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주제가 된다

글을 탐하다 / 소설 · 에세이

by 푸른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항상 무언가 힘든 일이 있거나, 큰일이 있을 땐 글을 쓰는 것이 우선이었다. 글을 가장 많이 쓴 시기는 아마 19살에서 21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19세. 봄. 봄은 늘 그렇듯 따뜻한 바람과 함께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계절이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계절.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고, 어렸고, 혼란스러웠다. 서툴고 어지럽게 글을 썼다. 그땐 친구들과의 일 하나만으로도 크게 동요했고, 그걸 맨 정신으로 감당하기엔 모두 어렸다.


20세.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것만 같아서 글을 썼다. 우울이라는 감정에 자주 사로잡혔고, 정말 세상에 혼자만 있는 기분이었다. 하루종일 독서실과 학원에 갇혀 공부를 했다. 내가 선택했던 일이지만, 그걸 견딜 만큼의 의지는 없었다. 외롭게, 괴롭게 글을 썼다.


21세. 밖을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었다. 버스 정류장에 설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주변엔 여전히 관심이 없었으며, 사는 것에도 흥미가 없었다. 마음을 달래려고, 회복하려고 글을 썼다.


이렇듯 외로울 땐, 항상 찾아왔다. 글쓰기란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글을 안 쓰고는 못 살겠구나.


단지 글을 좋아하는 것뿐이다. 숨을 쉬듯, 글을 쓰는 것도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학창 시절엔 그저 선생님의 칭찬과 상으로 시작한 글쓰기가, 우정과 사랑을 위한 글쓰기가 되었고, 스스로 모든 일상을 글로 채우는 방법을 익혔다.



1.

문득 그랬다. 글을 쓰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글을 시작하려면, 일상 이야기이든, 어떤 리뷰든, 평론이든 내가 나의 생각과 관심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주제나 사물에 대한 내 의견이 무엇인지를 그 어느 때보다 깊게 고민해야만 글을 시작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에 집중하다 보면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멋진 도입부나 화려한 문장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자.


2.

실제로 성인이 되고 꾸준히 일기나 블로그 글을 쓰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영어 회화 과외를 시작했는데,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는 말에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문제라기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 '뭐 사고 싶어? 뭐 먹고 싶어?'

- '몰라.', '그냥 너 먹고 싶은 거.'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특별한 의견이나 취향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의 생각과 취향이 다였다. 이 단 두 가지만으로 사람이 완성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의 취향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무엇을 먹을 때 기분이 좋은지

어떤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지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지

왜 그 일을 좋아하는지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에 대한 대답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글이 하나의 수단이 되지 않을까 한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일상과 삶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이 사진을 남길 때, 어떤 생각과 기분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특별하지 않다. 빵 사진을 올리면서 '너무 맛있어서 행복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의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한 줄씩만 적으면 된다. 이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다. 어렵지 않다. 글은 그저 나의 생각을 활자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우리 모두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분명, 짧았던 문장이 점차 길어지고, 그 안에서 표현도 더 풍부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3.

카페에 멍하니 앉아 사람구경을 하거나,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강아지를 만나거나, 자기 전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보거나. 이 모든 것이 글이 될 수 있다. 글을 쓰는 것은 표현의 수단일 뿐이다. 이런 일들은 모든 사람이 겪지만, 각자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 속으로만 기분을 느끼는 사람,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 그리고 글로 쓰는 사람. 이 여러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것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겪고 보고 느낀 것들을 써 내려가는 것을 갤러리 사진첩이나 인스타 스토리처럼 모은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런 생각이라면, 글쓰기가 조금은 친근해지고, 편해지지 않을까.



바로 보이지 않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글을 쓸 때, 내가 쉼표를 많이 쓰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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