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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형 Oct 26. 2024

견위수명 見危授命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바친다

10월 26일 9시 30분 115년 전 지금 이 순간

10월 26일 9시 10분

하얼빈역 플랫폼에 이토가 탄 열차가 도착합니다.

러시아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일본인 환영객들이 일장기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토가 객차에서 내리고 러시아 의장대가 이토에게 경례를 하고 그는 이에 화답합니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30대의 한 남자가 이토를 찾고 있습니다. 그는 이토를 본 적이 없기에 많은 사람과 섞여 있는 이토를 알아보기 힘들어 일을 그르치는가 싶어 불안했습니다. 때마침 누군가 이토의 이름을 부르자 백발에 길고 흰 수염을 가진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을 보고 그가 바로 이토임을 알았습니다.     



9시 30분

그 남자는 품속에 있던 총을 꺼내 이토를 향해 조준하고 이토가 러시아군 사이를 지나가는 순간 그를 향해 첫 발을 쏘았습니다. 첫 번째 총알이 이토의 몸을 박히고 2발을 추가로 발포합니다.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토의 모습을 보고 그는 혹시 다른 사람이 이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토 주변에 서 있던 일본인 세 명에게 총을 쏘아 중상을 입히고 총알 한 발을 남긴 채 이렇게 외치고 러시아 헌병에 체포됩니다.     



코레아 후라!
    코레아 후라!    







다들 아시겠지만 그 남자는 바로 안중근 의사입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5주년 되는 날입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위태로운 순간에 영웅이 등장하곤 합니다. 우리가 영웅이라고 여기는 분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뿐인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이타적인 삶, 절대 꺾이지 않는 신념, 그리고 극적인 죽음입니다. 이 세 가지를 영웅의 조건이라고 한다면 대한제국이 망국으로 가는 위태로운 순간에 한 줄기 희망을 준 영웅이 바로 안중근 의사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제대로 표현한 말이 바로 견위수명見危授命입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다는 이 문장은 <논어>에 나오는 데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즉, 이로움을 보았을 때에는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당했을 때에는 목숨을 바치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이 문장이 안중근 의사에게 큰 뜻을 품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글은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쓰신 유묵 중에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살아생전에 보여주었던 말 또는 그의 글이 행동과 일치하기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지금까지도 회자 되는 문장이겠지요.      


사실 구한말 대표적인 반민족행위자이자 매국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이완용은 그의 친일 행적과는 별개로 명필가입니다. 그가 남긴 글씨를 보면 행서와 초서가 뛰어나고 우수한 필체라고 하지만 그의 글씨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이완용이 매국노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였다면 그가 쓴 글씨의 가치는 지금과는 달라졌겠지요.      


글씨를 얼마나 잘 썼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글쓴이의 인품과 평판입니다. 글씨의 가치는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자신의 삶과 일치하는 신념을 글씨로 표현한 것처럼 올바른 인생을 살아야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남길 수 있는 것이겠지요.     






몇 주 전부터 독서 모임 선배님께 캘리그라피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배움의 동기가 캘리의 시각적인 아름다움이었는데 오늘 이 글을 쓰다 보니 글씨라는 것은 글씨체보다 글씨를 쓴 사람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머물렀습니다.


미적인 아름다움보다 문장의 의미에 나의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다면 그 글씨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감정이 전해지는 것이겠지요. 결국 글씨에 자신의 인생을 담는 것이 아닐까요. 의미있는 날 아침,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떠올리며 좋은 사람의 글씨로 기억되기 위해 한글자 한글자 정성을 다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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