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을 걷다

by 달숲

사업을 접고 투자 쪽에서 경제적 자유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은 건 이미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의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는 동안에도 나는 돈에 대한 공부를 계속했었다. 유튜브에도 다양한 돈벌이에 관한 영상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스토어를 키운 경험을 유튜브에 공유하며 유명세를 탔던 주언규 PD의 신사임당 채널을 즐겨보았다. 그 채널에서는 다양한 돈벌이에 성공한 일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돈에 대한 생각과 돈을 벌었던 방법을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돈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있는지 늘 궁금했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세상에 돈 버는 방법이 이렇게 많았다니. 각자 가지고 있는 사연도 돈 버는 방법도 제각각 달랐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자기 힘으로 부를 일구어 냈다는 것. 그동안 나는 부자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쉽게 부를 축적했거나 조상에게 상속받은 재산이 많은 금수저일 것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나와 동시대를 사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수성가해서 큰돈을 벌고 있었다니 놀랍기도 했고 희망적이기도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어딘가에 취직을 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된 듯 희망에 부풀었다. 이미 스마트스토어로 사업을 살짝 맛본 상태였기에, 다른 방법으로도 돈을 버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때 난 스마트스토어를 하면서 번 돈으로 주식 투자를 조금씩 하고 있었다. 금융 문맹에 가까웠기에 책을 읽고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계좌 만드는 방법부터 공부했다. 그렇게 나도 조금씩 주식을 샀다 팔았다 하는 식의 개미투자자 대열에 합류했다. 장사든 투자든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서 이윤을 남기는 것이 돈을 버는 기본 원리였다. 단지 이 상품의 가치가 얼마인지, 언제 사고 언제 팔아야 할 가격인지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었다. 설거지나 요리, 청소 등의 집안일을 할 때에나 운동을 하러 나갔을 때 귀에 이어폰을 끼고 돈 공부하는 유튜브 채널을 들었다. 평소처럼 신사임당 채널의 인터뷰를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날은 박성현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달러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투자라고 하면 주식 투자나 부동산 투자만을 떠올려 왔는데, 달러 투자라니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게다가 돈을 한 푼도 잃지 않는 투자법이라니. 나의 물려 있는 주식 계좌가 떠오르며 귀가 솔깃했다.

먼저, 달러를 산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환전에 대한 개념부터 이해해야 했다. 원화를 달러로 바꾸는 것, 해외여행을 갈 때 은행에서 하던 그 ‘환전’을 말하는 것이었다. 환전으로 돈을 번다고? 쉽게 말해서 달러가 가격이 쌀 때 샀다가, 달러 가격이 오르면 다시 다시 팔아서 원화로 바꾸는 행위를 하면서 이윤을 남기는 걸 달러투자라고 한다고 했다. 환전을 할 때 은행이나 증권사 등의 플랫폼에서 수수료를 알아서 떼고 개인은 환전으로 인해 이익이 발생해도 따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투자를 할 때 세금 계산을 일일이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니 아주 심플해서 맘에 들었다. 일단 박성현 작가가 쓴 달러투자에 관한 책들을 다 사서 읽어봤다. 그리고 그의 온라인 강의를 모두 들었고, 오프라인에서 하는 고급 강좌까지 전부 들었다. 기본적으로 박성현 작가는 ‘세븐스플릿’이라고 자신이 이름 붙인 투자 방법을 권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원금을 크게 일곱 덩어리로 나누어서 분할 매수, 분할 매도를 하는 방법이었다. 차트 읽는 법이나 종목 투자 방법 등을 강의하는 대신에 분할 매수, 분할 매도를 정해진 원칙대로 실행해 수익을 내는 법을 가르쳤다. 사고파는 타이밍은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겠지만 원칙을 지키는 방법만으로도 투자를 시작할 수 있다니 나도 해볼 만하겠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리고 달러라는 투자 대상은 상장폐지 될 일도 없는 안전한 종목 아닌가. 나름 주식 투자보다 안전한 투자라고 판단이 되었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단 적은 돈으로 환투자를 시작하고 감을 익혔다. 환율은 각 국가 간의 돈의 가치 변화에 따라 등락이 생기기에 그 기울기가 한쪽으로만 계속 쏠리는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등락 폭이 좁은 대신 하루에도 여러 번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 지표 발표에 따라 오르고 내리는 흐름이 있었다. 타이밍을 잘 맞추고 원칙을 지키면 하루에도 여러 번 사고팔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수익률이 안정되자 원금을 늘릴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같은 방법으로 원금만 커진다면 수익률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던 여유 자금을 모두 긁어모아 투자금을 키웠다. 그리고 투자 일기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박성현 작가가 운영하는 카페에도 가입을 해서 투자일지를 남겼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 쪽지가 왔다. 박성현 작가의 ‘선을 넘는 달러 투자’ 강의까지 다 듣고 투자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끼리 톡방을 만들어 좀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함께 해보자고. 나는 기쁜 맘으로 그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 나를 포함해서 일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렇게 환투자 크루가 형성되었다.


의욕적으로 서로 정보를 나누고 경제공부를 하며 투자하는 크루들을 만나니 나도 열정이 불타올랐다. 이제 막 투자금을 키우고 이것으로 돈을 제대로 벌어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각자 다양한 분야에서 투자 경험도 많은 분들이라 내가 배울 점이 많았다. 그때 나는 아이들 등하교를 차로 도와주고 있었다. 우리나라 증시가 시작되는 아침 9시 전에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집으로 서둘러 돌아와 컴퓨터에 달러 차트를 띄워 놓고 핸드폰으로는 각 플랫폼별 환율 고시를 확인하며 그날의 매수와 매도 포지션을 정하고 거래를 시작했다. 또 환투자 크루들과는 그날의 중요한 경제 지표 발표 일정이나 각자 거래 내역을 실시간으로 카톡방에 공유하며 정보를 주고받았다. 집이 곧 나만의 딜링룸으로 변하는 시간이었다.


잠이 많은 아이 둘을 깨우고 챙겨서 차로 등교, 등원을 시켜야 하는 아침은 늘 부산했다. 중학생 아들은 SUV 조수석에 태우고, 어린이집 다니는 꼬맹이는 뒷자리 카시트에 앉혀 벨트까지 잘 채우고 출발! 얼른 데려다주고 딜링룸으로 출근해야지. 일찍 나서면 좀 마음의 여유가 있을 텐데 어쩜 이렇게 매번 시간에 딱 맞춰서 나서게 되는지. 그래도 멀리서 보이는 신호등이 주황불로 바뀌는 걸 본 이상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안전이 최고지. 교차로 앞 정지선에 맞춰 차를 세우고 대기하는데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뀐 직후 옆 차선에서 승용차 한 대가 액셀을 밟으며 빠르게 좌회전을 한다. 위험하게 운전하네, 생각하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와 등, 배에 장풍을 맞는 듯한 큰 충격이 몸을 관통한다. 그와 동시에 차가 앞으로 쭈욱 밀려서 교차로로 나간다. 서둘러 브레이크를 잡고 차를 세우자마자 뒷자리에 앉은 둘째 아이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뒤쪽 유리창이 산산이 부서져 차 트렁크 쪽으로 밀려 들어와 있는 게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귓가에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엄청난 공포가 밀려오며 패닉 상태에 빠졌다.


괜찮니? 괜찮아?

응 괜찮아.


아이들의 상태를 체크하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벌벌 떨렸다.


빨리 일어나 사고 처리를 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머릿속이 멍할까. 머릿속에 뿌옇고 습도 높은 안개가 꽉 찬 느낌이다. 일단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를 알리고 와 달라고 한다. 뒤에서 우리 차를 들이받은 용달차 운전자 아저씨가 다가와 우리의 안전을 확인하며 아이들에게 연신 사과를 한다. 아저씨가 미안해. 아저씨가 미안해. 차를 안전한 도로 가장자리로 옮겨두고 둘째 아이가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한 후 품에 안아 달랬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지만 아이들보다 괜찮지 않았던 것은 나였던 것 같다. 괜찮냐는 말만 반복하는 엄마를 보며 자기는 괜찮은데 엄마는 진짜 괜찮은 거냐고 물어봐주던 아들. 내게 안긴 여섯 살 둘째 아이까지도 울음을 멈추고 '엄마, 괜찮아, 괜찮아'하며 작은 팔로 나를 토닥이며 안아준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견인차 두 대가 남편보다 먼저 도착했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이제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디 부러지거나 피 나는 곳은 없는데 머리가 왜 이리 멍하지? 119 안 부르고 병원은 알아서 가면 되는 건가? 오늘 둘째 아이는 어린이집 체험학습 가는 날이고 중학생 아들은 곧 시험인데 등교는 어쩌지? 차는 자기들에게 맡겨두고 일단 병원부터 가시라는 이 사람들 말을 믿어도 되나? 여러 사람들이 달려와 한꺼번에 웅성거리며 말을 하는 통에 가뜩이나 안갯속 같던 머릿속이 더 뿌예지는 느낌이다. 이제 막 개장한 내 딜링룸은 또 어쩌고. 이렇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갯속을 걸어가는 게 인생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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