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조할인 Oct 16. 2019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후기

유머는 진솔한데 구성은 아쉽다

<박나래의 농염주의보>가 오늘 10월 16일 국내 넷플릭스에 런칭되었다. 원래 넷플릭스에서 스탠딩 코미디를 즐겨보는 팬의 입장에서 이 작품이 꽤 궁금했었기에 업로드되자마자 봤다. 이전에 넷플릭스에서는 유병재를 내세워 두 편의 스탠딩 코미디 작품을 제작했다. 유병재의 스탠딩 코미디 같은 경우, 해외의 스탠딩 코미디들을 꽤 많이 참고하고 연구했다는 것이 티가 많이 난다. 작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에피소드 별로, 그리고 공연 전체를 통틀어서 구성이 잘짜여져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공연들에 큰 재미를 못느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유병재의 연기력 때문이다. 코미디언 출신이 아니다보니 너무 짜여진 대본대로  딱딱 진행하는 게 티가 났고, 그가 가진 찌질한 캐릭터만으로 한시간 공연을 채우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층과 인종이 뒤섞인 해외와 달리 국내 관객 대부분이 젊은 여성들인데, 유병재의 공연은(특히 'B의 농담') 전체적인 구성이 주요 관객층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짜여진 게 아닐까하는(재미 유무를 떠나서) 개인적인 생각도 든다. 그런 점에서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유병재의 공연과는 정반대의 느낌이 들었다.


박나래는 이번 공연을 통해 코미디언 짬밥을 허투루 먹은 게 아니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보통 코미디 프로에서 그녀가 주로 보여준 모습은 과한 분장이나 당하는 리액션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모습은 예능 속 그녀의 캐릭터에 좀 더 가깝다. 그리고 19금 딱지가 붙은 공연답게 더 노골적인 이야기도 아무렇지 않게 풀어낸다. 술과 남자, 연애와 섹스라는 센 키워드들을 자신의 에피소드로 적절히 양념쳐서 관객들의 공감과 재미를 끌어내는데, 공연에서 몇 번 언급한 것처럼 상당히 높은 수위를 얘기하면서도 동시에 적절한 선을 지킨다. '에이미 슈머'가 비슷한 내용으로 보여준 넷플릭스 스탠딩 코미디 <에이미 슈머 : 가죽 의상 스페셜>이 더럽기만 하고 끔찍하게 재미없던 걸 생각하면,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는 적당한 음담패설(?)과 망가짐을 선보이며 재미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성을 보자면 많이 아쉽다. 몇몇 굵직한 에피소드들로 1시간을 이끌어가는데, 거의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다보니 뒤에는 텐션이 떨어진다.(심지어 박나래도 약간 지친 기색이 보인다.) 사실 이번 공연 자체가 잘 짜여진 쇼나 제대로 된 스탠딩 코미디라기보다 그냥 박나래의 여러 19금 썰풀이를 듣는 정도라서, 넷플릭스로 봐서 망정이지 88000원을 주고 직접 관람했다면 훨씬 아쉬웠을 것이다. 말하는 주체가 박나래라 특별할 뿐이지 에피소드 자체가 재밌거나 유머가 뛰어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진행하는 것도 뭔가 좀 중구난방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지루하지 않고 볼만 했지만, 만약 박나래가 다음에도 스탠딩 코미디를 한다면 좀 더 구성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어보인다. 재미는 없었지만 구성 자체는 꽤 괜찮게 짜냈던 유병재의 쇼들을 참고해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쇼의 장점도 있다. 여성 코미디언의 쇼인지라 대다수의 여성 관객들에게 좀 더 쉽게 재미와 공감을 이끌어냈고, 이는 전체적인 쇼의 분위기에도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많은 해외의 스탠딩 코미디 쇼에서(특히 넷플릭스) 남자 코미디언은 기승전 트럼프, 여자 코미디언은 기승전 우먼파워에 대한 똑같은 레파토리를 이야기하며 결국 메시지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박나래의 쇼는 순수하게 웃음에만 집중한 점도 좋았다. 일단 코미디 쇼는 웃기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결과적으로 쇼 자체는 절반의 만족과 절반의 아쉬움을 안겼다. 하지만 박나래라는 코미디언 자체가 순발력도 좋고 연기도 되고 썰 자체도 맛있게 풀어내는 편이라, 괜찮은 작가와 쇼를 짠다면 다음에는 더 나은 무대를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제미니 맨]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