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다시 배우는 시간_프롬과 알랭이 말한 사랑의 현실과 이상
나의 첫사랑은 스무 살을 한참 넘긴 뒤에야 시작되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찾아온 사랑이라, 그것은 어떤 열병처럼 빠르게 타올랐지만 쉽게 꺼지지는 않았다. 온돌방처럼 따뜻한 감각이 4년 동안 이어졌고, 야수 같은 세상 한가운데에 유일무이한 내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늘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이 온기를 잃고 싶지 않아 결혼까지 결심했고, 결혼이야말로 사랑의 완성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결혼은 로맨스의 주인공을 한 순간에 전쟁 같은 일상을 견뎌내는 엑스트라로 전락시킨다. 각자의 삶을 살아온 시간만큼이나 사고방식과 반응은 달랐고, 그 다름은 곧 실망으로 이어졌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라는 역할을 감당하며 홀로 고투하던 시기, 남편은 회사라는 정글 속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며 세상의 쓴맛을 배우고 있었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낭만적 사랑의 환상을 가장 빠르게 깨뜨리는 지름길이었다.
우리는 사랑을 떠올릴 때 흔히 연애 초반의 설렘을 먼저 생각한다. 사랑의 대상이 일상으로 들어와 익숙해지면 설렘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사랑은 설렘이라는 감정에 불과한 것일까.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것은 곧 사랑의 끝을 의미하는 걸까.
우리는 종종 사랑을 감정의 문제로 여긴다. 설렘이 시작되고, 마음이 식고, 관계가 끝나는 일련의 과정은 마치 저항할 수 없는 자연재해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 한 남자>는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언어로 쓰인 두 책은 공통적으로 사랑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노력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프롬에게 사랑은 기술이다. 기술이란 지식과 훈련, 그리고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인이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를 사랑의 대상에서 찾기보다 사랑할 능력의 결핍에서 찾는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능력이며, 보호·책임·존중·지식이 결여된 사랑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말한다. 프롬의 시선은 개인적 연애를 넘어 인간 존재 전체를 향한다. 고립과 불안을 느끼는 인간이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하고, 성숙한 사랑을 통해 타인과 연결될 때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사랑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며,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반면 알랭은 사랑을 일상의 자리에서 바라본다. <사랑의 기초, 한 남자>에서 사랑은 이상을 성취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불안한 인간이 부딪히며 살아가는 현실 그 자체다. 그는 연애와 결혼 속에서 반복되는 집착과 오해, 실망과 권태를 숨기지 않는다. 사랑이 흔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유독 미숙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인간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알랭은 사랑의 실패를 도덕적 결함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이해의 대상으로 삼고, 완벽한 관계가 아니라 견딜 수 있는 관계를 제안한다.
이 지점에서 두 저자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프롬이 사랑을 통해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가”를 묻는다면, 알랭은 사랑 속에서 “이미 그런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를 묻는다. 프롬의 사랑은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는 이상에 가깝고, 알랭의 사랑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이해와 관용에 가깝다. 프롬은 인간이 성숙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하게 믿는 반면, 알랭은 인간의 불안과 결핍을 전제로 사고한다.
그러나 두 책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의 두 얼굴을 나란히 보여준다. 프롬이 말하는 이해와 노력이 없다면 관계는 쉽게 소모되고, 알랭이 보여준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이상 속에서만 머물게 된다. 한쪽은 사랑의 이상을, 다른 한쪽은 사랑의 현실을 말하지만, 두 질문은 결국 같은 곳을 향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이며, 관계는 이해와 노력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기술>이 사랑을 배우라고 말한다면, <사랑의 기초, 한 남자>는 사랑 속에서 스스로를 용서하라고 말한다. 사랑을 더 잘하고 싶을 때는 프롬을 읽어야 하고, 사랑에 지쳤을 때는 알랭을 읽어야 한다. 두 책을 함께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이상으로도, 현실로도 놓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선을 갖게 된다. 사랑은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와 연습 속에서 계속 다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롬과 알랭의 사랑에 대한 사유를 접하고 나니, 그동안 내가 사랑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랑은 애타는 마음이나 로맨틱한 감정이 사라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망을 통과하며 형태를 바꾸는 일이었다. 한 사람을 깊이 알수록 실망은 피할 수 없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을 다시 보려 애쓰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주말 오후,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소리를 배경으로 잠든 남편의 모습도, 이제는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 마음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은 거창하지 않다. 남편이 건네는 따뜻한 생강차 한 잔이면 충분하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알싸하고도 달콤한 생강차 속에, 조용하고 오래가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