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은 없어도 즐거움은 있다
<스파이 지니어스> 시사회에서 <온워드>, <뮬란> 등 디즈니 예고편들이 공개되는 걸 보니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되었다는 것이 실감 나긴 한다. 하지만 <스파이 지니어스>는 어디까지나 폭스사의 영화고, 이 영화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 주는 것 또한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로고다.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도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 <리오> 시리즈 등으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디즈니에 인수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지라 <스파이 지니어스>의 오프닝이 더 반갑다. <스파이 지니어스>는 블루 스카이 스튜디오 작품답게 메시지는 심플하고 오락성은 준수하다.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은 아닐지 몰라도 극장에서 보는 순간만큼은 꽤 즐겁다.
<스파이 지니어스>는 잘 나가는 스파이지만 팀플레이는 모르는 '랜스 스털링'(윌 스미스)와 비폭력주의자이면서 엉뚱한 천재인 '월터'(톰 홀랜드)가 힘을 합쳐 악당 '킬리언'(벤 맨델슨)에게 맞서는 이야기이다. 문제는 월터가 발명한 정체불명의 액체 때문에 랜스가 다름 아닌 비둘기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이 이상한 팀은 자신들에게 씐 누명도 벗어야 하고, 새로 변한 랜스의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지구 평화도 지켜야 한다. 그래서인지 102분의 러닝타임 내내 우당탕탕 뛰고 구르며 쉴틈 없는 빠른 전개를 선보인다. 꽤 단순한 설정을 잔재미로 가득 채운 영화여서 생각해보면 빈 틈이 많은 영화이지만, 다행히도 영화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대놓고 윌 스미스와 톰 홀랜드의 외모는 물론이고 배우들의 레퍼런스까지 그대로 옮긴 캐릭터들이 주는 재미도 상당하고, 귀에 착착 감기는 OST들을 비롯해 액션도 꽤 뛰어난 편이다.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다운 슬랩스틱 코미디를 포함해 세계 각국의 아름다운 풍광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덕분에 보는 즐거움도 크다. 그리고 의외로 놀라운 점은 영화가 생각보다 성인 취향에 맞춰서 있는데, 특히 영화 속 유머들이 그렇다. 그래서인지 시사회 현장에서도 아이들보다 부모님들이 더 즐거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볼 수 있었는데, 좋게 말하면 온 가족이 즐기기 좋고 나쁘게 말하면 타겟층이 약간 애매하긴 하다. 설 연휴를 앞두고 오락성 앞세운 작품들이 줄줄이 공개되고 있는데, 그 틈을 <스파이 지니어스>가 얼마나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P.S. - '레이첼 브로스나한'(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즐), '라시다 존스'(더 오피스, 팍스 앤 레크레이션), '카렌 길런'(닥터 후, MCU) 등 미드 영드를 즐겨보는 팬들에겐 반가운 목소리들이 많으니 놓치지 마시길
- 아무리 K-컬처의 위상이 올라갔다고 해도 여전히 너드들이 주 소비층인가 싶기도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