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남편을 쉬게 해주고 싶은 마음, 가장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돈 공부였다. 하지만 그렇게 경제적 자유라는 말에 홀려 사업을 하거나 투자를 하면서도 한편으론 책을 읽지 못하고 자수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늘 불안해했고 죄책감을 느꼈다. 이러다가 영영 내가 사랑했던 세계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그러던 중 겪게 된 교통사고는 나에게 자수 작업을 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돈에 미쳐서 예술을 버린 것이 아니다. 어차피 아파서 작업을 못하는 중이니 돈이라도 열심히 벌자. 미치면 미친다고 했으니, 빨리 돈에 미쳐서 경제적 자유를 얻어보자 싶었다. 그때까지 꿈은 잠시 접어두기로.
그렇게 나는 돈 버는 일에 점점 미쳐 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라는 생각에 더 매달리듯 집중했다. 이번에 내가 새롭게 세팅한 나의 정체성은 전업투자자였다. 하루의 모든 일과표는 투자 루틴에 맞춰졌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실시간 환율부터 확인했다. 그날의 환율과 관련된 경제 뉴스를 체크하고 첫 환율 고시에 맞춰서 달러를 살지, 팔지 포지션을 정했다. 아이들을 서둘러 챙겨서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놓고 집에 돌아와 9시에 열리는 환시장 거래를 준비했다. 거실 창 바로 앞에 컴퓨터 책상을 놓고, 모니터 두 개에 달러와 달러엔 차트, 각 은행별 실시간 고시 환율 등을 화면 가득 띄워 두고.
오전 9시는 국내 증시가 시작하면서 환율 가격 변동이 가장 활발한 시간대 중 하나다. 이미 9시 전부터 크루들과 톡방에서 아침 인사를 나누고 첫 고시에 맞춰 포지션과 거래를 준비한다. 개장 십 분 안에 그날의 첫 수익이 결정 난다. 이후 새로 정한 포지션으로 수익을 내는 건 10시 30분 중국장 시작을 노린다. 컴퓨터 화면에 띄워 놓은 달러 1분 봉 차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증시가 열리고 차트 변동이 심한 시간에는 각 은행이나 증권사별 환율 고시에도 차이가 크다. 그때를 놓치지 않아야 했다. 각 플랫폼 사이의 갭을 이용해서 매수 매도를 반복하며 수익을 냈다. 크루들과는 실시간으로 이러한 정보를 주고받았는데 이때를 우리는 무한루프가 열렸다고 표현했다. 영화 속에 나오는 타임 루프처럼 세상의 시간과는 관계없이 우리에게만 열리는 새로운 세계. 우리는 그 루프가 닫히기 전까지 가능한 한 많은 거래를 성사시키며 수익을 내야 했다. 차트 변동이 너무 심한 날은 거래를 하는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초긴장 상태로 수 회, 혹은 수 십 회의 거래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서 바깥 풍경을 보면 나무가 바람에 살랑거리는 평화로운 모습이 너무나 생경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격동적으로 돈을 벌거나 잃는 세상이 스마트폰 화면 속에 있는데, 바깥세상은 너무 평화롭기만 한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의 모든 감각들은 차트 속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숫자로만 존재하는 세계.
차트 움직임이 잠잠해지는 시간대에 점심을 먹고, 잠시 허리 운동을 하며 집안일을 하거나 한의원 치료를 다녀왔다.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 중에도 수시로 컴퓨터 화면의 차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음식 준비를 하는 주방에서도 차트가 한눈에 들어오게 모니터 각도를 조절해 두고 생활했다. 이후로도 오후 5시에는 런던장이 열리니 이 시간을 피해서 아이를 픽업하거나 놀이터에서 놀게 해야 했다. 아이가 노는 동안 무한루프가 열리면 나는 다시 스마트폰 속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엄마를 부르는 아이에게 건성으로 대답을 해주는 날이 늘어갔다. 거래가 복잡해지고 반복될수록 기억해야 할 것이 많으니 메모도 늘어갔다. 다이어리와 일기, 불렛저널 등의 기록을 좋아하던 나의 습관 속에서 모든 기록은 매매일지로 변해갔다. 책도 투자를 더 잘하기 위해 투자 관련 책들을 읽어야 했다. 잠깐씩 아이와 도서관에 들러 읽고 싶은 문학 책을 잔뜩 빌려와도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좋아하던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우선하게 되었다. 당장 돈이 되는 일이 늘 우선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벌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벌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벌자. 열심히 벌어서 새로 이사 온 집의 대출금도 갚고, 두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학원도 보내고 제철 과일과 맛있는 음식도 맘껏 먹이고 싶었다. 그냥 남들 다 하고 사는 것들을 걱정 없이 누리는 정도가 내가 돈을 버는 목표였다.
점점 모든 생활이 환투자 일정에 맞춰졌다. 밤 10시 30분이나 11시 30분에는 미국장이 열리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재우다가도 차트가 미친 듯이 움직이면 모든 걸 팽개치고 누워서 핸드폰으로 거래를 했다. 잠자리에서 매일 책을 읽어주던 루틴도 생략하는 날이 늘었다. 엄마 지금 돈 벌어야 해 아가야. 얼른 자라. 이뿐 아니라 밤 10시 이후부터 자정을 넘어 1~3시까지, 원유재고나 금리 발표 등 다양한 미국 경제 발표도 수시로 있었다. 하루 종일 긴장을 놓지 않고 지내느라 너무 피곤했지만 잠에 쉽게 들 수도 없었다. 새로운 일에 미쳐서 살면서 교통사고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흐려졌으나 수면장애 증상은 날로 심해졌다. 자다가도 수시로 잠에서 깼고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핸드폰 화면부터 확인했다. 머릿속이 온통 숫자와 차트로 가득 찼다. 포지션을 반대로 잡아서 손실이 난 날은 만회할 때까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일어나 움직일 기운이 나질 않으니 종일 누워서 차트만 들여다보곤 했다. 약이 없으면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수익이 좋은 날은 모든 피로를 잊을 만큼 몸이 가벼웠다. 도파민 샤워를 한 기분이었다. 기분이 좋은 날은 치킨이지. 아이들이 사달라고 하는 배달음식도 맘껏 사줬다. 몸이 아프면 안 되니 한의원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았고 고가의 영양제를 사 먹었다. 재활치료를 위해 1대 1 필라테스 수업을 등록했고, 집에는 운동기구를 설치했다. 가사 노동에 들어가는 시간과 체력이 아까워서 가사도우미 이모님을 쓰기도 했다. 스마트폰 넓은 화면에 여러 은행 플랫폼을 동시에 띄워서 거래할 수 있는 폴드폰도 새로 장만했다. 도파민 샤워를 한 날일수록 지출도 과감해져 갔다. 매매일지로 쓰는 수첩은 벌써 여러 권째 기록이 가득 찼다. 수첩 안에 숫자들은 쌓여갔는데 이상하게 현실 속에 돈은 쌓이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들처럼 돈들은 자꾸 빠져나갔다. 그리고 기록하고 돌아보지 않은 나의 소소한 일상들도.
투자에 빠져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ㅇㅈ 언니의 암 선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교통사고 이후 계속 내 건강을 걱정해 주며 컨디션이 좀 좋아지면 이사 온 집에도 놀러 오기로 약속했던 언니가 암이라니.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관리를 잘해왔던 언니였기에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 언니를 보러 집에 갔을 때 산소통에 연결된 콧줄까지 끼고 있는 언니를 보고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심각하게 여길까 봐 일부러 더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언니를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다행히 언니는 얼마 뒤 콧줄을 빼고 호흡을 하는 데에 적응을 해나갔고 산소통 없이도 지낼 수 있을 만큼 증상이 호전되었다. 그렇게 치료를 잘 받으면 암도 나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때때로 몸에 좋은 샐러드와 싱잉볼을 싸들고 언니네 집을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화는 저절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로 귀결되기 마련이었다. 언니에게는 하나뿐인 아들이 그러했다. 언니의 남은 모든 시간과 맞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유일한 것은 언니가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이었다. 언니는 모든 시간을 책을 읽고, 아들을 챙기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 내는 데에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서 괴로워했다. 그 마음이 너무 잘 이해가 되었다.
언니를 만나고 온 날이면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지금 지나치게 생산성에만 치중한 채 살고 있었다.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언제까지 내가 원하는 일상과 삶을 뒤로 미루고 살아야 하는 걸까. 전 세계 환율의 흐름은 하루 24시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다. 파도가 멈추지 않는 바다처럼. 처음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신이 났다. 잠을 줄이고 투자에만 미친 듯이 몰입하며 지냈다. 크루들도 마찬가지였다. 1년 가까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삶이 쉽게 피폐해졌다. 그래도 돈 버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은행에서 좀 더 높은 환전 우대를 얻기 위해 다양한 상품에 가입을 했고, 수익을 늘리기 위해 투자금을 끌어모으며 빚도 늘어난 상황이었다. 게다가 매달 수익이 늘어난 만큼 아이들 학원비처럼 나가야 하는 고정지출도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나 있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매일 수익을 내는 일 말고는 다른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내 마음 상태였다. 작은 꽃을 들여다보는 일도, 바람을 느끼며 여유 있게 산책을 즐기는 일도, 새로운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 일도 더 이상 크게 즐겁지 않았다. 더 자주 외식을 하고 여행을 다녔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환투자 생각뿐이니 지난 시간을 회고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기억하거나 기록하지 않은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가버렸다. 나는 방향을 잃어버린 경주마 같았다. 무한루프 안에 갇혀 방향을 잃고 달리기만 하는 경주마.
멈추고 싶어도 멈추는 법을 잊은 경주마처럼 달리며 지내던 날들 중에 ㅇㅈ 언니가 좀 더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가면서 대부분의 살림과 책도 거의 다 버리고 갈 거라며 말하던 언니는 내가 잊고 지내던 꿈을 상기시켜 주었다. 노년에 시골 마을에서 작은 도서관을 꾸리고 살겠다던 꿈. 한쪽에 ㅇㅈ서가를 만들 테니 그때까지 문학책들을 잘 모아뒀다가 기증해 달라고 했던 이야기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 미친 질주를 멈춰야 했다. 지금 멈추지 않는다면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ㅇㅈ 언니가 이사 간 집 뒷산에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흙길이 있으니 와서 함께 걷자고 했다. 언니네 집에 가서 함께 뒷산에 올라 맨발로 흙길을 걸었다. 차갑고 보드랍고 말랑한 촉감이 발바닥에 골고루 퍼졌다.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진흙들이 간질간질 기분 좋았다. 내가 놓치고 살고 있던 수많은 일상의 감각들도 그렇게 간지럽혀 다시 깨우고 싶었다. 투병생활 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있는 언니가 존경스러웠다. 나는 놓친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 두고 온 꿈들을 다시 찾고 싶었다. 언니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나의 시간도 영원하지 않았다. 이제 시간을 아껴야 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투자와 일상의 균형을 찾고 싶었다. 일상에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지키자고 마음먹었다.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책을 읽고 함께 잠을 자기로.
나를 새롭게 바꾸는 일보다 돌아가는 일이 더 어려웠다. 이미 한쪽으로 치우친 채 살아온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고 강한 자극에 길들여진 뇌는 집중력을 잃어버렸다. 책을 읽으려다가도 쉽게 집중이 흐트러지며 차트 생각이 났다. 환율 변동이 적을 때에는 삶 자체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밤에 깊은 수면을 하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니 낮시간에 지루하게 느껴질 때에는 수시로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 차트가 바뀌어 있어 거래를 할 때 반짝 신이 났다. 더 긴박하고 극적인 상황에서 수익을 낼 때에만 도파민이 쏟아졌다. 모든 일상은 거래가 잠시 한산해지는 환율 변동이 심하지 않은 시간대에 후다닥 해치우듯 이뤄졌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유치원과 달리 일찍 집에 오게 되면서 이제 투자에만 미쳐 지낼 수도, 내 꿈을 다시 찾는 일에 집중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육아와 살림이라는 돌봄 노동의 비중이 가장 커지는 초등학교 1학년 시기였다.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써야 했으나 나는 정신적으로 그럴 힘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집안 곳곳에 배치해 둔 딜링룸에, 살림과 돌봄에 쉽게 주의를 빼앗겼다. 이대로 지낸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어디엔가 두고 온 나를 찾고 싶었다. 그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절실했다. 그렇게 나는 덜컥 방을 구했다. 2024년 여름, 내 나이 마흔여섯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