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모해?"
"엄마 뭐 하구 있어?"
오늘도 어김없이 나의 안부를 챙기는 딸의 카톡이 도착을 했다.
"엄마? 가롱이 생각하고 있었지"라고 대답을 해준다.
"에이~~~ 나도 엄마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나는 아이가 사다놓고 간 나쵸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회사에 다녔을 때도, 직장을 퇴사를 하고 지금처럼 집에 있을 때도 항상 '엄마 모해?'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 청소 중이야~"
"엄마? 동네 한 바퀴 산책 나왔어~"
"엄마? 베란다에서 놀이터에 나온 아이들 바라보고 있는 중이야~"
그때그때 내가 하고 있는 행동과 마주한 상황에 따라 답장을 해주고는 한다.
다만 예전이랑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답장을 해주는 속도다. 회사에서는 전화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없어서 가끔 답장을 해주거나 아예 못해주는 경우가 있었다면, 지금은 바로바로 확인하고 대답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답을 해주는 방향도 달라지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엄마 모해?'라고 물어 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 일하고 있지~'라고 그것도 가끔 대답을 해주었다. 나의 고유업무 외에도 단체 특성상 사업부의 행사를 지원해야 했기때문에 나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늘 움직임이 많았다. 전화기를 볼 시간이 많이 없었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면 나는 어떨까?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다시 직장을 다니게 되어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엄마의 빈자리에 대한 미안함이 아주 많이 남아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음의 빛 때문에 많이 미안하기도 하고 알아서 커버린 아이들이 너무 고맙기도 하다. 큰아이 초등 5학년 때 캠프에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쓴 일기와 작은아이 혼자 유치원에서 퇴근하는 엄마를 바라보던 눈에 가득했던 슬픔의 호수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일하는 엄마 괜찮다고 의젓하게 말해주던 우리 큰아이 가롱이가 회사에 첫 입사를 하고 보내왔던 카톡이 있다.
아기가 아파서 회사에 못 나오거나
갑자기 중간에 가는 직원분들을 보고 있으면
어렸을 때 우리가 다치면 달려오던
엄마, 아빠가 생각나고 그러네.
이제는 다 커서 직장 생활하고 있네.
한걸음에 달려오던
엄마, 아빠가 있던 그 시절이 조금 그리워.
그렇지만 엄마 있잖아.
내가 사회생활해보니까
엄마 아빠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동안 우리 키우느라 정말 고생했어.
이제는 우리 차례니까 기다려
카톡을 읽고 나서 하루 종일 울음이 따라다녀서 진정을 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나도 아침 식탁에 앉아서 열심히 안부를 배달해 보고 있는 중이다.
"따님 모해?"
"아드님 모해?"
그리고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우리 5남매와 '사랑해' 전투를 치르고 있는 친정엄마에는 "엄마 모해?"라고
카톡 대신 전화로 대신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