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의 숫자가 하나씩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추석이 다가오는 소리가 시계 초침처럼 내 머릿속을 울리고 있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차려야 하는지를 노트에 써보면서, 미리 하나씩 사놓아야겠다는 작은 다짐과 함께 적당한 규모의 동네 마트로 장을 보러 나갔다. 며칠 전 보다 가격이 오른 물건들을 손에 들었다 놨다 하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필요 없는데 산 것은 없는지 시장바구니를 다시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어르신~~ 반품은 영수증이 있어야 해요.
물건 샀을 때 받았던 영수증요.
그거 없으면 안돼요.
마트 계산대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무슨 상황인지 궁금해진 나는 시장바구니를 들고서는 눈과 귀를 그곳에 고정시키고 지켜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할머니 한 분이 사갔던 물건들 중 일부를 반품해달라고 가져온 모양이었다.
아니 나 그런 거 잘 몰라
그냥 해주면 안 되나
허리가 반쯤 구부러진 할머니는 영수증 없는데 하면서 부스럭부스럭 주머니를 뒤져 보지만 모두가 원하는 영수증은 나오지를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무엇이 있을까 하는 표정으로 구부정한 허리만 숙였다 폈다 하면서 물건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웅성웅성 계산대 앞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도 걱정이 되어 슬금슬금 그 앞으로 가보았지만 정작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이 몰리자 계산하던 점원은 본인 잘못이 아니라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계산대 서랍만 드르륵드르륵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었다.
거참 어떻게 좀 해보구려
한참을 그러는 사이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할아버지 한 분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그 상황을 재촉했고 그 순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과 계산원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요, 제가 그러는 게 아니라 규정이 그런 거예요"라고 말하는 점원의 목소리에는 난처함보다는 본인도 권한이 없는 직원이라는 억울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할머니 쪽으로 기울었던 눈동자들이 반쯤 그건 그렇지 하는 동조의 눈빛으로 점원에게 이동을 하는 게 보였다. 나 역시 덩달아서 할머니 한번, 장바구니 한번, 계산대 한번, 점원 한번 번갈아가며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이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트를 둘러보았지만 우리 모두가 나타나 주길 바라는 그 누군가는 보이지가 않았다.
짧은 시간 었지만 나의 감정은 할머니의 구부정한 허리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두 손을 계산대에 의지한 채로 기대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스템에 익숙하지 못한 나의 모습도 보이고 우리 부모님 모습도 보여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분명 고객 응대 매뉴얼이 있을 텐데, 나의 입안에 혼잣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로 고여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마트 내 스피커에서 그 모든 사람들 머리 위로 이런 안내방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저희 00 마트를 찾아 주신 고객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야채 코너에서 시금치를 ~~ 어쩌고저쩌고...
분명 저 어르신도 고객의 한 명임이 분명한데도, 구매할 때만 고객 우대이고 반품 처리 과정에서는 고객이 아닌 이방인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계산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그 모습은 계속 이어졌지만, 전과 후의 사정은 각자의 몫인 채로 박제가 되어갔다. 심란한 마음을 뒤로하고 마트 문을 나서니 홍보 현수막이 바람에 제멋대로 펄럭이고 있다. 어쩌면 할머니의 심장도 어쩔 줄 몰라서 제멋대로 쿵쾅거리고 있지 않았을까? 별별 생각을 다하다가 건널목의 신호를 놓치기 일보직전 후다닥 달려야만 했다.
“그 할머니 어떻게 되었을까? 잘 해결되었으면 좋으련만”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면서도 아까 그 모습이 신경이 쓰여 돌아오는 내내 뒤 꼭지가 근질근질거렸다.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야만 할 것 같은 조바심이 나를 계속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홀로 집에 있는 엄마가 잘 계신지,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엄마의 시간은 안녕한지, 전화기 버튼을 누르는 나의 손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