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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Jun 19. 2024

글이 없었더라면

내 삶의 많은 부분은 미생

국민학교1학년,

 종이도 귀하던 그 시절 스티커가 아니라 담임 선생님께서 칭찬 포도알 종이딱지를 주시면 신나게 집에 가지고 와서 색칠을 하여 미리 벽에 붙여놓은 포도송이에  풀로 붙었다.

완성된 보라색 포도송이를 1등으로 가지고 가며 설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생일이 빨라 학교를 1살 일찍 들어갔다. 엄마 말에 의하면 학교 입학 전에는 한글도 모르고, 손가락에 힘도 없어 글씨도 잘 쓰지 못했다는데, 배울 시기가 되었는지 입학하며 손에 힘도 생기고 한글도 금세 익혔다고 한다. 엄마가 달력 두 장을 붙여 뒷장에 만들어 벽에 붙여 놓은 자모음 음절표를 보고 시시때때로 가로로 세로로 읽어보기도 하고 받침도 붙여가며 가나다라, 거겨고교, 각각닥락, 강경공굥 등 한글을 익히며 놀았었다.

깨인 엄마의 예습, 복습 시스템 아래 나는 1학년 때 또래보다 작지만 우수했던 학생이었나 보다. 그 시스템은 그 해 겨울에 늦둥이 막냇동생이 태어나며 사라졌지만 말이다. 

생활통지표는 우수수 화려했지만 나의 목소리는 좀처럼 학교에서 들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손을 들어 선생님께 내 의견을 한 번도 말해보지 못했다. 수줍어 도저히 손을 올릴 수 없었다. 2학년 때까지도 그랬던 것 같다.  물론 선생님께서 지목하여 묻는 말에는 답을 했지만 자발적으로 먼저 말을 하진 못했다. 나의 목소리 볼륨은 우리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커졌고, 동네를 나가면서 줄어들었다. 

 


 

 이제는 먼저 말하거나 물어보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생각이 많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의 수많은 가능성과 장점을 숨기고 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한다. 

 그렇지만 지금도 나는 말로 의사 표현하기보다는 글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만약 글이 없었더라면 나의 많은 부분은 세상에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나의 모습을 아주 조금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을 좋아하며 매일 찾았던 일기장, 친구들 지인들과 나눴던 수많은 편지들, 연애시절의 편지, SNS의 세계에서의 담론들과 대화를 통해 나의 다른 일면들을 보일 수 있었다. 




 서울공예박물관에서 만난 연필, 글자의 힘이 좋아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는 목공연필을 골라 샀다. (목공연필은 목공을 할 때 사용하는 연필인데, 작업하다가 연필이 굴러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납작하게 생겼다고 한다.)

 글은 무생물에게 살아있는 가치를 부여한다.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나기도 한다. 

 나의 모습도 그런 글을 통해 잘 보였으면 한다. 

 나의 글을 통해 나도 성장하였으면 한다. 저 글처럼 의미 있고 깊고 넓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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