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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할인 Oct 23. 2019

[82년생 김지영] 후기

말하고자 하는 것과 보여주는 것의 괴리감

화제와 논란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유명세는 익히 들어서 안다. 페 미고 어쩌고 사상이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서 백만 부나 팔린 점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상당히 떨어진다는 책 리뷰들을 많이 접했어서 도대체 영화로 어떻게 만들지는 상당히 궁금했다. 게다가 정 유미와 공유까지 캐스팅됐으니 쉽게 외면하긴 힘들었다. 그래서 일단 봤다. 20명 남짓한 극장에 남자는 나 혼자였고, 울지 않는 사람도 나 혼자 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영화 자체는 별로였다.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의 경력 단절과 육아 우울증, 그리고 그녀가 자라면서 사회가 가한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건 좋았지만, 그 과정은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원작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 김 지영은 가끔 다른 사람으로 빙의를 하는데, 이런 점은 <툴리>가 생각나기도 했다. 하지만 <툴리>에 비하면 연출이 다소 아쉽다. 서툴다고 느껴질 만큼 감정과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쏟아내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신파로 보일 정도였다. (여성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많은 눈물을 자아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놀라웠던 점은 남자 캐릭터 중에 제정신으로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공유가 분한 남편이나 김지영의 남동생 등 후에 변하는 캐릭터들은 여럿 나오지만, 첫 등장에서 모두 놀랄 만큼 무심하고 미숙하다. 하나하나 언급하는 게 의미가 없을 만큼 영화 속 모든 남자 캐릭터들은 하자가 있다. 이를 직접적으로 계속 지적하는 김지영 언니의 캐릭터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로, 영화 속 남자 캐릭터들은 지켜보는 것 자체가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멍청하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그나마 이해를 하려면 할 수 있다만, 갑자기 등장하는 몰카나 스토킹, 맘 충 언급은 뜬금없었다. 갖은 압박을 견뎌내고 기어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김지영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좀 더 집중했으면 좋았을 텐데, 영화에서 끝도 없이 등장하는 남자 빌런(+시월드)들은 영화 속에서 시대에 맞춰 변화하려는 남자 캐릭터들의 노력마저도 물거품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건 좀 트집 같아 보일 수도 있는데, 영화 속 미술이나 의상이 마치 일일드라마처럼 세련되고 깔끔해서 현실적인 내용을 말하는 영화와 따로 노는 듯했다. 집에서도 깔끔하게 옷을 갖춰 입고 육아를 하는 모습이나 몇몇 장면은 유니클로 에어리즘이나 히트텍 광고나 가전제품 광고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처럼 영화는 개인적으로는 큰 울림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누군가의 딸, 엄마, 아내가 아니라 '김지영'이라는 자아를 다시금 찾아가는 모습에 더 집중했으면 좋았을 텐데, 영화는 강박적으로 메시지와 교훈을 던지려고 집착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극장 내를 가득 채우는 훌쩍이는 소리는 이 영화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김 지영의 모습, 특히 김지영과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부분에서 많은 공감과 감동을 느끼는 여자 관객들을 보면서 영화의 함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이 영화를 홍보하는 여자 연예인에게, 그리고 영화 게시물에 물음표를 단 남자 연예인에게 달린 각기 다른 성별의 코멘트들을 지켜보고 있자면, 영화가 과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아니면 성별과 제도에 대한 분노와 갈등에 더 큰 불을 지필 것인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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