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빌보드] 후기

불확실한 미래를 넘어서는, 서로의 연대

by 조조할인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의 잔치가 될 거라고 별 생각없이 예상했던 이번 아카데미였지만, 어쩌면 오히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들러리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쓰리 빌보드'를 보고 든 생각이다. '킬러들의 도시'라는 훌륭한 블랙 코미디를 만들었던 '마틴 맥도나'는 이번 작품 '쓰리 빌보드'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브리주'를 벗어나 '에빙'이라는 가상의 도시로 향한 그의 시선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이 서있고, 불확실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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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강간 당했고, 불타 죽었다. 8개월이 지난 후, 엄마인 '밀드레드'는 세 개의 간판에 쓴 세 개의 문장으로 세상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녀의 광고는 존경 받는 경찰서장인 '월러비'를 무능한 경찰로 그려내면서, 조용했던 마을이 조금씩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이런 '쓰리 빌보드'의 간단한 시놉시스만 접하면 이 영화가 '블랙 코미디'라는 점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다루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고, 끝나고 나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일어나기 힘든 영화이긴 하다. 그래서 '쓰리 빌보드'의 유머는 더 뜬금없고, 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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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는 총 세 번의 화재가 등장한다. 밀드레드의 딸인 안젤라가 불타 죽을 때, 밀드레드가 경찰서에 불을 지를 때, 그리고 광고판이 불태워지는 총 세 번의 화재를 통해 에빙이라는 작은 동네는 조금씩 요동친다. 세 번의 화재는 서로의 꼬리를 물고 물리게 만든다. 안젤라의 죽음은 공권력을 돌아보게 만들고, 밀드레드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차별적인, 그리고 무기력한 경찰들에 대한 반항으로 경찰서를 불태워버린다. 마지막으로 밀드레드의 간판을 불태워버린 인간은 사건과 누구보다 밀접하고 밀드레드와 가까웠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세 번의 화재를 통해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기도,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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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느 한 쪽의 편만을 들지 않고, 서로의 관계가 물고 물리면서 선악의 구분은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이 와중에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한다는 너무나도 직접적인 대사가 가장 멍청하면서 가장 이성적으로 보이는 인물에게서 나온다는 점이 웃기면서도 씁쓸하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범인은 잡히지 않는다. 이런 불투명한 현실과 속에서 점점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서로의 연대다. 맞서야 할 것은 서로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서로 맞잡아야 한다는 것을 영화 속 인물들은 뼈저리게 웃으면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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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빙이라는 도시가 트럼프 시대를 살아가는 작은 미국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차별과 편견, 그리고 폭력으로 얼룩졌던 마을이 분노는 내려놓고 서로 간의 연대를 통해 나아간다는 점이 더 인상 깊다. 당장 내일의 모습은 어떨지 몰라도, 내일의 희망을 꺼트리지 않으려면 서로의 손을 잡아야 한다. ‘쓰리 빌보드’의 이 예측 불가한 블랙 코미디를 유려하면서도 묵직하게 담아낸 ‘마틴 맥도나’의 각본과 연출도 최고지만, 이를 110% 이상으로 그려낸 배우들의 열연도 눈부시다. 분노와 죄책감, 희망과 절망을 속으로 터트리는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여우주연상을 받아 마땅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지닌 캐릭터들을 잘 묘사한 우디 해럴슨과 샘 록웰은 왜 남우조연상에 동시 지명됐는지 스스로 증명해낸다. 유독 쟁쟁한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이지만, 마지막에 웃는 작품은 ‘쓰리 빌보드’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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