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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장 수집가 Jun 02. 2023

또 그냥 왔네

거꾸로 쓰는 육아일기

“또 그냥 왔네”    

  

요즈음 내가 반복하는 혼잣말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나의 일상에서 상황에 따라  태어나는 혼잣말을 목록화 하면 종이 한 장은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설거지를 하다가 구멍 나버린 고무장갑 때문에 혼잣말이 하나 더 늘어나고야 말았다. 슈퍼에 고무장갑을 사러 나섰는데 결국 고무장갑은 아예 살생각도 못하고 과자만 잔뜩 사온 것이다. 다른 때는 메모를 해서 다녔지만 몇 개 되지 않는 가짓수를 적으려니 귀찮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 설마 그걸 잊으려구 하는 생각도 들어서 그냥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까지는 고무장갑이 기억 1순위였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그 기억에서 아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또 그냥 왔네. 내 그럴 줄 알았다. 아 나의 기억력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50이란 나이를 맞으면서 건망증과 친구가 된지 한참 되었지만, 집 비밀번호, 안경을 쓴 채로 안경 찾기, 결재한 카드 단말기에 꽃아 놓고 그냥 오기 등 요즈음 자주 반복이 되는 상황에 좀 당황스러워 질때가 많아지는 중이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식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아들이 치매와 건망증의 자가 진단법으로 간단 테스트를 해보잔다.   

   

"괜찮네 엄마, 건망증이네 자연스러운거야. 너무 걱정하지마."   

   

다행히 건망증에 가까운 형태를 보이는 나에게 엄마는 갱년기 건망증에 해당되고, 저녁에 1시간 걷기를 꾸준히 하고 있고 손으로 하는 활동을 하고 있으니 정신건강에 해로운 걱정은 그만하라고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어찌 자꾸 이러는지 건망증님 제발 그만 찾아와주세요. 당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아요. 그대와 너무 친해지면 우리 애들이 걱정한단 말이예요.” 라고 중얼거리는 나의 혼잣말이 들렸는지 “엄마의 혼잣말이 자꾸 늘어서 큰일이네” 라고 걱정하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뿔싸, 내가 아이에게 혼잣말을 하게 만들고 말았구나” 또 다시 이어지는 나의 자책 타임들...

    

다음날 기억력에 좋은 견과류 시켰으니까 잘 챙겨먹으라며 딸이 카톡을 보내왔다. 어렸을적에는 부모님이 본인들에게 길을 잃지 않게 등대 역할을 했으니까, 이제는 자기들이 보호자가 되어 등대가 되주겠다며, 좀 헤메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들 덕분에 조금 시들어있던 마음의 정원이 생기를 되찾았다. 이전에는 우리가 아이들 마음의 정원에 잘 자라라고 물을 주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부모 마음속 정원에 시들지 말라고 물을 주고 있는 중이다. 

     

다음날 도착한 견과류 한봉을 꺼내 먹으면서 아이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주먹에 힘을 주면서 힘차게 외쳐보았다.

       

“건망증아 덤벼라, 내가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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