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잠자고 있는 책꽃이를 보다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김점선 화가의 책을 꺼내 읽어 보았다. 김점선 화가의 책에는 동심이 가득 들어 있어서 좋다.
그림 보는 법을 잘 모르지만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특히 오리 그림이 그렇다. 내 주변에서 있는 친근한 소재들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작가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있어서일 수도 있다. 본인을 천방지축이라고 표현도 했는데 그림 속에서 그녀의 행동과 말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가 김점선 화가를 알게 된 것은 인사동 어느 갤러리에서였다. 1층은 굿즈 판매점이었고 2층에 그녀의 그림들이 전시 중이었는데 보는 내내 미소 지었던 생각이 난다. 그 뒤로 책을 사게 되었고 그렇게 힘들 때마다 나에게 동심을 처방해주고 있다.
그녀가 쓴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꽃밭을 가꾸고 오리와 거위를 기르는데, 오리와 거위한테 꽃은 뜯어먹지 마라 하고 백 번쯤 얘기했는데, 뜯어먹었다.
그래서 하루는 한 마리씩 잡아서 왼손으로 끌어안고 오른손으로 궁둥이를 퍽퍽 소리 나게 때렸다.
< 나, 김점선 중에서>
버드나무와 꽃과 오리
이 부분을 읽던 중에 예전의 기억 한토막이 떠올랐다.
예전 회사 근처 대학교의 연못에 오리 한 쌍이 있었는데 이 글을 읽기 전에는 그냥 오리였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이후로 작가가 한 말들이 자꾸만 떠올라서 정말 그야말로 전지적 독자 시점이 되어, 그때부터 오리는 나의 관찰대상으로 변해 버렸다.
대학교로 점심 산책을 갈 때마다 늘 오리를 찾아서 단독행동을 하는 바람에 같이 간 동료들에게 잔소리 폭탄도 듣기도 했다. 비록 오리가 꽃을 뜯어먹는 장면은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한동안 나의 점심 산책이 너무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오늘도 김점선 화가 덕분에 먼지만 쌓여가던 책장에 오리를 쫓던 그녀를 꺼내, 잠시 방구석 책방을 오픈해 보았다.
이렇듯 나에게 재미와 에너지를 전해주던 그녀는 아쉽게도 2009년 암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지만, 죽으면 오리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했던 그녀의 바람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독자의 마음으로 기도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