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생강 천원어치만 살 수 있을까요? 안되요?
바구니에 담겨진 생강이 필요한 양보다 많아서 조금만 살 수 있냐고 가게마다 묻고 있는 중이다. 시장 골목의 마지막 가게도 역시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가기 싫어서 그 마지막 가게에서 한 번 더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생강 한 무더기는 너무 많고 혹시 천원어치만 팔면 안되나요?"
역시 같은 대답이다. 그렇게 팔아본 적도 없고 무게를 재서 담아 놓은 것인데, 덤도 줄 테니 그냥 다 사가라고 말을 한다. 나는 덤 안줘도 되니까 한쪽만 천원에 사고 싶다는 말을 다시 해봤다.
"아니 가져다가 두고 두고 먹으면 되지. 그러면 손님이 손해잔아. 거 참 별스럽네" 라고 말하는 주인의 말이 바람을 타고 확성기처럼 울려 퍼져갔다. 시장을 보러 온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구경하며 걷느라 골목은 순식간에 정체가 되버렸고, 그 별스런 사람이 누군지 보러온 주변 상인들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살림하는 사람이 무슨 셈을 그렇게 해, 덤도 준다는데 그냥 사면 되겠네"
"조금 샀다가 모자라면 큰일이지, 다른 사람들은 덤을 달라고 난리인데 본인만 손해지" 하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과 함께 한마디씩 거들고들 나섰다. 이래도 천원어치만 살거냐는 주인장의 표정에 그냥 사야되나 하고 살짝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덤 문화에 최적화된 사람이었고, 양손 가득 덤투성인 검정봉투의 낙을 즐겼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도, 나와 남편도 집에서 밥 먹는 횟수가 점점 줄고 있다. 결국 냉장고에서 나오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덤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조금만 더 주세요’라는 말은 언어 사전에서 지워지고 있는 중이다.
시장에서 수 많은 눈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몇 차례의 밀고 당김을 통해 덤도 모르는 손해를 감수하고 천원어치를 사서 그곳을 빠져나오는데 성공을 했다. 덤과 손해라는 지뢰밭을 통과하고 온몸이 기진맥진이 된 나를 보고 무슨 일이냐며 묻는 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시장에서 있었던 일을 딸아이에게 숨도 안 쉬면서 주절주절 말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듣던 아이는 나에게 할머니들과 천원어치 전투에서 살아남은걸 축하한다며 등을 토닥여 줬다. 필요한 만큼 사는 나의 생각이 손해라고 말하는 그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덤을 거부하는 나만의 사소한 사정은 앞으로도 주~욱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