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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별 Dec 28. 2020

신호등 1

갈까, 멈출까, 어쩔까


# 신호등 1 : 나는 지금 어떤 신호 앞?


인생의 옆을 오래 지켜준 사람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멘토가 내게 한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한다. '신호등'을 가지고. 

요즘의 나를 보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일단 써 본다. 신호등을 바라보며, 지금의 내 삶을 바라보며.

멘토의 생각과 다르면 다시 써야 하니, 일단 이번 글은 1번 글이다 ㅋ




# 63호의 노란 신호등


요즘 즐겨보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혜성같이 등장한 63호, 참 매력적이다.

순수해 보이는 얼굴, 자기만의 목소리와 음악성, 그리고 깊이 있는 진정성, 참 좋다.

무엇보다 20대의 젊음과 패기가 이제는 너무 부럽다. 

그래서였을까, 그 친구의 멘트가 더 마음에 와서 닿았던 건?


'노란 신호등'에 비유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63호,  

빨간색과 푸른색 사이에서, 짧은 시간을 빛을 내고 사라지는 노란 신호등이 자신과 닮았단다. 

자기 자리가 없는데도 딱 3초를 빛나고 사라지는 녀석,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빛나는 모습이 

자기와 닮았다고 말하는 젊은 친구의 짧은 소개말이 마음을 울린다.


그래서 나는 어떤 색의 신호등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고 자신의 삶을, 진지하면서도 센스 있게 성찰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는 거다.

그리고 세 가지 색의 표시등 앞에 서 있는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인지 표현하고 싶은 거다.




# 적-녹-황 : 약속, 입장 차이, 그리고 중재


'신호등'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영미권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 신호는 적녹(적색만 있기도)만 있었고,

황색을 포함한 3색 신호등은 살짝 나중에 등장한다. 조작 방식은 수동, 각 색의 의미 또한 재미지다.

녹색은 “길이 열렸으니 좌우로 가시오”, 황색은 “직진만 하시오”, 적색은 “정지”.


처음에야 신호체계가 당시 늘어나는 자동차들과 운전자들을 위한 약속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운전자와 보행자(횡단보도에서) 모두가 신호등을 바라보고 있다. 중요한 건 입장 차이,

두 당사자에게 적녹은 완전히 반대의 의미를 나타낸다. 헷갈리지 않는다는 게 다행일 뿐.


그 와중에 운전자, 보행자 모두에게 같은 시그널을 주며 중재하는 건 황색이다.

신호가 다른 색으로 바뀐다는 의미, 운전자라면 잠시 갈등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빨리 지나갈까, 멈출까?' 오죽하면 황색 신호를 접하는 구간을 '딜레마 존'이라고 할까.

 

빨리 지나가고 싶은 마음이 크긴 하다. 질서를 지키고, 안전이 확보된다면 문제 될 건 없다.

성격 급한 건 원래, 기다리기 싫은 건 나만 그런건가? 그래도 요즘은 다시 한번 생각한다.

'다음 신호에 갈까..?', '조금 천천히 가도 뭐 얼마나 늦겠어..?'라고. 나에겐 작지만 큰 변화다.


차가 많지 않은 시골길에는 신호등이 없다. 

차가 많던 동네도 새벽에는 황색 등만이 점멸할 뿐이다. 알아서 가고, 알아서 멈추라고.

나에게 맞는(꼭 필요하다면?) 색은, 애매한 색일지 몰라도, 아무래도 황색이지 싶다.





# 지금의 내 신호? : 긍정의 3색으로


사람들은 3색 신호등을 가지고도 상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문제, 분석, 해법

우리가 이미 선입견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반증.

빨간 신호는 위험, 황색은 경고 또는 애매, 녹색은 만사형통, 과연 그럴까?


적색은 잠시 멈춤 : 그 상태에서 조금 더 쉬고, 조금 더 생각하고, 충전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면?
황색은 조금 더 여유 :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는 여유를, 그래서 잠시 멈춤에의 준비를 할 수 있다면?
녹색은 천천히 직진 : 다시 괜찮아지면, 너무 서두르지 말고 엑셀을 지그시 밟으며 가속할 수 있다면?


다양한 해석이 아닌, 단순한 해석을 해보는 것도 괜찮은 거 같다. 여유를 가지고.

그래서, 지금 내 인생의 신호들을 한 가지 의미로 통일해 보는 거다. 긍정적으로.

아니,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의 신호 3색을 모두 긍정으로 물들여 보는 거다!




# 차창밖의 신호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은, 녹록지 않다.

상황이 녹색이어도, 내 눈의 창에는 이슬이 맺힐 때가 많다.

그래도, 창밖 너머 '괜찮다'라고 빛으로 말해주는 존재 덕분에 위로와, 안도감과, 감사함을 느낀다.


수심의 구름 위에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 안개의 터널 속이지만 끝에는 빛이 있다는 믿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버팀의 여유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마음의 쿠션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마침 라디오에서 14세기 신비주의 학자가 전하는 희망의 문구를 읽어준다.

노리치의 줄리안의 한 마디, 친한 형님이 전공한 중세의 학자가 언급되니 더 반가웠나 보다.

(그 형님 말로는 '노리치'가 아니라 '노르위치'란다. 어쨌든 영어 단어니 뭐 ㅋㅋ)


'다 잘 될 거야(All Shall Be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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