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아버지가 입원했던 그 병원에서 엄마가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친정엄마의 나이는 올해 76세,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종합검진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우리 오 형제는 말로만 "부모님 종합검진받게 해 드리자, 해드리자"라는 말만 반복했을 뿐 실지로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아버지가 투병하는 동안 병원 문턱이라는 곳을 마르고 닳도록 넘나들면서 '진작에 검진 한 번만 받았어도'라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해야만 했다.
그 후회가 죄책감을 낳았고, 그 죄책감이 친정엄마를 vip종합검진센터에 이르게 했다.
검진을 마치고 나서 친정엄마는 ,
" 너희. 아버지는 귀도 잘 안 들렸는데 중환자실에서 혼자 견뎠을 시간이 얼마나 긴장되고 무서웠을까?
나는 네가 이렇게 같이 기다려줘도 검진센터 안에서 혼자서 검진을 받는 동안 두렵고 무서웠다" 며
아버지가 견디셨을 4개월의 투병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엄마가 되풀이하는 말이 있었다.
너희 아버지가 참 무서웠겠다.
왜 이제야 너희 아버지의 마음을 살피게 되는 걸까?
사실 이런저런 이유로 엄마는 아버지의 투병기간 동안 만남을 거부하셨고, 아버지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마지막까지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엄마의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나 또한 "그러게. 엄마는 왜 이제야 그러시는 걸까? 진작에..."라는 혼잣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런 후회와 미안함과 죄책감이 든다 한들 과거가 달라질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면서 시들고 말라버린 친정엄마의 마음의 정원이 더 이상 방치되지 않도록 내 태도를 바꾸는 중이다.
늘 엄마와 나누는 마음의 거리에는 1m의 간격이 있었지만, 이제는 점점 좁혀가는 중이다. 점점 느려지는 엄마의 보폭에 내 걸음의 속도를 조절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게 왜 이제야'라는 원망보다 '이제라도 조금은 느끼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련다.
그리고 vip종합검진을 이제야 받게 해 드렸을까?라는 후회보다 이제라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제부터 조금씩 엄마의 마음에 밀착해 보리라 다짐 중이다.
아버지가 아팠을 때 '다 낳으면 해 드릴 거야'라고 했던 이상한 다짐이 아닌 지금도 실천 가능한 그런 다짐만 해보리라. 아버지도 그러길 바라시겠지. 아버지에게 받았던 사랑을 엄마에게도 나누어주기를 말이다.
우선은 시골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아침은 평안했는지 안부를 살펴보련다.
엄마? 오늘은 무슨 반찬하고 아침을 드셨어요?라고 말이다.
그리고는 말하리라. 아마도 아버지는 무서움과 외로움과 고통에서 해방되서 하늘나라에서 평안한 날들을 보내고 계실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