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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별 Dec 24. 2020

우주와 하늘과 별과 나


# 별들의 고향


21일 동짓날, 4백 년 만에 목성과 토성이 만났다.

사실 만난 건 아니고(걔네 둘이 어떻게 만나겠는가ㅡㅡ), 둘이 가장 가까워졌다는 거다.

그것도 우리 기준이다. (cf. 뒤의 이야기들도 따지고 보면 다 우리 기준이다)


정확히 말하면, 지구에서 볼 때 둘이 일직선으로 제일 가까운 거리에 놓인다 정도?

어쨌든 이 대결합은 천문학적으로 의미가 크단다. 8백 년 만이고, 60년 후 2080년에나 다시 볼 수 있다니까.

과연 그때까지 나는 이 별에 존재하고 있을까..? 여러분은 어떠신지..^^



다음날, 기사들을 훑는데 우주에 관한 기사가 또 눈에 들어온다.

'관측사(史)상, 우주에서 가장 먼 '최고령 은하' 발견', 빅뱅 이후 4억 년 만에 생성된 은하이고, 거리는 지구에서 무려 134억 광년. 모든 시공간의 단위가 말 그대로 천문학적 단위라서 뭐라 말하기가 참..ㅡㅡ;


1광년이 빛의 속도로 1년을 가는 거리이고 약 19조 km라는데 상상이 되시는지.. 19,000,000,000,000km.

그리고 거기에 134를 곱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주인공 은하, 이름은 GN-z11.

그냥 아~~~ 주 오래전, 아~~~ 주 먼 곳에서 탄생한 천체라고 하자.


눈으로 봐도, 설명을 들어도, '우주의 신비'는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과학'인 동시에 '신비'인 건가.

그도 그럴 것이, 천문학적으로 굉장한 발견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써 놓은 글을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멍하니 신기하게 바라보며 딴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134억 광년 떨어져 있으면, 134억 년 전의 빛을 지금의 우리가 보고 있는 거네..? 오, 신기...'

'왼쪽 사진 멀리 있는 은하를 확대한 건 붉은색인데, 오른쪽 상상도는 푸른색이네? 좀 가까이에서 보면

저렇나..?'..라는 엉뚱한 생각들. 가까우면 얼마나 가깝겠나, 은하를 보는 건데.


가장 먼 최고령 은하로 기록될 수 있는 'GN-z11' 은하 (왼쪽) / GN-z11 은하 상상도 (오른쪽)


사실, '은하'라는 단어만 해도 우리에게는 굉장히 큰 개념이다. '우주'는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정리해보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는 우주,

그 속에는 수천억 개의 은하들이 있단다. 그리고, 우리는 그중에서 '우리 은하'라는 한 은하 속 한 귀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태양계, 그중에서도 지구라는 세 번째 행성에 살고 있는 것이다.


'별'이라는 게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 같은 천체라는 걸 생각해보면,

우리는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의 점, 그리고 그 점 주위를 공전하는 세 번째 미세 알갱이,

알갱이 속 조그만 반도의 나라, 그중에서도 밑의 절반, 그 속의 한 도시, 그리고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다는.ㅎ


다 알고 있는 얘기인데, 다시 정리해봐도 나름 숙연해진다. 우주 앞에서, 내 인생 앞에서.

드넓은 우주에 비하면 먼지 같은 '지구 별', 그 속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먼지 같은 우리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라는 존재들의 인생이 뭐라고 그렇게 아웅다웅 사는가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그 속에 저마다 소우주를 품고 살아가는 놀라운 존재들이라는 생각에 가서 닿고..ㅎ


새까만 도화지 위에 설탕을 흩뿌려 놓은 듯한, 한 폭의 작품 같은 밤하늘 속 보이지 않는 별,

엄밀히 말하면, 빛도 없고 스스로 나타낼 수도 없어 보이지는 않는, 별이 아닌 '지구 별',

그래도 그 별이 소중하고 애틋한 건, 우리가 발 붙이고 살아가는 땅(earth)이기 때문이고,

우주가 수많은 별들의 고향이라면, 지구는 우리의 고향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다른 외계인들과 그들의 행성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우리 정체성은 명확해졌다.

지구라는 행성에 사는 '지구인'.

그리고 지구인은 어쩌면 오래전에 화성에서 온 남자 종족들과, 금성에서 온 여자 종족들이 어떻게든 맞춰가며 함께 살게 된 새로운 종족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한 번 더 실없는 생각.




# 별 그리고 나


사실, 오늘 글은 왜 '별이의 에세이'인지를 소개하는 글이다.

지구인인지 외계인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나의 정체성'을 생각하다가 시작된 글.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싫든 좋든 몇 개의 '별명'을 얻는다. 내 마음에 들던 말던 친구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이 본 나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때부터 우리는 '밖에서 바라보는 나'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는 아톰, 은하철도 999의 철이, 똘똘이 스머프, 최근에 제자들이 붙여준 이미지는 보스 베이비,

토마스 기관차.. 상상은 각자 하시고.. 어쨌든 사람은 거의 없다는..ㅡㅡ;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별명도 호(號)도 아닌 별칭이 바로 '별'이다. 이제는 필명이라고 해야 하나.

중1 때 친구가 붙여준 별칭을 지금까지 쓰는 이유는 나의 정체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소개하는 첫 번째는 '이름'이고,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사람은 세 글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친구는 내 이름으로 또 다른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이름 첫 글자의 초성, 두 번째 글자의 중성, 세 번째 글자의 종성으로. 어린 친구의 지혜로 탄생한 '별'이 나는 너무 마음에 든다..^^


인생을 살아가다가 순간순간 우리는 정체성의 부분 부분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부분들은 각각 내 삶의 추억과 의미들을 간직한 채 오래 지속된다.

일상 속 나를 구성하는 평범한 조각들이 소중한 이유다. 핸드폰 번호, 여러 아이디들 등등...


삐삐(나름 카드형) -> 시티폰 -> 016 pcs, 그리고 드디어 017 벽돌폰에 이르기까지, 대학생 시절 별이의

이동통신 진화 순서이다. 재미있는 건, 처음 핸드폰을 구입하면서 내가 주문한 뒷자리 숫자이다. 그 숫자는?

제대한 부대의 숫자 네 자리(cf. 보통 '제 oooo부대'라고 쓴다), 나중에 알게 된 주변 지인들은 어이없어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왜 그랬지 싶다..!? 제대하고 재입대하는 악몽을 꾸고, 강원도의 그 산골 쪽은 한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여하튼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별이는 그 번호를 쓴다.


제대 -> 복학(적응 X) -> 휴학 후, 남쪽 큰 섬 호주로 잠시 어학연수를 떠났더랬다. 학교 도서관 출입카드를

만드는데 메일 주소를 등록하란다. 1990년대 말, 나는 아직 글로벌한 메일 주소가 없었다.

그래서 등록한 hotmail, 더불어 hanmail까지. 앞에 '아이디(ID)'라는 걸 만들어서 붙여야 한다는데..?

그때 인생 처음으로 만든 hotmail 아이디는 비행기를 타기 전(아, 그것도 인생 첫 해외로의 비행이었네..),

활동하며 애정 했던 밴드의 이름이었다. hanmail 아이디는 멤버였던 뮤지컬팀 이름으로 만들었고.


갑자기 '나'를 대신하는 표현을 생각해내야 했을 때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그게 바로 내가 살아온 인생의 한 부분을 압축해서 설명하는 상징이다. 그리고 그 상징 속에는 우리가 의미를 두고 소중하게 여겼던 당시 삶의 이미지들이 담긴다. ID(identity 또는 identification)라는 것 자체가 신분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지금은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오래전 처음 ID라는 걸 처음 만들 때의 나는 사뭇 진지했다.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들도 많다. 과학적인 것도 있고, 아닌 것도 많고..ㅎ

타고나는 '기질', 요즘은 다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 자신의 기질 유형(MBTI, DISC,

애니어그램 등) 하나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별이의 MBTI 유형은 ENFJ이다. 처음 했을 때는 ENTJ였는데 일하면서 바뀌었다. 그래도 T(Thinking)와 F(Feeling)가 팽팽하게 맞서는 건 여전한 듯하다. DISC 검사에서는 I형(사람-관계 중심 유형).

혈액형은 O형, 성질은 다혈질, 몸속에 열은 많은데 손발은 차고, 저혈압이라 아침이 힘든 유형이다ㅋ  


생년월일에 따라붙는 것도 많다. 별이의 생일은 10월이니 탄생석은 오팔, 별자리는 천칭자리다.

가을에 태어나서 가을을 유독 더 많이 타는 남자인 듯하지만, 사실 사계절 다 탄다...ㅡㅡ

여기서 다시 등장하는 별자리, 별자리에 대해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천칭자리는 사교와 회화에 능하고, 열정과 매력이 있는 반면, 강박적 갈망이 있고 충동적이란다.

그런데 어떤 데에서는 싫어하는 사람과도 잘 사귄다고도 하고, 사귐성이 없다고도 한다.


사실 이런저런 해석들은 항상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고, 반대로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들. 생일만 해도 1~12월 각 달에 태어난 사람이 몇억씩인데 그들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별'이라는 것이 역사 속에서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하늘의 북극성을 보며 땅과 바다에서 길을 찾았다. 고대로 가면, 점성술을 통해 세상의 징조를 해석했다. 물론 신탁이나 예언이 다 맞는 건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우주 운행의 신비를 연구한 점성술이 지금 천문학의 시초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사람들이 별을 통해 위로를 얻고, 소망을 품고,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 농촌봉사 그리고 별똥별


청년들과 충북 영동의 한 숲 속 마을로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다. 팀을 나누어서 도배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곶감을 만들고... 그중에서 우리 팀에게 주어진 일은 통나무 옮기기. '근데 그게 무슨 일이지..?'    

그 지역에서는 참나무에 표고버섯 종균을 심어서 키우고 어느 정도 크면 재배를 했다. 그런데 키우는 과정에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고, 우리는 그걸 몸소 체험했다. 쌓여있는 통나무 재배치 작업, 그러니까 밑에 있는 걸

위로 올리고 위에 있는 걸 내리는 위치 교체 작업이었다..! 허리가 아주..ㅡㅡ;;

 

힘든 일일수록 이후 제공되는 새참을 맛있게 만들어준다. 휴식도 잠시, 해가 지기 전까지 노동은 고되지만

흘린 땀으로 인해 얻는 보람, 성취감, 만족감은 훨씬 크다. 그리고, 샤워 후 벌이는 삼겹살 파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그래서 끝.


무르익어가는 시골 저녁은 오감을 만족시켜 준다. 은은한 숲 내음, 섞여 들리는 풀벌레 소리, 나무 타는 냄새와 소리, 그리고 꿈속에서 들리는 듯한 도란도란 이야기들.. 잔뜩 먹고 쉬니까 몽롱해서 그런가..ㅎ



누군가 한 명이 불을 끄고 마당 평상에 눕자고 권한다. 별똥별을 보자면서.

숲 속이라서 주변에 불빛이 없고 날이 맑으니, 불을 끄고 누우면 잘 보일 거란다.

자기가 잘 아는데 이런 외진 시골 숲 속에서 별똥별 떨어지는 거 진짜 많고 잘 보인다고.


불을 끄니 정말 깜깜해진다. 도시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사실 밝은 데서는 눈을 감아도 눈꺼풀 위로 느껴지는 빛의 밝음이 있다. 그게 완전한 어둠이 아니라는 건, 경험해보신 분들은 안다. 진짜 깜깜한 곳에서는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다. 내가 나를 인지할 뿐, 세상이 무(無)가 되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긴가민가 하면서 눕는 동시에 놀라며 드는 생각,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라는 말을 이럴 때 하는 거구나'

그렇게 감동에 젖은 지 불과 몇 분이나 지났을까, 또 놀람. '진짜 별똥별이 떨어진다..!'

아마 내 인생 첫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선연히 하얀 선을 그리며 지는 별똥별을 본 건...

이후로도 오랜 시간 동안 더 많은 별똥별을 보며 흥분하고 즐거워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사실 별똥별도 '별'은 아니다. 유성(流星), 별똥, 별찌,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것은 지구 주위를 지나가던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가루들이 대기권에 진입할 때 밝은 빛줄기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걸 모르고 보면서 우리는 하늘의 밝은 점 하나의 별이 떨어지는 것으로 착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역시 우리 인간은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믿는 존재인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좀 어때?'라는 생각.

개인적으로는 가장 신기한  천체 활동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잘 볼 수도 없고 그다지 감흥이

없는 일식/월식의 종류들 보다는 별똥별이 훨씬 신비롭게 보인다. 밤에 봐서 그런가..ㅎ


그리고, 나만 그런 건도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그런 별똥별을 우연히라도 보게 되면 '소원'을 비니까.

하늘에서 붉게 타면서 하얗게 소멸되는 별가루 착시현상이 무엇을 이루어주겠는가..?

보름달 밤 정화수 앞에서, 케이크의 촛불 앞에서, 눈을 감고, 손을 모아 비는 같은 마음의 사람들,

그들은 마음의 정성을 다해 하늘에 기도하는 것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하지 않았나..^^




# 별 그리고 음악


별과 밤 하면 마지막은 역시 음악인가..?ㅎ

한 시대를 풍미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가 떠오르는 건 좀 웃긴가 싶고.

 

친구들과 대천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별, 파도소리, 통기타와 노래로 밤을 새웠던 기억,

추운 겨울 비무장지대에서 동료들과 함께 기타 치며 불렀던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

우리는 별과 음악에 대한 추억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래도, 요즘에는 이 노래가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한 편의 시 같은 가사, 멜로디와, 통기타와, 그 분위기가 그냥 참 좋은 노래..


어느 날 저녁 , 문득 걸려오는 한 통의 전화,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


"별 보러 가자"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은, 밤하늘이 반짝이더라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네 생각이 문득 나더라
어디야 지금 뭐 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가볍게 겉옷 하나 걸치고서 나오면 돼
너무 멀리 가지 않을게, 그렇지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적재, 2017)


오늘 밤, 누군가처럼 밤길을 달려 별을 보러 가고 싶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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