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로도 가려지지 않는 부실한 기초 공사
2019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지만 연말 특수를 노린 극장가는 반대로 불이 붙었다. 작년 겨울의 아픔을 잊기 위해 각 배급사들이 속속들이 작품을 공개하는 가운데 CJ가 꺼내 든 카드는 바로 <백두산>이다. 백두산 화산 폭발이라는 소재, 260억이라는 제작비, 하정우, 이병헌, 마동석 등 충무로에서 잘 나간다는 배우들을 죄다 긁어모은 캐스팅, CJ와 덱스터의 합작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대치는 하늘을 찔렀다. 촉박한 제작 기한 때문에 후반 작업에 허덕이던 영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피어올랐지만, 그래도 기본은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었다. 하지만 공개된 영화는 예상을 뛰어넘는 부실함을 선보이며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질주하던 CJ에게 제동을 거는 헛스윙이자, 한국 상업 영화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이정표가 될만한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백두산>의 가장 의문인 점은, 후반 작업이 미흡하다 못해 엉망인 게 눈에 보이는데 연말 특수를 굳이 고집했어야 했냐는 것이다. 당장 주연 배우 이병헌의 인터뷰만 봐도 부족한 후반 작업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낼 정도다. 아무리 오락성을 주로 내세운 상업 영화인 것을 고려하고 봐도 너무 말도 안 되는 개연성, 텔레포트를 쓰는 듯한 인물들의 이동 거리와 동선, 그리고 실소를 자아내는 편집 등 영화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든다. 게다가 흥행에 대한 강박이 보일 정도로 안전장치 클리셰들을 쏟아부었는데,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영화의 발목만 잡는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톤 앤 매너가 엉망진창이다. 도대체 만들고 싶었던 것이 재난 영화인지 첩보 영화인지 코미디 영화인지 액션 영화인지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락가락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볼거리도 충분하지 못하다. 초반 서울에서의 지진 시퀀스는 나름 볼만했지만, <백두산>에 나오는 액션, 재난 시퀀스들은 대체로 짧다. 뭔가 보여주나 싶더니 후다닥 끝나버리기 일수다. 그리고 대부분 뿌연 화면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다보니 사실 CG도 그리 뛰어난지 잘 모르겠다. 특히 최후반부는 거의 <신과 함께 3> 프로모 영상처럼 보일 정도로 CG 퀄리티가 그리 좋지 못했다. 차라리 <해운대>가 그랬듯이 머니 샷을 후반에 집중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코미디는 싹 걷어내고, 전반부에는 긴장감 넘치는 첩보전을 그리고 후반에 폭발 및 재난, 액션 시퀀스를 몰아넣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260억 원이라는 제작비를 투자했다는 말은, 손익분기가 700만이니만큼 절대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과감함과 신선함보다는 익숙함과 상업 영화의 흥행 공식을 포기하지 못한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려고 하지만, <백두산>은 그 정도가 너무 과했다. 화산 폭발 장면 하나를 보여주기 위해 흥행 코드라고 쓰고 식상함이라고 읽는 클리셰들을 쑤셔 박아 넣었고, 이처럼 부실한 기반 위에 더 부실한 후반 작업의 결과물만 더해졌을 뿐이다. 그놈의 흥행 시즌이 뭐길래 260억이나 들였음에도 이런 습작 같은 결과물을 내놓아야 했는지 그저 안타까움만 느껴진다. 2019년에 다섯 편의 천만 영화가 나왔고 이 중 네 편은 이른바 비수기에 개봉한 작품들이었다. 점점 대체재가 늘어만 나는 요즘, 과연 시즌과 흥행 코드, 스타 배우만 믿고 영화를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엇보다 <백두산>이 손익분기를 넘고 천만을 넘을지, 아니면 <군함도>나 <PMC>처럼 될지, 그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P.S. - 백두산 폭발보다 북핵과 미사일이 더 무섭구먼, 왜 맨날 악당은 미국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