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함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아서 좋다
개인적으로 불륜을 다루거나 극 중에서 바람피는 영화나 드라마를 상당히 싫어한다. 특히나 불륜을 '어른의 사랑'이니 중년에 찾아온 진정한 사랑이니 뭐니 포장하는 거 진짜 싫다. 사랑은 두 사람의 믿음이 기반이 되는 거라 생각하는데, 바람이나 환승은 그 믿음을 농락하는 이기적이고 비겁한 태도다. 주변에도 바람 피는 사람들 있던데, 인간 취급도 안한다. 그래서 이 영화, 살짝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봤다. 재밌게 본 '스물'의 이병헌 감독이긴 한데, 아예 제목부터 대놓고 '바람'이라니. 하지만 보고나니 다른 미디어에서 바람을 다루는 것에 비해 차라리 이 영화의 태도가 낫다.
영화 속 인물들은 '척'하지 않는다. 천박한 자신들의 모습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고, 자신들이 나쁜 놈년들인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바람피는 사람들을 은근히 비꼬는 것처럼 보인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나, '끼리끼리 논다'라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전개도 그렇다. 자신들이 일탈이라고 행한 무책임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겪어봐야 아는 것이다. 한심한 인간들의 한심한 모습이기에, 그냥 담아내도 웃기긴 하다. 하지만 과연 진짜 바람핀 인간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웃을 수 있을까 싶다. 아니면 영화를 보면서 최소한 반성이라도 하길 바란다.
여전히 '이병헌' 감독의 통통 튀는 대사가 눈에 띄긴 하지만, '스물'에 비하면 약간 아쉽다. 그래도 선웃음 후눈물이라는 뻔한 한국식 코미디 전개가 아닌, 상황에서 오는 아슬아슬한 재미를 끝까지 선택한 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원작이 체코 영화여서 그런지 국내 정서와는 약간 맞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 나오기도 하는데, 덕분에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는 결말로 이어진다. 하지만 방생하지 말고 끼리끼리 모여살아라는 것처럼 보여 오히려 해피엔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섹스 코미디를 표방함에도 노출 수위는 그리 높지 않은데, 노출은 없다지만 내용이 내용인지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생각한다면 성인 관람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가볍게 볼만한 영화였긴 했는데, 극장에서 보길 잘한 거 같긴 하다. 딱히 웃기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 주변에서 꺄르르거리니 같이 따라 웃게 되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이 맛에 코미디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엘' 배우님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나오는데, 이제까지 본 거 중에 가장 분량이 많은 영화였지 싶다. 영화제 자봉하면서 뵌 적 있는데, 까칠할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너무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그 반전 매력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쭉 응원하고 있는데, 이 영화로 더 잘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