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서은국, 21세기 북스, 2024)
지은이 : 서은국
제목 : 행복의 기원
출판사 : (주)북이십일 21세기 북스
출간 연도 : (2판 4쇄) 2024.09.05.
원문 출간 연도 : (1판 1쇄) 2014.05.22.
페이지 : 총 238면
행복에 대한 학문적 탐구는 1984년 에드 디너 교수의 논문으로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바로 이 에드 디너 교수의 제자로, 행복학 연구의 계보를 한국에서 이어가고 있습니다.
책의 제목인 '행복의 기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는 행복이라는 것이 애초에 없던 개념에서 생겨났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치 있는 삶(good life)'처럼 목적론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정신의 영역으로만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행복을 진화론적 시각에서 조명하며 행복과 인간의 생존이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역설합니다.
책 속의 한 문장이 이러한 시각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이 문장은 행복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여겨왔던 기존의 생각을 송두리째 뒤흔듭니다. 마치 생물의 신체가 유전자의 자기 복제를 위한 수단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을 때와 같은 강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생존에 불리한 상황을 알리는 '빨간 신호등' 같은 '불쾌'와 생존에 유익한 활동임을 알리는 '파란 신호등' 같은 '쾌'의 감정 중에서, 행복은 '쾌'를 추구하는 뇌의 본질적인 기능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한 기쁨은 다름 아닌 '사람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이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더 유리하다는 생존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따라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며, 결국 "행복은 사회적 동물에게 필요했던 생존 장치"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저자의 지도교수였던 에드 디너 교수의 유명한 논문 제목처럼, 우리는 익히 들어왔던 말이 있습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물질 만능 시대에 우리는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가 되려 하거나 얻으려 합니다. 하지만 성취의 감흥은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초기화되기 일쑤입니다. 이는 생존을 위한 중요한 메커니즘입니다. 사냥의 성과인 고기를 맛보는 기쁨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면, 만족하여 동굴에 머무르다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먹는 기쁨이 초기화되어야만 '쾌'를 반복하기 위해 다시 사냥에 나서게 됩니다. 결국 쾌락이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커다란 '한 방' 뒤에 오는 공허함보다는,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생물학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무척 공감됩니다. 냉장고 없는 시절, 아이스크림을 충분히 즐기려면 여러 번 맛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요.
또한, 사회적 경험은 개인이 가진 선천적 기질과 무관하게 행복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외향적인 사람들이 인간관계도 원만하고 사회생활도 잘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지난 40년간의 행복학 연구에서 외향성은 행복과 가장 깊이 관련된 특성임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외향적인 사람일수록 사회적 관계의 양과 질이 높아, 여기서 얻는 사회적 경험이 행복에 절대적인 기여를 합니다.
그렇다면 내향적인 사람은 덜 행복한 걸까요? 내향적인 사람도 혼자보다는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행복감을 느끼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을 싫어해서라기보다는 '불편해서'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행복의 관점에서 보면 외향적인 사람들이 타고난 유전적 혜택을 크게 받은 셈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저자의 주장과 약간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전적 요인이 행복에 중요하게 작용하지만, 개인이 느끼는 행복의 주관적인 정도는 분명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내향적인 사람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행복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통찰도 깊이 와닿습니다. "행복이라는 씨앗은 개인의 자유감이 높은 토양에서 쉽게 싹을 틔운다."
국가 경제 규모가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행복 지수가 낮은 이유에 대해 우리는 각박한 생활, 극심한 경쟁 등 다양한 이유를 꼽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집단주의 문화'의 영향도 중요하게 지적합니다. 우리는 개인과 집단의 이익이 대립할 때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언론조차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 일본, 싱가포르와 같이 집단주의 문화 성향이 강한 아시아권 국가들은 '행복 부진' 국가로 분류됩니다.
반면 개인의 생각을 주장하고 표현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개인이 '심리적 자유감'을 강하게 느껴 더 행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개인주의는 국가의 경제 수준과 행복을 이어주는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요. 이 접착제가 부족한 사회에서는 국가의 번영과 행복이 나란히 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주말에 상사의 산행 제안에 마지못해 따르거나, 집단의 응집과 통일성을 중시하여 규격화된 행동으로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행복감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회 특성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개인의 행복 추구가 언제까지 제한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은 행복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멋진 사진처럼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이며 "쾌감을 느끼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직결된다"고 말합니다. 물질을 우선시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습관은 타인의 기준으로 행복을 재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저자의 연구(구재선, 서은국, 2011)에 따르면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바로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타인의 시선과는 무관한, 가장 본질적이고 개인적인 행복의 모습이죠.
이 책에서 제가 가장 크게 공감한 부분은 바로 행복의 근원을 '내부'에서 찾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물학적 특성에 집중하라는 말로 들립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전통적인 행복론과는 다르게, 진화론적 생존과 관련된 행복의 해석이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게 사는 것이 행복이다', '~이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이다'와 같은 도덕성과 규범성이 강한 행복의 프레임 속에서는 오히려 자유감이 줄어들어 덜 행복할 수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 깊이 동의합니다. 이 책의 메시지처럼 "각자 자기 인생의 '갑'이 되어" 살아간다면 더욱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