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스며들어 가슴을 적시다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은 인생 영화인 '퍼시픽 림'의 창조주이자, 크리쳐들의 아버지, 성공한 덕후인 '길예르모 델토로'의 신작이라는 것만으로도 날 설레게 만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평범하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의외로 영화는 가장 흔해빠진 소재인 '사랑'에 집중한다. 그것도 생각보다 고전적인 스토리 라인을 따라서 말이다. 국내에는 친절히도 '사랑의 모양'이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영화는 사랑의 모양에 집중하지 않는다. 당신이 무슨 모양이든, 무슨 색깔이든 신경쓰지 않는 게 사랑이다. 담는대로 모양이 변하는 물처럼, 사랑은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특별하다. 특별한 사람이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하다. 당신에게 끌리는 것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이다. '엘라이자' 또한 그렇다. 농아인이긴 하지만, 성인 여성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계란을 삶고, 자위를 하고, 출근을 하고, 이웃과 파이를 먹고, 때로는 뮤지컬 영화 속 주인공을 따라 발을 굴리는 그런 일상을 보낸다. 그런 그녀는 우연히 마주친 정체불명의 괴생명체에게 끌리게 되면서, 그녀의 평범했던 일상은 특별해진다. 똑같이 흘러가는 시간 속의 일상이, 존재 하나의 등장만으로도 빛난다. 그것이 그가 되고, 그가 당신이 되면서 그녀의 물처럼 흐르던 하루는 사랑으로 채워진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사랑도 없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당신을 온전히 끌어안아 주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 엘라이자는 그가 특별한 존재라서 끌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엘라이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껴안아준다. 둘은 서로에게 사랑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정성이 묻어나는 눈빛은 백마디 말을 대신한다. 아무런 조건없이 잡아주는 손만으로도 충만하다. 엘라이자는 그렇기에 그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그녀 자신도 두렵지만 말이다.
엘라이자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불완전하다. 심지어 냉전이 배경인 영화의 시대조차 그렇다. 물질과 폭력으로 채우려드는 권위적인 스트릭랜드, 과학자와 애국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호프스테틀러 박사는 이름만으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엘라이자를 돕는 조력자이지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갈등하는 자일스와 혼란한 시대를 흑인으로 살아가는 젤다도 그렇다. 흐릿한 시대에서 선명하게 빛나는건, 사랑이다.
델토로의 영화인만큼, 다양한 영화나 음악들의 레퍼런스들로 쌓여있지만, 굳이 이를 몰라도 상관은 없다. 그녀와 그가 사랑을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극장에서 둘이 바라보는 스크린 속 영화처럼, 어느 사랑이든 영화와 같은 순간이 있다. 그게 해피 엔딩이든 새드 엔딩이든, 그런 순간이 있다. 영화는 그와 그녀의 그 순간에 집중한다. 사랑의 모양과 색깔은 몰라도, 물처럼 스며들어 가슴을 적신다는 건 알겠다. 완벽하지 않은 당신을 온전히 끌어안고, 서로의 심장이 뛰는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게 채워진다는 것도 알겠다. 그리고 샐리 호킨스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팔자 주름을 가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이 영화, 사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