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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Jan 03. 2023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일까?

tvn에서 방영되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다시 보는 중이다.


본방 사수를 했던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 시즌1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여서 마음껏 감동하고 마음껏 웃고, 진정한 마음으로 슬퍼하면서 시청했었다. 하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는 보다가 중간에 멈춰야만 했다. 왜냐하면 재미있게 보던 중에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입원을 했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었다.


모든 게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것이라서 그 후로도 계속 죽음이란 단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다가, 간신히 찾아들었던 비상구가 생로병사를 소재로 한 책과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면서 슬픔에 대한 탄력을 길러보는 것이었다. 1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시즌2가 슬픔을 받아들이는 처방전이 되어주고 있는 중이다.


내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 드라마를 다시 보는 이유는 드라마 속 환자와 보호자가 다 엄마, 아빠, 형제, 자매 같은 감정이입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가,  저 드라마 속 의사 같은 분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다.

내 주변인들은 현실에서
저런 의사들이 어디 있겠냐며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들을 했다.


사실 나도 나이가 들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들기도 했지만,  환자의 말을 듣는 의사의 태도에서 심리적 안정보다는 뭔가 불편한 덩어리 같은 것이 생성이 되는 경험을 간혹 한 적이 있다. 나의 증상을 다 설명하기도 전에 무엇인가 재촉하고 일반화시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시어머니였다. 고관절 수술전날, 수술동의서를 설명하러 와서는 수술 후 5년 내 사망, 3년 내 사망 등등을  보험 약관 읽듯이 기계처럼 읊어대기 시작했다.  병실 밖에서 듣겠다고 의사를 데리고 나가려 했지만 시어머님은 '하나님이 부르면 가야지' 하면서 그냥 같이 듣겠다고 해놓고는 결국 시어머니는 그날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만 했다.  퇴원 한참 후에 그때는 너무 무서웠다는 솔직한 고백과 함께 수술이 잘돼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을 당신이 거듭 말을 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는 경험 또한 있다.


아무리 형식적인 절차라고 해도 사망에 대한 설명은 환자와 보호자의 정신적 안정과는 거리가 너무 먼, 아니 오히려 마음을 무너뜨리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던 같은 공간에서 그 생각을 조금은 잦아들게 만들었던 경우가 있기도 했다.


6인실, 어머님 앞에 다른 환자에게 수술동의서와 수술 과정을 설명하는 어떤 의사의 경우가 그랬다. 오자마자 환자 앞 침대 난간에 반쯤 무릎을 구부린 상태로 조곤 조곤, 천천히, 공포감이 들지 않는 따듯한 목소리로 한참 동안 설명을 했다.  불안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럼 죽을수도 있나요?'라고 묻는 환자에게 최악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니 너무 불안해 하지 말라며 아이에게 다정하게 이야기하듯이 대답해주었다. 그 분위기가 너무나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여서였을까?  나의 마음은 온통 그분의 그림자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있다.


무엇이 부러웠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의사의 태도였다.
경청과 공감
그리고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는 차분한 목소리.
바로 그것이 포인트였을지도 모른다.

오늘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다시 보던 중 소아과 의사역할의 유연석이 보호자들에게 대하는 태도에서 갑자기 그분이 떠올랐다. 물론 친절이 진료 성과까지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의사의 충분한 설명과 친절한 태도만으로도 질병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에 대한 기사를 종종 볼 때마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는 바람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래서였을까? 환자의 입장과 보호자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잘 그려내는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과 관찰력에 궁금증이 들어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기획의도를 찾아서 읽어 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로병사가 모여, 수만 가지 이야기가 녹아 있는 곳.
탄생의 기쁨과 영원한 헤어짐의 전혀 다른 인사들이 공존하는 곳.
같은 병을 가진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다 가도,
때론 누군가의 불행을 통해 위로를 얻기도 하는 아이러니 한 곳.
흡사 우리의 인생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곳.
바로 병원이다.
<중략>
언제부터인가, 따스함이 눈물겨워진 시대.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작지만 따듯하고
가볍지만 마음 한편을 묵직하게 채워줄 감동이 아닌 공감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결국 사람 사는 그 이야기 말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기획의도가 그려내는 그 사람 사는 이야기 덕분에, 시어머님 병실에서 경험했던 신뢰감 들게 했던 의사의 태도 덕분에, 오늘도 어디에선가 생로병사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을 의료진 덕분에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 사는 그 이야기속에서 마음을 눕혀보기로 했다. 비록 아버지는 곁에 안계시지만,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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