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셨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내가 드린 생신 축하 카드를 보고 아주 잘 썼다며 금일봉을 주셨다.
지금은 컴퓨터로 글을 쓰면 저장이 쉽지만 손글씨로만 글을 썼던 그 시절, 아버지는 내게 다른 사람에게 편지 보내는 것도 다 써 놓으라고 하며 그것이 너의 기록이고 작품이 된다고 하셨다.
외강내유형인 아버지는 어린 아기들이 보면 울음을 터뜨린다는 외모에 보드랍디 보드라운 감성을 가지고 계셨다. 보이고 싶진 않으셨겠지만 우리에게 훈계의 말씀을 하시다가 울컥하며 우신 적도 있으시다. 그런 감성으로 글도 잘 쓰셔서 우리 아이들의 돌 축하메시지는 언제 봐도 가슴을 울린다.
누군가 자신은 아버지가 농부 셔서 농부의 딸이라 식물 심고 키우는 것을 잘한다고 했다.
'나는 누구의 딸이라고 해야 할까?' 문득 생각을 해 보았다.
농부의 딸? 아버지가 농촌에 사셨지만 농부라고 하기엔 땅에 들어가서 일한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군인의 딸? 아버지는 해사중퇴! 집안을 위해 입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살기 위해 학교를 나왔다고 하셨다.
교사의 딸? 비인가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셔서 나이 들어서도 선생님이라 찾아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시는 고마운 제자들도 계셨지만 교사의 기간도 길지 않으셨다.
양계장의 딸? 이건 좀 맞는 듯하다. 아버지가 지속한 직업 중 그중 가장 길게-7~8년- 한 일이고 내 학창 시절에 많이 뵙던 모습이라 익숙하다. 그러나 성실한 직원들은 돈을 모아 나갔지만 아버지는 빚만 안고 살던 지역이 신도시가 되며 양계장을 접으셨다.
학자의 딸? 양계장을 접으신 이후로 아버지는 생계와는 상관없이 좋아하는 혼자만의 공부를 독학으로 계속하셨다. 일어도 수준급으로 파고 또 파고, 기막히게 정리하고, 늦게 늦게 드디어 본인의 신앙이 생긴 아버지는 성경도 파고 또 파고 기가 막히게 정리하고 ……. 여건이 허락하여 아버지가 학자가 되었다면 본인의 장점이 가장 빛을 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홀어머니 밑에서 맏아들과 같은 둘째로, 가정에 책임을 지고 싶어 했던 동생 많던 아버지가 눈 질끈 감고 혼자 성공을 하고 싶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렇다면 우리 아버지가 되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그런 인성으로는 엄마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정신을 사랑한다.
돈이 없어도 앞뒤 가리지 않고 형제의 어려움을 어루만지는 마음, 아이들에게 투박한 사랑을 표현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아픔을 마음으로 느끼고 잘못된 것은 잘 보지 못하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는 그런 마음, 돈 앞에서 돈보다 집안의 질서를 위해 어른의 모습으로 큰일을 결정하셨던 아버지!
현실을 생각하면 물러날 법도 한데 정의나 대의라고 생각하면 얽매이지 않고 대책 없이 그런 결정을 내리는 아버지가 난 좋았다. 후에 현실의 어려움을 짊어졌을 엄마의 깊은 마음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결혼한 이후에 사랑의 마음을 편지로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전화를 받으면 "아빠 사랑해" 한 번 해보라고 농담으로 말씀하시며 듣고 싶어 하셨던 그 말씀을 한 번도 해 드리지 못했다.
아버지가 하늘로 가신 날은 아름다운 가을날이지만 해마다 여름을 닮은 듯한 성격의 아버지가 세상에 태어나셨던 이 여름의 생일을 혼자 기념한다.
나는 아버지의 딸!! 가끔은 아버지의 생각이 궁금하다. 아버지의 정신과 감성을 기억해 본다.
낭만가의 딸~!! 이게 좋겠다. 이런 대표적 정의를 생각하느라 저장만 해두고 바쁘다는 핑계로 두 계절을 넘겨 버렸는데, 가을을 보내며 오랜 글 속의 내 마음을 보니 이 말이 적절한 듯하다.
낭만적인 삶을 산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현실에서는 어려움이 많았으나 그 정신의 소중함을 알기에 나는 낭만가의 딸로 그 정신을 따라 부유한 마음의 소유자로 살고 싶다.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신지 어언 20년-체감을 못했는데 숫자로 쓰니 세월의 흐름이 너무 빨라 무게감이 크다- 7월 여름에 아버지를 기념하며 쓴 글인데 어느덧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아름다운 가을도 뒤로 하고 가을의 끝자락 아니 겨울의 문을 여는 11월 말에 이 글을 마무리한다.
고운 낙엽이 끝까지 일 년의 수고로움을 아름다움으로 장식하며 화려하지만 조용히 풍성한 다음 해를 준비하러 겨울을 맞이하듯, 아버지의 딸인 나는 그의 정신과 마음을 더 풍성히 잇고 싶은 마음을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용히 기록으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