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불안한 성장 속에서 ‘나’라는 문장을 완성해 나가는 법
“지금 네 인생이 불안하지는 않니?”
올해 고3이 된 아이와 학원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불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아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언제 불안을 느꼈을지 궁금했다. 아이는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불안하다고 말하며,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덧붙였다. 막연한 불안에 맞서기 위해 공부를 선택했다는 아이가 대견했다.
독서 모임에서 읽은 성장 일기 <여전히 지구 끝, 때때로 맑음>과 성장 영화 <보이후드>를 보고 나서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다. 송영석의 일기와, 여섯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한 소년의 12년을 실제 시간의 흐름 속에 담아낸 영화 <보이후드>는 서로 다른 매체임에도 ‘성장’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공유한다. 책과 영화라는 장르적 간극을 넘어, 두 작품에는 불안과 결핍이라는 성장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성장을 다루는 무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송영석의 성장은 고립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 유일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라는 제한된 공간, 가족과 친구로부터 격리된 지구의 끝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내면의 거울을 들이민다. 거친 파도에 배가 흔들리고 식재료가 나뒹구는 아수라장 속에서, 그는 자신이 이곳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과 삶의 선택을 끊임없이 반추한다. 이곳에서의 성장은 외부 자극이 아닌, 폐쇄된 공간 안에서 스스로를 깎고 다듬으며 내면의 밀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반면 <보이후드>의 메이슨은 연속성 속에서 자라난다. 영화는 인위적인 편집이나 극적인 사건을 최소화한 채, 시간의 흐름 자체를 정직하게 노출한다. 메이슨의 성장은 어떤 결심이나 깨달음의 순간보다 이사, 부모의 이혼과 재혼, 첫사랑 같은 일상의 파편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이루어진다. 송영석이 망망대해를 누비는 쇄빙선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성장의 농도를 짙게 만들었다면, 메이슨은 시간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몸을 맡긴 채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두 작품의 흥미로운 공통점은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송영석과 메이슨은 세상에 순응하지도, 그렇다고 정면으로 저항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다만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찾아 나선다.
송영석은 학창 시절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반복된 루틴이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무기임을 깨닫는다. 그는 매일 운동을 하고, 독서를 하고, 트럼펫을 연주하고, 일기를 쓴다. 몸이 부서질 듯 고된 노동 뒤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펜을 든 이유는, 기록하지 않으면 휘발될 자신의 존재를 붙잡기 위해서였다. 그의 일기는 흔들리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도구이자, 자기 자신과 나누는 치열한 대화였다.
메이슨 역시 잦은 이사와 엄마의 반복된 재혼과 이혼, 첫사랑과의 이별처럼 불만족스럽게 변화하는 환경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적응해 나간다. 누나와 달리 성실하지도, 눈에 띄게 뛰어나지도 못한 자신을 탓하기보다 자신만의 강점을 발견한다. 사진을 통해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정립해 간다. 뷰파인더 너머로 세상을 관찰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메이슨의 모습은, 일기를 통해 내면을 문장으로 옮기는 송영석의 모습과 자연스레 겹쳐진다. 결국 성장이란, ‘나’라는 존재를 타자처럼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성장은 사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송영석에게는 요리라는 구체적인 노동이 있었다. 극지방의 영하의 추위와 적도를 지날 때의 극심한 더위, 거친 파도 속에서도 대원들의 끼니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는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의 성장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성실한 노동 끝에 얻어진 삶의 근육이었다.
<보이후드>에서 메이슨을 지탱하는 것은 사진이다. 불안정한 가정환경과 혼란스러운 청소년기 속에서 사진은 그가 세상을 해석하는 유일한 언어가 된다. 송영석이 칼을 쥐고 식재료를 다듬으며 마음을 다스렸다면, 메이슨은 셔터를 누르며 찰나를 붙잡음으로써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노동과 예술, 이 둘은 모두 불확실한 삶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세우려는 성장의 몸부림이다.
영화의 마지막, 대학생이 된 메이슨이 산 위에서 친구와 나누는 대사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우리가 순간을 붙잡는 게 아니라,
이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지.
이 말은 북극의 백야와 남극의 오로라 아래에서 송영석이 느꼈을 감정과 맞닿아 있다. 지구의 끝에서도, 텍사스의 평범한 가정집에서도 인생은 늘 흔들리고 불안하다. 그러나 그 흔들림을 기록하고, 순간의 무게를 견뎌낸 사람에게 성장은 어느 날 선물처럼 다가온다.
송영석이 인용했던 문장처럼, 인생은 고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부터는 더 이상 고해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여정이지만, 때때로 맑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맑음을 회복한다. <여전히 지구 끝, 때때로 맑음>과 <보이후드>는 말한다. 성장은 먼 미래의 목적지가 아니라, 오늘 당신이 남긴 일기 한 줄과 당신이 응시한 찰나의 풍경 속에 이미 존재한다고.
오늘 저녁, 아이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가 그동안 느껴왔던 결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한다. 그 대화 속에서, 아직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은 아이의 성장이 조용히 자라고 있음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