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5일 토요일. 새벽부터 비가 하루 종일 내린다. 궂은 날씨지만 고대하던 경기가 있는 날이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감에 부풀었다. 만화와 영화를 통해 갖게 된 권투에 대한 관심은 그것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다는 행동을 실천하게 했다.
"권투 경기를 보고 싶다!" 오직 그 생각에 온라인 예매 사이트를 찾았지만 야구, 축구 등의 대중적 인기 스포츠 이외엔 없었다. 다시 검색해 나온 방법은 한국권투협회 게시판에 공지된 경기 일정을 찾아 예매하는 것. 그러나 보고 싶던 유료 경기는 모두 지방에서만 개최하여 국내 일정 중 집과의 왕복 거리가 3시간 20분으로 가장 가까운 구로구청에서 열리는 '신인 랭킹전'을 보기로 한다.
저녁 7시 경기에 맞춰 이른 시간에 도착하니 생활 체육이 끝나고 트로피를 손에 든 수상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해산 중이었다. 신인 랭킹전만 알고 온 나에게 초등부 저학년에서 고등부와 여성부 그리고 40세부까지 경합이 치러진 대진표가 벽에 붙어 있는 걸 보니 권투가 폭넓은 연령에서 좋아하는 스포츠임을 알게 했다.
무료 경기에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좌석 배치는 관계자들과 선수 가족들이 먼저 채운 양쪽 자리를 피해 강당 정문을 등진 방향에 자리 잡았고 텅 빈 사각의 링은 존재만으로도 대단한 위용을 뽐냈다.
본경기 준비로 링 위에 글러브가 놓이고 글러브를 감싼 비닐을 벗긴다. 주최 측에서 밴디지 체크 후 글러브를 수령하라는 멘트가 나왔다. 종이나 영상으로 작품에서 보던 그 밴디지를 왼쪽 좌석 한편에 앉아 선수 손에 감아주는 장면을 목도했을 때, 현실의 권투에 있음을 체감했다. 밴디지를 감은 선수가 차례대로 심판에게 가서 양손을 내보이니 이리저리 살피고는 매직으로 손등에 싸인과 같은 체크 표시를 한다. 곧이어 글러브를 손목에 타이트하게 압박하며 꽉 동여맨 모습과 링 위에서 몸을 풀고 상태를 체크하는 선수들의 섀도복싱까지 보노라니 서둘러 일찍 경기장에 온 것이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링 중앙의 조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불이 꺼졌다. 사회자의 또렷한 음성으로 홍코너와 청코너의 선수가 소개되며 링사이드로 선수와 스텝이 함께 돌아 링으로 다가간다. 세컨드가 평행된 링의 줄 위에 앉아서 틈을 벌려주어 선수가 쉽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왔다. 링 위의 두 선수가 인사 후 심판의 개시에 경기가 시작되고 장안에 모든 시선이 그 두 사람을 향한다.
이번 신인 랭킹전은 총 3개의 경기를 4라운드로 진행했다. 최대 12라운드까지 할 수 있는 경기에 비해 너무 짧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경기를 관람하니 권투라는 운동이 현장에서 주는 몰입감은 실로 대단하다. "레프트! 라이트! 훅!" 사방에서 경기 중 선수들에게 관중의 코칭이 쏟아지며 타격의 충격이 느껴질 정도로 펀치를 주고받아 부딪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과격한 공격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벌어진 입 쪽으로 손이 올라가고 어깨는 동시에 움찔움찔, 마치 내 몸이 펀치를 맞고 있다는 듯 순간 공포가 밀려와 <내일의 죠>에서 요코가 왜 그토록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눈을 돌려야 했는지 그 기분을 알게 한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경기 중 충격적이었던 순간이 계속 생각난다. 첫 번째 경기에 1라운드. 시작 후 20초가 안 돼서 KO 패 판정이 났다. 얼굴에 펀치를 맞고 쓰러진 선수의 코와 마우스피스를 낀 입 주변에 피가 많이 흘렀고 그 상태를 본 세컨드가 심판에게 경기 중단을 요청했다. 제대로 얼굴을 가격한 펀치의 힘은 링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도 확연히 선혈이 낭자한 얼굴로 만들었고 선수의 아픔이 관중인 내게도 스며왔다. 이후 진행 요원이 바닥에 떨어진 피를 닦았고 예정된 다른 선수들의 경기가 시작됐다. 두 번째 경기 라운드 중 쉬는 타이밍에 첫 번째 경기에서 KO 패한 선수가 환복하고 부은 얼굴로 경기장을 빠져나가며 링을 쳐다보는 걸 보게 됐다. 오늘 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고된 훈련을 인내하며 노력했을 시간이 묻어난 선수의 눈빛은 짧은 순간 그의 심정을 대변하며 오랫동안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권투 선수들이 운동하는 환경은 제대로 된 전용 경기장도 없이 구청 강당을 빌려 간이 링을 설치하고 경기를 진행해야 하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활체육부터 프로 신인 선수들까지 링 위에 오를 때의 진지함, 얼굴에 미소로 드러난 열정은 권투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했다. 1960년에서 1980년대는 한국의 권투 전성기 시절로 세계 챔피언도 여럿 배출했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권투 강국의 위상, 수많은 관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는 옛날 일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권투는 사람들의 가슴에 뜨거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로 잊히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 만큼이나 많은 이에게 권투 하면 떠올려지는 말 '헝그리 복서'. 권투는 다른 어느 운동보다도 헝그리 정신과 연계된다. 그것은 지독한 가난과 배고픔을 이겨내고 가장 높이 빛나는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현실의 인생 역전 이야기가 실제 한 까닭이다. 중앙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역경과 고난을 헤쳐 가며 꿈을 놓지 않는 복서가 이 세상에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이 단어는 다양한 작품 안에서 도전하는 청춘을 나타내는 더없이 매력적인 소재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매기는 미국 시골마을의 가난한 빈민촌 출신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16살 때부터 집안의 가장이 되어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돈을 번다. 집안 형편상 교육을 받지 못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도시로 올라와서도 서빙을 이어가던 중, 28살에 권투에 매료되고 독학으로 훈련해 아마추어 여자 권투 선수가 됐다. 31살에는 권투 트레이너 프랭키가 운영하는 체육관으로 들어가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데 낮에는 여전히 식당 일을 겸업한다.
식비 절감을 위해 손님이 남긴 잔반을 챙겨 와 먹고 식당에서 받는 팁을 동전과 지폐에 상관없이 쓰지 않고 유리병에 모아 체육관에서 쓸 개인 펀칭볼을 마련한다. 지갑이 아닌 운동 가방에서 곧바로 꺼낸 동전 묶음과 지폐가 한데 뒤섞여 부산스럽게 값을 치르는 모습에 가게 주인은 황당한 표정을 짓지만 '내 펀칭볼'이 생긴다는 기쁨을 감출 수 없는 그녀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만 가득하다.
소년원 출소 후 도쿄 변두리 판자촌의 다리 밑에 세운 권투도장에서 프로 권투 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하고 낮엔 동네 식료품 상점에서 일하는 <내일의 죠>의 주인공 죠. 천애 고아로 길 위를 방랑하고 살아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소년은 15살에 우연히 탄게 관장과 만나며 자신의 권투에 대한 천부적 재능에 눈 뜬다. 정처 없이 홀로 배회하며 생존을 위한 몸싸움에 뛰어났던 주먹이, 권투에 정식으로 입문하면서 떠돌이 생활에서는 생각지도 못 한 삶의 목표를 찾게 한다.
죠의 타고난 신체 조건과 승부를 향한 강한 집념은 프로 데뷔 후 신예 유망주로 빠르게 성장시켰다. 하지만 권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한 친구이자 라이벌 리키이시와의 시합에서 그를 죽음으로 가게 한 영향을 끼친 것에 절망하고 죄책감을 느껴 머리를 때릴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 정상적인 시합이 불가능해 메이저 무대에서 퇴출되고 탄게 관장마저 건강을 염려해 권투를 그만두라고 말한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던 그는 지방을 순회하며 내기 권투를 하는 단체에 소속되어 떠도는 생활로 들어간다.
두 작품에서 그려진 헝그리 복서는 사회적 편견과 가난, 정신적 상처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지만 끝까지 권투를 포기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여성 선수의 입지가 좁은 권투의 세계에서 프로 선수를 시작하기엔 30대로 나이가 많고 궁핍한 처지의 매기와 고아이자 소년원 출신의 죠는 일반적인 사회에서 비주류(非主流) 인간이다. 어려서부터 가족의 보살핌 속에 정규 교육을 받고 진로를 찾아 직업을 얻는 평범한 주류(主流)의 성장과는 거리가 멀다. 시작부터 기울어진 출발선에서 살아온 그들은 보통의 사람이 누리는 일들에 행복과 기쁨을 경험하는 것조차 버거운 삶이었다. 그러다 만난 권투는 자신의 인생에는 없을 거라 여겼던 완전하고 확고한 믿음으로 다가온 실체화된 희망인 것이다.
맨몸의 투지가 만든 권투라는 운동은 링 위에서 자신의 체중을 몸에 실은 주먹을 무기로 싸운다. 온몸의 힘을 응축시킨 모든 것을 몰아 부은 펀치에 전부를 내던져. 권투가 다수의 주류가 응원하는 관심 속에 서 있지 않아도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의지를 담은 손을 뻗어 날린 그 한방에 속일 수 없는 땀과 노력의 가치를 느끼기 때문이다.
살면서 묻게 된다. 주목받지 못하고 세상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비주류로 사는 그늘진 인생에 과연 살아야 하는 의미가 있는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삶의 시작점부터가 다른, 평등하지 않은 출발 선상에서 전력 질주로 뛰어가도 좋은 환경에서 앞서 출발하여 걸어가는 이와 같은 길로 갈 수 있을까? 더불어 나이가 들면서 좁아지는 기회의 문, 더 나은 삶을 위한 고민과 행동을 해도 비주류에서 시작해 주류 속의 무리에 섞이기는 너무나 힘들다.
끝내 비주류에서 고군분투하는 인생이 환희의 결말에 놓이지 않는다 해도 주먹에 내 모든 걸 담아낸 권투 선수의 펀치처럼 신념을 가진 각자에 삶의 무대는 참되고 귀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