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엄마가 나에게 전화로 돌림노래처럼 되풀이하는 말이다. 사별이라는 상황이 엄마의 삶과 인생에서 가장 무섭고 잔인하고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며,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랬을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겠지만 부모 중 한 명이 떠나고 나면, 다른 한 명의 돌봄이 현실로 바짝 다가온다. 특히 나의 친정엄마는 남편의 죽음 뒤로 어린아이처럼 보채는 성향이 자꾸만 짙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형제들과 대화를 통해서 안 사실이지만, 엄마는 나하고 있을 때만 그렇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친정엄마의 외로워 죽겠다 라는 그 말은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의 어린 시절부터 죽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나는 이 집안의 5남매 중 둘째로 그리고 맏딸로 태어났다. 생각해보면 나와 엄마는 부모 자식 간이었지만, 항상 엄마 대신의 역할을 원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집안 살림을 거들었고, 결혼을 해서는 부모님의 병원 케어와 돌봄을, 그리고 형제들의 돌봄까지 도맡아 했었다.
엄마는 이런 나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는 했다. 그리고는 '말없는 너의 아버지 때문에 너무 외로워 죽겠다, 우울해 죽겠다'는 말을 덧붙이고는 했었다.
늘 당신이 먼저였고, 엄마의 감정이 먼저였다. 흔히 말하는 모녀지간의 살가움 같은 감정은 애당초 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이런 버거움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내가 목말라하던 모녀지간의 애정을, 그 빈자리를 늘 채워주던 아버지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야 내가 아버지를 너무 의지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처럼 따라붙는 엄마의 우울함과 외로움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도조차도 할 수 없게 수시로 방해를 했다. 엄마는 말로는 아버지가 없어 외롭다고 했지만, 실지로는 본인의 감정을 쏟아낼 곳으로 나를 택한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엄마에게는 양가감정이 있다. 여성으로서 안쓰러움과 그 억척스러움에 대한 반감이 가득했다. 속으로는 벗어나고 싶다고 외치지만 행동과 말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엄마를 대했기에 부모님은 아마도 맏딸이자 보호자이자 누구 대신으로 여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감정들을 마주할 때마다 죄책감과 책임감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지금 엄마에게 보이는 마음은 효가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예의를 지키는 것에 가까운 것이라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아니 측은지심에 가깝다는 표현이 맞을것 같다.
어느 때였을까? 지인이 아들과 소통을 힘들어 하는남편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심리학을 택했다면서도 아직도 숙제는 풀지 못하고 있다는 반전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전공자도 아니고 그런 쪽에 학습도 없어서, 오은영의 화해라는 책도, 부모 자식에 대한 심리학 정보도 유튜브로 찾아보았지만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애정결핍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그러다가 나의 해방 일지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고 해방 클럽 첫 모임에서 염미정(김지원)이 했던 대사에 몸과 마음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에 갇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다. 진짜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게 인생이지. 이게 사람 사는 거지'라는 말을 해보고 싶다.
나는 해방 클럽에 대한 설명과 해방 일지를 쓰게 된다면 무엇에서 해방되고 싶을까? 나는 아마도 역활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아닐까 싶다.
나의 엄마는 본인의 우울을 받아내느라 힘든 딸의 마음을 알까? 과연 나의 삶은 나의 인생은 수많은 역할의 존재로서가 아닌 오로지 나 자신으로서 정신적 독립을, 해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도 낮에 엄마가 전염시키고 간 외로움과 우울이 나의 곁을 지키고 서 있는 중이다.
'어디에 갇힌 건지는 모르겠지만 뚫고 나가고 싶다' 라는 염미정의 대사처럼 나 역시 딸이라는, 장녀라는 역할에서 해방되고 싶다.
아버지는 삶과 인생을 함께한 부부였지만, 한평생 엄마의 성향 때문에 너무 고단했다는 말을 나에게만 독백처럼 털어놓았었다. 항상 일방통행이었던 엄마의 성향때문에 아버지도 외로웠다고 말이다. 나도 그런 사실을 알았지만 모른척했던 부분도 있었는데, 그럼 아버지는 그 감정에서 해방이 되어 다행인 것인가? 아버지에게는 죄송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비록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해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는 전달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엄마가 외로워 죽겠다고 말하지 않도록, 우울해서 죽겠다고 말하지 않도록 엄마의 안뜰을 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고 서툰 다짐을 해보고 또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