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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현 Aug 13. 2021

미안해. 지금도.

가족,

이제 오래된 일이지만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내 속에 있다.

그때, 우리집에는 친할머니와 부모님과 여동생, 그리고 반려 강아지 내 딸이 같이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해외 여행을 가지 전날 방에서 할머니가 갑자기 넘어지셔서 결국 여행은 취소되고 할머니는 고관절 수술을 받으셨다. 한 달 가까이 간병인도 쓰지 않고 부모님이 번갈아 가며 케어하고 집으로 다시 모셔서 기저귀를 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식사도 따로 차려야 했고. 일 년 정도 지나자 나도 반의 몫을 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거의 5년을 지내시다 돌아가셨다. 기저귀를 갈다 할머니에게 짜증을 내고 문을 쾅, 닫았던 내 자신이 싫었지만 그랬다.

그러다 어느날인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온 나와 내 동생은 이유도 모른채 갑자기 싸워댔다. 나중에는 그저 각자의 스트레스가 부딪힌 거라고 이해를 했지만. 그날 밤 동생은 늦은 시간에 혼자 밖으로 나가고 나는 지쳐서 잠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에 깨자 부모님이 집에 없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나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뼈가 부러져서 지금 병원이야.

그렇게 전화를 끊고 거의 패닉 상태가 되어 덜덜 떨었다. 결국 동생은 허벅지까지 깁스를 하고 병원에 한참을 입원했다. 부모님은 어쩐지 그냥 넘어갔지만 나는 심한 죄책감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결국 다음 날 병원으로 갔지만 미안하다는 말 조차도 하기 어려워 울었다. 동생은 그런 내게 괜찮다고 했다.

아침 아홉 시 정도에서 저녁 8시 정도까지는 내가 동생을 수발하고 엄마는 밤에 간이 침대에서 잤다.

그러다 동생의 피부가 연약해 깁스를 더는 견디지 못해 결국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동생의 다리가 너무 얇봐 가장 작은 철심으로 우선은 시도하시겠다고 했다. 수술은 다행히 무사히 끝났지만 입원 생활은 계속되었다.

밤에 집에 돌아오면 반찬과 먹을 국을 끓이고 또 할머니를 챙기고 반려아이인 내 딸을 안고 잤다.

그리고 나중에 동생이 퇴원하고도 한참을 목발 생활을 해야해서 챙길 존재들이 집에 셋, 이었다.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의 죄책감 때문에 아직도 동생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

일 년 정도 지나서 철심 제거 수술을 했고 지금은 멀쩡하지만 나는 지금도 미안하다.

지금은 동생이 결혼해 따로 산지 오래지만, 종종 나보다 더 언니 같이 든든하지만.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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