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토냐] 후기

리얼리티 쇼처럼 들여다본 미국의 민낯

by 조조할인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동계올림픽도 막을 내렸다. 아쉽게도 김연아는 스케이트를 벗었지만, 그녀가 떠난 빙판 위는 또다른 이야기로 써내려져갔다. 다양한 종목에서 성과를 거두면서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올림픽이었기에 그 여운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래서 올림픽의 열기가 채 식기 전에 찾아온 '아이, 토냐'가 더 흥미롭다. 국가대표 팀추월 경기에서 쏟아져나온 여러 잡음들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정작 원인 제공을 하게 만든 빙산 연맹보단 특정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고, 미디어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선수들은 아예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들의 실수 위에 얹어진 여론의 무게에 끝이 없었을 뿐이다. 이미 특정 시선으로 개인을 재단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아이, 토냐'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한다. 물론 두 이야기의 경중은 다르지만, '아이, 토냐'가 가진 시선은 흥미로우면서도 날카롭고, 무엇보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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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토냐' 영화를 두고 범죄자에 대한 미화가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아직 토냐 하딩이 낸시 캐리건에게 공식적으로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기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아닌가하는 걱정도 당연하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전혀 토냐를 또 다른 피해자로 그리거나 미화를 하거나 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아이, 토냐'는 마치 한편의 리얼리티 쇼처럼, '토냐 하딩'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고 피습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신명나게 그려낸다. 처음부터 이 이야기가 '실화'가 아니라 토냐와 제프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음에도 영화가 토냐의 편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녀 자신도 결코 좋은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변명은 더 구차해보이면서도 '토냐 하딩'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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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냐 하딩'은 삶 자체가 영화같은(물론 밝은 영화는 아니다) 인물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강압적인 어머니, 그럼에도 타고난 재능과 미모,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라이벌, 그리고 모든 커리어를 스스로 발로 차버리게 만든 자신의 사랑까지,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그녀를 쌓아올리고 또 무너뜨린다. 토냐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토냐를 갉아먹지만, 그녀는 그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단지 핑계를 댈 뿐이다. '그건 내 탓이 아니야'라며 끝없이 핑계를 늘어놓지만, 아쉽게도 '굿윌헌팅'처럼 '그건 네 탓이 아니야'라며 등을 토닥여줄 인물은 없다. 오히려 핑계가 나름 이해가 갈만큼 있는 것만 못한 엄마, 차라리 죽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은 남편, 죽어서도 쓸모가 없을 것 같은 남편 친구 등등 주변관계도 엉망진창이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꼬리를 물고 물어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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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 속 인물들은 어처구니 없을만큼 미성숙해보인다. 그럼에도 마치 바보들의 행진마냥 올림픽을 향해 한발한발 내딛는 걸 보면 기가 막힐 정도다. 중간 중간 삽입된 인터뷰는 마치 영화가 일종의 재연극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판단을 관객들에게 유보하는 효과도 준다. 영화는 이 과정을 마치 블랙코미디처럼 유쾌하게 그려내는데, '토냐 하딩'이라는 한명의 인물을 두고 다양한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롭다. 비뚤어진 모녀 관계나 정신나간 사랑 이야기같은 개인사뿐만 아니라, 실력이 아니라 보여주기식으로 대표된 피겨 스케이팅의 실상에 대한 시선도 날카롭다. 알맹이가 아닌 보여지는 이미지에 점수를 매기는 피겨 스케이팅은, 무엇보다 불티나게 이미지를 팔아대는 미디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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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아이, 토냐'는 '토냐 하딩'이라는 인물이 '악녀'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악녀'가 되었는지에 대한 민낯을 마치 리얼리티 쇼처럼 재치있게 그려내는데 성공한다. 그 민낯은 마치 미국이란 나라의 민낯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 자체가 그녀를 위한 변명보단, 그런 시대를 살아간 그런 인물에 대한 자화상처럼 보인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허상, 과열된 미디어의 비교, 또 자신의 악명조차 다시 한번 돈벌이에 써먹는 토냐의 모습을 정말 뜨겁게도 빙상 위에 그려냈다. 끝끝내 자신의 '악명'마저 팔아먹는 '토냐 하딩'의 모습은, 그녀야말로 미국 그 자체 같았다는 오프닝의 대사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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