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긴 관계의 여유

적당한 거리에서 오는 숨 쉴 여유

by 초마실

국어사전에서 '성기다'라는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 '사이가 배지 않고 뜨다. 성기다'라고 나와있습니다. '냄새가 몸에 배다'에서 '배다'의 반대어라고 합니다. 너무 촘촘하지도 않고 듬성듬성 적당한 거리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보통 짜임새 있고 촘촘한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관계가 촘촘하여 일상을 빈틈없이 공유하고, 언제든 닿을 수 있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믿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 인간관계에 '긴밀함'이 오히려 '피로감'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긴밀함에서 오는 질식, 성기지 못한 관계의 피로감

우리 삶의 인간관계에 '성김'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이다 못해 인위적이기까지 한 관계에서 숨 쉴 틈도 없이 소통하고 연결되기를 강요받습니다.

쉼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의 알림음, 의도치 않게 마주하는 소셜미디어 속 타인의 삶들이 나의 피로감을 높입니다.

관계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그 사이에는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집니다.


편백나무 숲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면 나무들이 서로의 가지가 닿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가지를 뻗치면 햇볕을 받는 면적이 줄어들어 서로 좋을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성긴 여백이 필요합니다.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서로의 그늘에 가려져 정작 자신의 성장 기회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인간관계에도 '성김'이 필요합니다.

'성기다'라는 말을 서로에서 소홀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며 적당한 여유를 두는 배려의 관계입니다.

각자의 공간을 인정하고, 때로는 적당히 거리를 두면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생깁니다.

상대가 내 마음과 같기를 바라는 촘촘한 기대를 내려놓고 상대가 그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여백이 필요합니다.

매 순간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각자가 여유의 시간을 충분히 누린 후에 만났을 때의 기쁨을 위한 시간의 여백이 필요합니다.


성기게 연결되어 함께 살아가기

사람은 온전히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타인과 지나치게 촘촘하게 연결되어 살 수도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호소합니다. 관계의 피로가 나를 짓누른다면 스스로 질문해 보세요. "내가 너무 촘촘한 그물로 관계를 짜려하는 것은 아닐까?"라고요.

조금은 성기게, 조금은 여유 있게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람과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두면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여유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지치지 않고 적절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긴 관계야말로 가장 건강하고 견고한 연결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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