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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애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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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Nov 14. 2022

요즘 사람들중에는 김치를 사먹는 사람들도 있다는구먼

아버지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저에게 생겨난 행동들이 있어요.


그중에 하나가 어르신들 옆에서, 눈은 거리를 보는척 앞을 향하고

귀는 어르신들 쪽으로 크게 열어 놓은채 두런 두런 나누는 담소를 듣는거예요.


어르신들이 하는 이야기에는 희노애락이 가득 담겨 있지만

특히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에 대한 안부와 당부, 그리고 요양병원,요양원에 간 이웃지기들의

소식에 대한 말인것 같아요.


그럴때 마다 옆에서 아닌척 듣고 있는 나도

마음에 찬바람이 한바퀴 휘~~ 돌고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매일 그런 이야기만 들려 오는것은 아니랍니다.


오늘은 아주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는데 들어 보실래요?


여느때처럼

어르신들의 위치에서 두칸 떨어진 곳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위장하고, 잠바에 손을 푹 찔러넣고 조용 조용

귀를 열고 마음속 주머니에 목소리를 담는 중이었어요.


요즘이 김장철인만큼

대화의 주제가 온갖 김치의 종류와 젓갈, 그외의 야채의 시세등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어요.

그리고 아들 딸의 머리수를 세면서 몇 포기를 담을지로 이어지던 중이었어요


"그런데말여, 요즘 사람들중에는 김치를 사먹는 사람들도 있다는구먼 글쎄"

"우리는 지금껏 담아 먹고 있는데, 사먹는 사람들은 뭔맛으로 먹는 것일까? 궁금하네"

"그 머시기, 배달해주는 것이 워낙 잘 되있응께 절인배추도 그것으로 받기도 한다는구먼"

"그래도 해먹으면 그러면 좋은것인디"

"우리때랑은 시절이 다르다잔여요"


한참을 귀동냥을 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시골 마당에서 다같이 김장을 하던 그 시간으로 행복하게

여행중이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어르신들의 머리 방향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하더니 질문의 화살이 쏟아졌어요.

"여봐요... 거기도 김치 집에서 담가요? 아니면 사서 먹어요? 궁금해서 그러네요. 말좀 해봐요"


어르신 한분이

"당연한 걸 묻고 그런대, 김치 담가먹겄지... 안 그런대요?"


몰래 엿듣다가 걸린것도 놀랬는데,

사실대로 사먹는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담가 먹는다고 해야 하나 엄청 고민했어요.


아버지 사실, 저도 김치를 사먹기 시작했거든요.


어르신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듣고 싶은거여서 저에게 질문을 한 것 같았어요.


질문에 뭐라 대답을 해야할지 심장과 입술이 동시에 동서남북으로 요동치기 시작했어요.


"아...

네...

그게...

얼마전까는...

저도...담가 먹었는데, 여러가지 상황으로 얼마전부터 사먹고 있어요..하하하..."


대답하면서 제 고개가 왜 자꾸 땅으로 향하는 것일까요.


"그려요? 우리가 고연히 물어 봤네. 곤란하게 했구먼, 사정이 있으니까 사먹어도 되지 머 "


그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집으로 돌아 오는길에 제가 요즘 사람에 해당하는것인지 아닌지 황했던 시간이 지나고 제 정신으로 돌아왔을때,  더 이상 그 벤치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좀 서글펐어요.


그래도 놀이터가 세군데 더 있으니까 다음번에는 다른곳으로 가보고, 한참 뒤에 그 놀이터로 다시 가보려구요. 그래도,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속에서 머물수 있게 해주는 어르신들의 담소가 너무 좋거든요.


아버지도 제가 김치를 사먹는것에 대해서 "얼레?" 그러실까요?


총각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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