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탐하다 / 소설 · 에세이
*본문 아래의 짧은 조각글에서 이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
문장에 수식어를 줄이라는 것은 흔하게 들어본 말이지만, 이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매번 불필요한 부사어가 주원인이다. 그 원인을 줄이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말하듯이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부사가 문장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어제 바닷가에 갔는데, 날씨가 너무 더웠다. 진짜 말도 안 되게 더운 날씨 때문에, 차가운 게 너무 마시고 싶었다. 바닷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더 더운 느낌이었다.'
이제 방금 위의 문장에서 '너무', '진짜' 등의 부사어를 없애보자.
-> '어제 바닷가에 갔는데, 날씨가 더웠다. 말도 안 되게 더운 날씨 때문에, 차가운 게 마시고 싶었다. 바닷가에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사람이 많으니까 더 더운 느낌이었다.'
쓸데없는 부사어는 없앴지만, 어딘가 모르게 밋밋하고 어색한 부분이 생겼다. 하지만 이를 되살릴 방법이 있다.
->'어제 바닷가에 갔는데, 태양이 어찌나 따갑게 내리쬐던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날씨가 더웠다. 말도 안 되게 더운 날씨 때문에, 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차가운 음료를 마시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바닷가에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사람이 많으니, 숨이 턱턱 막히고 더 더운 느낌이었다.'
이렇듯 풍부한 문장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불필요한 수식 부사를 1차적으로 덜어낸 후, 그 덜어낸 자리를 다른 표현으로 채우는 것이다. 대부분 위의 문장처럼 비유나 은유의 표현을 사용하면 문장이 훨씬 입체적인 느낌이 든다. 또는 '비가 많이 내렸다.'와 같은 문장에선 '많이'라는 표현 대신 '세차게, 하루종일, 쉴 새 없이'등 다른 어휘를 사용하면,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
2.
모든 글에 의미를 담으려고 하지 마라. 이러다가 내가 정말 피를 많이 봤다. 학창 시절에 쓰던 논설문이나 주제가 있는 글을 매번 결론이 있었다. 방식은 늘 똑같았다. '서론 - 첫 번째 문제점 - 두 번째 문제점 - 세 번째 문제점 - 결론 혹은 해결방안'. 이런 틀 안에서 문단만 잘 갖춰 적기만 하면 되었다. 대게 이런 글들은 주제와 교훈을 명확하게 가진다. 중고등 수필대회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마지막엔 그 이야기에서 오는 큰 교훈이나 결말 따위를 써 내려갔다.
이런 글을 쓰는 것에만 익숙했던 내가, 나이가 들고, 더 자유롭게 들을 쓰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글은 주제가 없어도 되고, 꼭 모든 글이 교훈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무작정 글을 쓰는 행위가 관성이 되면, 그 글을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압박감이 생기게 된다. 이게 스스로의 욕심인지 알 수 없지만, 보다 더 글을 잘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러면서 계속 글에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글은 평소보다 더 지루해지고, 억지스러운 문장과 이야기가 담기게 된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쓰는 글을 매번 연습해야한다. 부담스러운 문장을 주기 보다는 쉽게 읽히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글에 힘을 더 뺀다.
저마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모든 글은 가치가 있다. 더 이상 철학적이거나 겉으로 멋있어 보이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3.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수필이나 논설문 같은 딱딱한 글만 쓰던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재주가 없었다. 타고난 이야기 꾼인 사람들이 있다. 그게 글이든, 말이든, 디자인이든. 세상의 모든 것이 이야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사람뿐만 아니다. 다른 생명체도, 그리고 심지어는 물건도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린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왜 무언가를 창작하려고 하면 한 줄도 생각나지 않을까.
억지로라도 경험을 늘리려고 노력한다. 난 타고난 이야기 꾼이 아니다. 단지 글이 좋아서 시작했을 뿐, 이를 재주 있게 써 내려가는 재능은 없다. 그래서 책을 열심히 읽고, 영화를 많이 보고,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을 선택했다. 내가 가진 이야기가 적기에,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빌리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훔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모은 이야기들로 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남의 이야기이면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글을 말이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가 떠나버릴 것 같은 그 아이. 그 아이로 하자.
'이제'는 짐을 쌌다. 혼자서 떠나는 첫 여행이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목적지는 없었다. 어딘지 모르는 세계, 그곳은 어쩐지 좀 복잡하고 위험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이제'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날이 이제야 시작된다.
'이제'가 처음 귀를 뚫은 건 아마 이 십 대 초반 여름이었을 것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제는 갑자기 귀가 뚫고 싶다고 했다. 귀걸이는 하면 세배는 예뻐 보일 거라나 뭐라나.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혼자 귀를 뚫고 온 '이제'를 보았다.
“여름은 귀를 뚫기에 좋지 않은 계절이야.”
“그래도 당장 세배는 예뻐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잖아.”
'이제'는 늘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 귀를 뚫어라 강요한 적은 없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귀를 뚫을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아마 '이제' 스스로도 그랬을 것이다. '이제'는 관심이 없을 땐 한없이 무심하다가 무언가 해야겠다, 봐야겠다 다짐하면 단숨에 해 버리는 성격이었다. 가끔은 간이 크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무모한 행동을 한다. 어릴 적 얘기를 할 때마다 '이제'는 늘 자신이 겁쟁이라 말했지만, 어쩌면 '이제'는 태초부터 겁쟁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옆에서 지켜본 '이제'는 겁쟁이라고 하기엔 대담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지.”
귓불이 빨갛게 부어오른 모습이 무자비하게 내리쬐고 있는 태양 같아 보였다. 그래서 조금 밉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이제는 겁쟁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