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차로 이동했다. 작업실에 앉아서 해야 할 일들 리스트를 살펴보았다. 책도 읽고 싶고, 자수 작업도 하고 싶고, 브런치 글쓰기도 다시 하고 싶은데 유튜브에 올려야 할 영상도 밀려 있었다. 드라마 유튜브는 이제 수익화를 달성하기까지 누적 시청 시간 수가 절반 정도 남았다. 지금까지 한 만큼만 열심히 하면 수익화 달성이다. 그때부터는 올리는 영상마다 돈을 벌어다 줄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의 다음화 예고 영상을 열심히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은 터였다. 그러니 오늘 작업실에서 해야 할 일 1순위는 유튜브 편집 일이다. 경제적 자유를 가져다줄 가능성이 있는 일에 항상 1순위 자리를 내어줘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다른 돈 안 되는 일들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경제적 자유. 내가 몇 년 동안 끌려 다니고 있는 화두였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 정말 오기는 올까?
띠리리리리.
“엄마 어디야?”
“응, 엄마 작업실이야. 우리 강아지 잘 잤어?”
“응.”
“거실 테이블에 오늘 공부할 문제집 올려뒀어. 풀고 있으면 엄마 일 정리하고 얼른 갈게.”
“응. 얼른 와.”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오늘도 유튜브 편집 작업을 열심히 하던 중 둘째 아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영상부터는 내레이션을 ai 음성이 아닌 내가 직접 녹음을 해보기로 했기에 대본을 쓴 후 녹음 작업만 겨우 마친 상태였다. 이제 영상과 내레이션을 섞어서 편집하는 일이 남았다. 매주 새로운 화가 방영되는 드라마의 특성상, 다음 화가 방영되기 전에 예고 영상을 서둘러 만들어야 했다. 이번 주 안에 예고 영상을 만들고, 나는 다른 우선순위에서 밀린 일들을 할 수 있을까. 둘째 아이 전화가 왔으니 이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도 역시 자수 작업이나 글쓰기 등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몇 달 동안 시달리던 쫓기는 마음, 체한 것 같던 마음이 방학이 되니 더 심해졌다. 내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된 상태에서 이제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는 것을. 매일 드로잉 일기를 쓰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 내가 느꼈던 기쁨을 통해.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제 다시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흔히 중년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나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이 넘치는 열정과 호기심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자기의 가능성을 발견해 나가는 시기라면, 중년에는 그중에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나이라고들 한다. 젊은 시절 수많은 도전과 시행착오 끝에 찾은 한 가지 길을 선택해서 집중함으로써 성과를 내는 시기가 중년이라고. 하지만 만약에 그동안의 경험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면? 새로운 도전은 하면 안 되는 나이일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다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 무수히 많은 인생의 선배님들이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체력이 좀 부족하여 마음만큼 몸이 잘 따라주지 않거나, 뛰어들고자 하는 사회 조직에서 신입으로 잘 뽑아주지 않는 제약이 따를 뿐 중년의 나이에도 어떤 일이든 새로 시작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0대~30대의 나는 문학, 출판, 도서관, 자수 등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책과 예술의 세계를 기웃거리며 지내왔다. 그 뒤로 중년에 접어들며 한 가지 길을 선택해 집중해야 할 나이에 의도치(?) 않게 늦둥이 둘째를 출산하게 되었다. 남편까지 아프게 되면서 나는 육아와 살림, 가족 돌봄에만 전념하기로 맘먹고 운영하던 자수 공방 문을 닫았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던가, 나는 그냥 엎어져 있는 대신 인생을 새로 설계하는 시기로 삼기로 했다. 내가 지금이라도 나를 바꾸지 않으면, 아픈 남편 대신 가장 역할을 해야 하는 날이 왔을 때 우리 가정을 책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이 깔려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도 벌써 8년이 지나간다. 그 시간 동안 내가 걸어오던 방향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의 새 길에 서서 다른 젊은이들처럼 나의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십 년 만에 다시 아이를 낳고 새롭게 육아 인생을 시작했으니, 나이도 다시 십 년 정도 젊어졌다 생각하고 도전하는 젊은이처럼 살아보자 마음먹었다. 모든 걸 새롭게 다시 배웠다. 그리고 그 방식에 맞춰서 나를 바꿔가려 부단히 애써왔다. 처음 도전하는 인생인 것처럼. 어차피 늦둥이 둘째 육아도, 중년의 나이도 다 처음 경험하는 거니까.
파주에서 운영하던 자수 공방을 접은 후 나는 남편 직장과 친정이 가까운 부천으로 이사를 왔다. 불안은 호시탐탐 나의 빈틈을 노렸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요즘 트렌드에 맞는 책들을 빌려다 보기 시작했다. 경제경영서 혹은 자기 계발서라고 불리는 책들을. 문학을 공부하고 예술가의 길을 쫓는 동안에는 한 번도 눈길을 줘본 적 없던 분야의 책들이었다. 그 안에는 내가 걸어보지 않았던 길을 걸어온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조언이 적혀 있었다. 생의 비밀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 책들을 탐독했다. 자기 성찰과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며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기 위해 외로운 길을 걸어가는 예술가들과는 전혀 다른 화법으로 말하는 책들이었다. 이렇게 확신에 차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성공의 길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독자들을 가르치는 책들이라니. 가르쳐주는 대로만 따라 하면 나도 부에 이를 수 있을까. 지금 나에게는 돈이 절실한데?
자기 계발서를 읽고 돈 공부를 시작하며 제일 처음 마주한 난관은 돈에 대한 내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돈을 터부시 하는 마음이 강했던 나에게는 그 돈이 지금 내게 절실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도 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돈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굴며 예술만을 쫓아 살아오던 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바꿔야 했다. 글쓰기 강사, 학원 강사, 출판사 편집자, 도서관 사서, 자수 공방 운영 등등 다양한 일을 해서 생계를 꾸릴 동안 마음은 늘 예술이라는 콩밭에 가 있었다. 생계를 겨우 꾸릴 정도의 돈만 벌고 나는 항상 다른 세계를 꿈꿨다. 나를 숨 쉬게 하는 것은 예술이었고, 내가 최고의 가치를 두는 일도 예술이었다. 돈 따위에 큰 가치를 두지 않았으니 돈을 적게 벌어도 자존심 상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자본이 최고인 세상에서.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았다. 첫째 아이를 낳고 자급자족을 꿈꾸며 텃밭농사를 짓고, 사교육 대신 책육아로 아이를 키우고, 분리수거장에서 주워온 가구를 리폼해서 쓰고 주방용품점에서 사 온 저렴한 스테인리스 용기들을 직접 만든 주머니에 담고 텐트와 돗자리 하나만 가지고도 캠핑을 떠났다. 매일 작은 기쁨들로 채워가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하지만 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돈이 없다는 건 아픈 가족을 살릴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직은 남편의 투석이 잘 되고 있고, 일도 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 우리가 이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 돌봄이 필요하고, 남편에게도 자신과 가정을 돌봐줄 아내가 절실한 상황이었으니 일단은 돌봄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며 한편으로는 우리 가정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나의 정체성을 바꾸는 일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 내가 쫓았던 삶의 가치와 정체성을 송두리째 바꿔야만 가능한 삶이었다. 나도 돈이라는 걸 공부해 보자. 도대체 자본주의는 무엇인가. 나와 우리 가족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중년의 나이에 경단녀인 내가 가장이 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내 나이의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은 사회 안에서 돌봄이 필요한 영역이거나 서비스직 등의 단순 노동직이 대부분이었다. 전문 자격증(사서,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등)을 요하는 직군조차도 여성이 다수인 직군일 경우 이상하게도 남성들이 다수인 직군의 월급에 비해 적은 급여를 받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 직군에서 받는 급여로는 한 가정을 꾸려 나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었다. 내가 해오던 일들만 하더라도 그랬고, 심지어는 같은 직장에서 같은 업무를 하는 남성 직원에게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많은 연봉을 주기도 했다(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다시던 회사의 사장은 당당하게 이 사실을 회의 때 이야기 했다.) 내가 다시 직장에 나가 받게 될 월급으로는 지금 남편이 떠맡고 있는 가장의 역할을 내가 대신 짊어질 수 없었다. 다른 돈 버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우리 집의 가장이 되고 싶었다.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말만 들어도 얼마나 달콤한가.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진 사람이 될 수 있다니. 돈이 최고인 것처럼 이야기 하는 세상에서, 돈이 아닌 예술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살고 싶었고, 그놈의 돈 생각 좀 안 하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오히려 늘 돈에 쫓기고 항상 돈 생각(걱정)을 하며 살게 된다. 이번 달 카드값은 얼마인지, 아이들 학원비와 대출 이자는 얼마인지 늘 계산하고 식구 중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돈 걱정이 앞서는 인생을 살게 된다. 돈 버는 방법에 대한 강의들을 유료로 결제해서 듣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라고 했다. 사업과 투자. 그중에서 나는 사업의 기본을 먼저 배우기로 했다. 코로나가 전세계를 휩쓸고 지나가 집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있어야 하던 시기였다. 아이들을 집에서 돌볼 수 있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온라인 사업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스마트스토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공부했고, 배운 대로 사업자를 내고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위탁판매에서 시작해서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대량의 물건을 좀더 저렴한 가격으로 직접 구입해서 판매하는 사입을 시작했고, 직접 상품 사진을 찍어 상세페이지를 만들었다. 상세페이지를 직접 만들며 카피 문구를 작성하는 일을 제일 좋아했다. 내가 판매하는 물건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문구를 작성하고 그것이 매출로 이어지는 즐거움. 매출이 오르면서 점점 장사에 재미도 붙어갔다. 택배 상자를 포장하며 하루하루 뭔가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재미를 느껴갔다. 첫째를 키울 때처럼 아이가 아플 때나 아이가 울고불고 엄마와 못 떨어질 때에도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어서 기뻤다. 직장에 출근해서 내 시간을 저당 잡히지 않고도 돈을 버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온라인 사업을 시작하고 월 매출이 몇 백만 원 단위로 늘어날수록 클레임이 들어오는 횟수도 늘어갔다. 강의에서도 이미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온라인 사업을 처음 해보니 클레임이 들어올 때마다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다. 어떤 물건을 판매할지 물건을 발굴하고 상세페이지를 작성하고, 업체에 주문 발주를 넣고, 주문 들어온 물건들을 포장하고 택배 발송하는 등 하루에 처리해야 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클레임 전화를 한통만 받아도 통화와 처리 시간까지 하면 30분~1시간까지 시간이 들었다. 거기에 정신적 에너지도 엄청나게 소모되었다. 갑질 한번 해보는 게 소원이었던 사람처럼 작은 불만에도 크게 소리부터 지르는 막무가내 고객을 상대하는 게 가장 고역이었다. 장사꾼으로 살려면 간 쓸개 내놓고 살아야 한다더니, 새롭게 배워야 할 것들이 정말 많은 날들이었다. 특히나 매출이 크게 늘어난 상품은 위탁으로 판매하고 있던 냉동식품 쪽이었는데 배송 관련 클레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냉동창고를 계약하고 상품을 사입해서 직접 관리를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월 매출이 천만 원을 바라보자 사업의 규모를 키워야 하는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사업은 확장되는 각 단계마다 끊임없이 재투자와 변화가 필요했다. 시간도 돈도, 규모도. 나는 사업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월 천만 원만 벌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더 자유로워질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사업이 커질수록 책임져야 할 부분도 더 커지고 내가 쏟아부어야 할 시간은 그만큼 더 늘어났다. 여기서 사업을 더 키웠다가는 나는 영원히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는 사업을 키우는 대신 접기로 했다. 나의 목표는 더 많은 돈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였으므로. 이번엔 사업 말고 다른 방법으로 그 목표를 이뤄보기로 했다. 그 무렵 투자 공부도 함께 하고 있었기에 그 길을 다시 걸어가보기로 했다. 어떤 길이든 내가 이 가정을 책임지고 꾸리며 내가 원하는 예술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이길 바라면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지만 일단 나는 발을 내딛기로 했다.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만 있다면 나는 돈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내 모든 시간을 예술에만 쏟는 사람이 될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