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라

by 나현수

여기는 소리의 각축장

말을 멈추는 법을 배우지 못해

실없는 농담으로 침묵을 깨뜨리고

눈치껏 소리의 바통을 이어받아야 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진정,

어릴 때 보았던 시골집이 그리워진다.


밤하늘에 별과 달이 갈 길 가고

살랑대는 바람이 무심하게 스쳐갔던 곳

모두가 침묵을 반기어

울어대던 벌레들 소리마저

은하수 풍경, 배경으로 자리했던 곳.


침묵을 바랄 때

이를테면 시골집을 떠올릴 때,

침묵으로 나를 감싸주는 이가 있다면

나는 격정적으로 그를 사랑할 것이다.


소리가 소리와 싸워야 하는 이곳,

말이 가치를 상실한 폐허에서

누가 단비를 내려줄 것인가?


누구라도 좋다,

침묵하라.


나는 너를 격렬히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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