌이게 된다. 한때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 경제발전을 떠받친 광산은 증기기관의 연료로 쓰인 석탄을 보급하는 곳으로 그 현장에서 일하는 광부는 산업역군(産業役軍)으로서 전국 규모의 노조가 설립될 정도로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었다. 하지만 시대적 변화에 화석연료인 석탄의 사용이 줄어들고 제3세계의 값싼 석탄 공세에도 밀려 국내 광산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수많은 광부들을 실업자로 만들었다.
광산이 있어 형성된 마을은 영화에서 두 가지 대표적 색의 표현으로 규정된다. 첫째로 벽돌의 레드 컬러다.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살 집을 빠르게 짓기 위해 선택된 벽돌은 표준화된 형태로 운반과 보관에 용이하며 내구성이 좋아 널리 쓰였고 집은 물론 유소년 클럽, 마을 회관 등의 다양한 기반시설을 만들 때도 사용했다. 벽돌의 원재료인 점토에 들어 있는 철 성분은 고열로 가마에서 구워지며 산화되고 붉은색을 띠게 하는데, 마치 뜨거운 열정을 가진 인간의 혈액과 같은 모습을 떠올리게 해 광부들이 갱(坑) 속에 들어가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해 광물을 채취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벽돌과 같은 색의 유소년 클럽 안의 계단은 빌리의 꿈에 대한 생각과 목표를 짧은 순간 강렬하게 표현했다. 아래에서 기초를 쌓아 위로 올리는 건물의 축조 방식처럼 아직은 발레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보로 맨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지만, 위층 계단에 있는 소녀들처럼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연습으로 실력을 키우겠다는 소년의 결의가 느껴진다.
둘째는 데님의 인디고 컬러다. 데님이 보편적인 작업복으로 대중화되며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블루칼라(blue-collar)로 불리게 된 것은 광부를 위한 작업복에서 탄생된 청바지의 유래로 인한 것이다. 목화로 만든 면직물에 인디고 염료를 넣어 만든 데님 원단이 특수한 가공 과정을 거치며 여러 단계의 블루 컬러로 변모하는 색은 탄광촌에서 짙은 인디고를 비롯해 다양한 톤의 블루 컬러가 마을 곳곳에 나타나 환경의 지배로 영향받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순색의 인디고는 파업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정부가 보낸 경찰이 입은 제복과 보호 장비 및 경찰차의 색으로 쓰이며 진하고 강한 색이 내포한 힘은 공권력이 갖고 있는 막대한 권력과 일치되어 위엄을 갖는다. 인디고에서 파생된 블루 컬러가 광부들이 사는 마을에 쓰이며 존재감을 표출하는 것은 중추적인 탄광의 역할이 근원이 되어 광부들의 모든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며 체육관 내부 벽면의 칠해진 페인트, 빌리가 사는 집의 대문, 광부들을 운송하는 버스 등에 나타났다. 마을 도서관 버스는 빌리가 발레를 더 잘하고 싶어 전문 서적을 구하러 방문했을 때 어른에게만 대여해 주는 책이라 안된다고 거절한다. 사서라는 직업적 권위와 성인의 위치로 소년을 압박한 것은 남자아이가 발레를 배우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편견과 마찬가지로 탄광촌에서 태어난 남자는 광부가 되어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라는 듯 마을을 대표하는 색으로써 정해진 미래를 거스르는 행동을 억누른다.
광산은 광부에게 의식주 영위할 수 있는 자원의 보고이며 광부를 태어나게 한 부모다. 부모의 유전자가 자녀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마을을 이루는 모든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반영된다. 흙에서 빚어져 가마에서 고온을 견뎌야 구워지는 벽돌과 깊은 지하에 있는 암반을 뚫고 캐내어 연료로서 전소되는 석탄은 인고의 시간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기희생으로 그 쓰임을 다한다. 노동자의 손길이 닿아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산물인 벽돌과 석탄을 기반으로 세워진 마을은 공동체가 함께 이룩한 결정체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소년 빌리가 꿈을 꾸고 이루는 것에도 가족의 헌신과 노력이 뒤따를 것을 알게 한다.
탄광을 상징하는 데님 작업복의 인디고와 블루 컬러는 인물의 정체성을 뜻하는 옷의 맥락과도 연결 지어 나타나며 그 관계성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도서관 사서가 입은 블라우스, 빌리 아버지의 데님 셔츠, 체육관 관장님의 V넥 니트 베스트 등은 탄광촌의 일원으로서 각자가 맡은 직업과 개성에 따라 다른 블루 컬러와 디자인의 착장으로 표출되었다. 빌리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먹으며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릴 때 입은 나이트가운 차림과 어머니의 원피스 역시 블루 컬러로 표현되는 것은 마을을 중심에 둔 색의 유대가 살아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고인이 된 존재에게도 이어지며 끊어지지 않고 깊이 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에게 푸른색의 변주로 나타낸 다양한 의복이 있지만 블루 컬러 옷의 상징이자 광부들과 때려야 땔 수 없는 데님은 마을 구성원들이 가진 옷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광부라는 직업군을 대표하는 작업복인 데님을 청바지, 셔츠, 트러커 재킷 등의 다양한 디자인으로 착용해 각자 다른 개성을 갖고 있지만 한마음 한 뜻으로 모인 시위대의 결속력을 보여주며 광부 노조가 파업 시위에 갖고 있는 자신들의 정당성에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는 매개로 쓰였다. 광부 노조의 간부인 빌리의 형 토니는 시위대를 이끌며 언제나 데님 트러커 재킷 또는 데님 셔츠를 입고 시위에 참여했다.
데님은 탄광촌을 나타내는 옷으로 광부들뿐만 아니라 마을 구성원의 삶 속에서 빠짐없이 보이며 인물이 가진 성격과 특징을 나타내는 다양한 디자인은 말로써 다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도 소리 없이 대변한다.
빌리와 같은 반이자 동네 친구인 마이클은 일상에선 청바지에 줄무늬 티셔츠를 즐겨 입는 모습으로 평범한 남자아이다. 하지만 흥미가 없어도 아버지의 권유로 권투를 배웠던 빌리와 다르게 사람을 때리는 운동을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이것은 마초적인 남성성을 상징하는 권투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에게 내재된 여성성을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보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다.
가족이 집에서 모두 나가면 누나의 데님 원피스를 꺼내 입고 엄마의 화장대에 앉아 립스틱을 바르며 숨겨왔던 여성성을 드러내 자유를 만끽하는 마이클. 평소엔 입지 못한 옷과 화장으로 자신을 꾸몄지만 꾸미지 않은 본래의 모습을 찾은 것에 기쁨을 느끼며 이 모습을 알고 있는 것은 절친 빌리가 유일하다. 그는 친구가 발레를 배운다고 말하자 대부분의 사람이 희한하게 보며 반대할 때 응원하며 발레 스커트를 입고 춤을 추면 더 멋질 것 같다는 조언도 붙인다. 가족의 반대와 편견을 이기고 발레리노가 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는 빌리를 배웅하며 마이클이 입은 데님 재킷에는 비상하는 날갯짓에 새의 형상이 자수로 새겨 저 앞으로 본인이 가진 여성적 면모를 감추지 않고 살아갈 미래의 결심을 내보인다.
광부를 위한 마을로 세워 저 남성 중심의 사고가 지배적인 마을에서 여성성의 상징인 발레를 가르치는 월킨슨은 예술을 하는 무용가답게 데님을 입을 때에도 주변 사람들에 비해 흔치 않은 디자인을 입는다. 연청의 데님 점프슈트에 허리라인을 잡아 주도록 폭이 넓은 벨트를 차며, 진청의 오버사이즈 데님 후드 집업을 걸치고 머리는 질끈 묶어 올려 골드 링 귀걸이를 착용해 스타일리시한 발레 선생님의 모습을 나타냈다. 작중 그녀가 담배를 피우며 수업하는 장면은 자유분방하고 편견 없는 성격을 나타내기 위한 시각적 장치로 봐야 한다. 영화가 개봉한 2000년대 초반은 실내 흡연이 비흡연자에게 주는 간접흡연의 위험성이 세계적으로 대두되기 전이어서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실내 흡연과 거리 흡연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던 시기였다. 현재도 동서양에서 여성보다는 남성 흡연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담배는 남성성을 상징하며 그것을 피우는 여성 월킨슨은 성별과 관습에 구애를 받지 않는 자유를 지향하는 인물로 나타낸 것이다.
수업 시간엔 딸에게도 선생님이라 부르게 하고 잘못된 점은 따끔하게 꼬집으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월킨슨은 강의할 때 입는 데님 점프슈트와 후드 집업은 물론 외출 시 데님 셔츠 롱 원피스를 터프한 웨스턴 부츠와 함께 코디해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퇴근 후 가정으로 돌아오면 날카롭고 예민하지만 활기 있던 모습이 사라진다. 밖에서 묶었던 머리를 내려 헤어컬을 살리고 실루엣이 우아한 니트 원피스에 심플한 스터드형 귀걸이를 하고 중산층 가정의 아내라는 지위로 탈바꿈하며 무표정으로 생기를 잃은 모습이 그려진다.
사실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 무너진 가정의 신뢰와 발레 수업을 듣는 소녀들은 동작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한 열정이나 재미도 없으며, 피아노 반주자는 늘 연주에 불성실하고, 자신은 무용가로서 꿈을 크게 키우지 못하고 실패한 삶을 사는 모습에.
"될 것 같진 않지만..."
그녀의 이 한마디는 인생의 모든 것이 될 것 같지 않음의 연속에 처해 있음을 말했다. 그렇게 화가 끊이지 않던 시기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빌리 엘리어트. 처음엔 소녀들이 많이 있어 호기심에 왔다고 생각했지만 시작부터 기존의 수강생은 힘들어 오래 버티지 않는 발레 동작을 끝까지 해내 놀라움을 준다. 아니 그전에, 소녀들 틈에서 권투용 신발을 신고 움직이던 발을 눌러 발레화 사이즈를 물어보던 그때. 한 공간에서 유일하게 같은 열정을 지닌 두 사람의 접촉이 일어난 순간, 지그시 누른 발은 행동을 이끌어 월킨슨에게 무용가로서 잊고 있던 마음의 일부를 깨웠다.
연청의 데님 점프슈트를 입고 발목엔 진청의 색을 닮은 니트 래그워머가 씌워진 발은 생생하게 밝고 진한 빌리의 권투용 신발과 만나 자연스러운 색의 연결을 이뤘다. 중간에서 색의 다리를 만든 레그워머는 빌리가 시골에서 취미로 발레를 배우다 끝내기엔 아까운 재능임을 알고 스승으로서 제자의 꿈을 키워나갈 지지자이며 연결자로서 도움을 주는 그녀의 역할을 떠올리게 한다.
파업으로 예민해진 아버지와 형을 대신해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를 돌보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부재로 어수선한 집안 살림을 챙기는 11세 소년 빌리 엘리어트. 탄광촌에서 태어난 아버지와 형이 나란히 광부가 되어 일하는 것을 보면서 남자니까 권투를 하라는 권유에 좋아하지 않아도 배우러 다니는 순종적인 아이다. 빌리가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고 불평 없이 따르는 아이라는 것은 데님을 입은 옷차림에서 나타난다.
연청의 데님 트러커 재킷은 슬림하고 타이트한 반면 중청의 청바지는 폭이 넓고 여유 있는 레귤러 스트레이트로 상의와 하의가 컬러와 핏이 다른 착장은 형이 입던 옷을 물려 입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두 가지 옷 모두 기장마저 짧아서 새 옷을 사야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을 알기에 권투를 배울 때도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낡은 권투 글러브를 불만 없이 사용한 것처럼 있는 옷을 입을 뿐 투정 부리지 않는다. 그런 아이가 최초로 좋아하며 하고 싶다고 말 한 발레는 연습으로 실력을 연마해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하루 종일 맴돌며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빌리는 권투를 배우기 위해 입었던 쇼츠(shorts)를 발레의 동작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음악을 듣고 리듬을 타며 몸으로 나타내는 일에 희열을 느낀다는 것을 발레로 알게 되면서 자신의 몸을 가장 가볍고 날렵하게 만드는 쇼츠를 입어 꿈을 향해 나아간다. 어른이 된 남자는 밖에서 좀처럼 입을 수 없는 이 짧은 반바지는 꿈꾸는 소년의 마음일 때 입는 옷이다.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빌리와 마이클이 입은 네이비 컬러의 쇼츠는 꿈에 관한 움직임을 유발하며 형 토니가 입은 화이트 쇼츠는 파업 시위에 참여하는 고달픈 어른의 일상을 가진 그에게 좋아하는 음악에 춤을 추게 하고 꿈꾸던 소년 시절로 잠시 돌아가는 마법을 부린다.
크리스마스 저녁 빌리는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 가서 발레를 할 때 입던 쇼츠로 갈아입고 마이클에게 무용을 가르쳐 준다. 파업 시위로 경찰에 무력 진압을 당하며 피를 흘린 형을 눈앞에서 보고, 발레를 하는 것에 아버지와 형의 극심한 반대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알게 해 로열발레학교의 오디션은 물론 유소년 클럽의 수업에서도 발레 배우기를 포기하지만 좋아하는 마음마저 버려진 않았기 때문이다. 불 켜진 체육관을 이상하게 생각한 관장님은 빌리가 춤을 추며 놀고 있다고 아버지에게 알리고 그 모습을 들키자 곧바로 진지하게 춤을 선보인다.
처음으로 끝까지 본 빌리의 춤에 아버지는 느꼈다. 발레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은 단순한 치기가 아니라 진심이며 재능 또한 가지고 있다는 걸. 탄광촌에서 태어난 남자는 광부가 되는 것이 수순이고 그 길 밖에 없다고 여긴 본인의 생각이 틀렸으며 아들이 가진 재주를 잘 키우면 원하는 삶의 길로 걸어갈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월킨슨 선생님에게 찾아가 빌리의 재능을 알아 봐주고 관심을 기울여준 것에 감사함을 전하며 로열발레학교 오디션에 필요한 비용을 물었고, 장기 파업으로 돈이 없었지만 이웃들의 기부금과 아내의 유품을 전당포에 맡겨 마련한 돈으로 빌리가 오디션을 볼 수 있도록 함께 런던으로 향한다.
착한 아이로 말썽 부리지 않고 집안의 보탬이 되어야 했던 빌리는 좋고 싫음을 제대로 표현하기보다 참는 하루하루 속에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지만, 우연히 만난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게 된다.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대로 생각했던 억눌림은 어려서부터 끌렸던 음악의 리듬에 춤을 추는 몸짓으로 감춰져 있던 본능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소년이 음악 소리에 홀리듯 빠져든 발레는 리듬을 타 몸을 움직이고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시키며 가능성을 저버리지 않고 허용할 때 보이지 않던 행로가 뚜렷해짐을 알려주었다. 움직이며 행동한 길에는 꿈을 향한 나로 사는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나로 사는 인생. 그것은 사랑과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