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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할인 Oct 30. 2019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 후기

1,2편의 유산을 발판 삼아 다시 도약을 꿈꾸다

인디언식 기우제의 성공률이 100%인 이유는, 바로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보면 인디언식 기우제가 떠오른다. 돈 되는 시리즈를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할리우드의 노력 덕분에, 2편의 영광을 계속해서 까먹어가면서도 꾸역꾸역 후속작을 내놓았다. 정통 속편을 내보기도 하고, 미래를 배경으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시퀄 겸 리부트를 하기도 하며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해왔다. 이제까지의 시도는 모두 좋지 않았는데, 이번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이하 '다크 페이트')는 <할로윈>(2018)처럼 2편 이후의 속편은 아예 폐기 처분해버리는 놀라운 카드를 꺼내 들며 엉망이 된 시리즈에 극약 처방을 내린다. 그간의 노력이 가상해서일까? 아니면 드디어 '린다 해밀턴'이 합류해서일까? <다크 페이트>는 메말라가던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결국 한줄기 빗방울을 선사한 듯 보인다.  



<다크 페이트>를 보면서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와 <에이리언 3>, 그리고 앞서 말한 <할로윈>(2018)이 떠올랐다. <다크 페이트>가 2편에서 바로 이어지고 원년 멤버들이 복귀하는 '정통 3편'이긴 하지만, 앞으로 시리즈를 이어나갈 명분과 어느 정도의 서사 정리는 필요하긴 했다. 그래서 영화는 극초반에 <터미네이터 2>에 대한 집착을 떨쳐내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는 영화의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이 된다. 영화의 전개가 매끄러우면서도 뭔가 애매한 가장 큰 이유는, 분명 포커스는 신 캐릭터에 다 맞춰져 있는데 정작 극을 이끌고 가는 건 뒷방 늙은이들인 구 캐릭터들이기 때문이다. 이젠 극의 중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엄청난 포스를 뿜어내는 린다 할머니가 중추가 되지 않았다면 이번 시리즈도 꽤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역시나 빠지면 안 되는 존재다 보니 여차저차 재등장하는데, 이처럼 구 캐릭터가 두 명이나 등장하다 보니 신 캐릭터들의 특색이 많이 사라져서 아쉽다. 마치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처럼 말이다.



다행히 새로운 캐릭터인 ‘그레이스’를 연기한 ‘맥캔지 데이비스'는 거의 핵간지 데이비스 수준으로 활약하는데, 오함마를 골프채처럼 휘두르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배우의 키가 커서 액션도 시원시원하고 연기도 괜찮은 편이었으나, 아쉽게도 '대니'와 2편의 '존 코너'와 'T-800'만큼의 유대감을 보여주진 못한다. 이건 신캐릭터이자 새로운 인류의 희망인 '대니'라는 캐릭터가 되게 재미없는 것이 문제다. 사라 코너랑도 겹치면 안 되고, 존 코너랑은 더욱 겹치면 안 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다보니 대니라는 캐릭터는 끝까지 자신만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덩달아 배우의 존재감도 상당히 떨어진다. 이는 새로운 빌런인 'Rev-9'도 마찬가지다. 이미 악당 터미네이터가 보여줄 수 있는 건 2편의 'T-1000'이 다 보여준 탓이 큰데, 이건 비교 대상이 2편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거 같긴 하다.



그리고 <다크 페이트>가 볼만한 오락 영화 그 이상의 놀라움을 주지 못한 건 기술적인 부분도 크다.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터미네이터 1,2>는 지금 봐도 '와 저거 어떻게 찍었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당시 기준으로 혁명에 가까운 기술력과 놀라운 박진감을 선보인다. 물론 유기적으로 엮인 이야기와 캐릭터, 주제와 함께 아날로그 액션 특유의 박력과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CG를 적절히 섞어내는 연출력이 관객들의 컬처 쇼크를 자아냈다. 하지만 CG와 특수효과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요즘은 극장에서 색다른 놀라움을 느끼기는 힘들다. 그래서인지 기술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아이러니하게도 기술력에 발목을 잡힌 느낌이 든다.  



이처럼 <다크 페이트>는 과감한 선택과 준수한 오락성으로 다시 한번 프랜차이즈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와 기술력에서 더 이상 새로움을 주기는 힘들고, 남은 것은 추억 팔이와 함께 시대정신을 이어가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겉절이 취급을 받아도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는 '사라 코너', 아니 '린다 해밀턴'이 아직은 건재하다는 점이 그나마 <터미네이터> 시리즈에 남은 몇 안 되는 희망의 불씨처럼 보인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있었지만 2편의 이름값만 내려놓고 본다면 나름 볼만한 오락 영화의 몫은 해낸 <다크 페이트>였는데, 이번 편은 꼭 다음 시리즈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P.S. - 1편과 2편의 오마주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복습하고 관람하는 것을 추천(유튜브 5분 요약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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