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원하면서도 두렵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습관처럼 떠오르는 세 단어.
긴. 하. 루.
무얼 할까가 아닌 또 어떻게 버틸까, 가 먼저인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가늠도 어렵다.
밤마다 먹는 네 알의 알약들을 삼키기 위해 고개를 위로 향할 때마다 바닥을 본다.
나도 안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겠지. 나보다 더 큰 상실을 겪은 사람도 많겠지. 이 밤에 나처럼 약을 삼켜대는 이들도 많겠지.
약을 먹어도 쉽게 잠에 들지는 못 한다. 그러다 잠시 움직이면 휘청거리는 유령 같다.
내 우울을 아무리 스스로 존중해도, 발가벗겨놔도, 숨기지 않아도 어딘가에 깊숙하게 박혀 다른 자아로 살아갈 수도 없다.
왜 우울하냐고 묻는 건 상처다.
마치 당신의 눈동자의 색을 설명하라는 것 같은 일이다.
몇 년간 딱 두 번의 깊은 잠을 잤다.
한 번은 나도 모르게. 너무 이상해서 침대를 살펴보니 엄마가 준 라벤더 뭉치가 있었다.
그래서 혹시나하고 검색을 하자 라벤더는 심신 안정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라벤더를 사서 침대 근처에 늘어놓았다.
하지만 어쩐지 소용이 없이 다시 되돌아갔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등생네 반려가족인 강아지와 같이 잤을 때였다.
하얀 강아지는 악몽을 퇴치해 준대.
어디선가 들은 말이다.
그렇게 실은 십 년도 넘는 시간 동안 푹 잔 건 딱 두번이었다.
잠에 대한 욕망, 이어도 좋고 필요, 도 좋다.
하루에 네 시간만, 아니 세 시간만 어떤 꿈도 꾸지 않고 잘 수만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잤어, 라고 말할 수 있다면.
ㅡ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기적처럼 느껴질 때
생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