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저물어갈 즈음에 든든한 아이와 같이 집을 나서 익숙한 산책길을 걸어 호수에 도착해 물을 바라보고 싶다.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어도, 작은 맥주병이어도, 혹은 무엇도 없어도 무방할. 그런 저녁을. 울컥, 하고 올라왔던 도무지 아직도 쩔쩔매고 있는 그리움이 덮쳐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고 말았던 낮의 심정을, 갑자기 내가 어떤 상태인지 혼란스러워져 입술이 바짝 마를 때를, 늘 듣는 음악인데도 묘하게 늘어지거나 빨라지는 느낌이 들 때의 정체 모를 간극의 사이들을. 가까이에서 물을 보면 어지러우니 잔잔한 물결을 골라 응시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저녁들을 흩어지지 않게 모은다면 아주 나쁠 때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하루도 모으지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