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료 없는 깔끔한 맛, 꼭꼭 씹어 먹고 싶은 영화
※브런치 무비 패스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요즘 SNS를 강타한 소년이 있다. 15살 농부가 그 주인공인데, 화제가 된 이유는 단순히 농사를 지어서만이 아니다. 인생 2회차, 부캐로 농사 짓는 중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달관한 듯한 무심한 말투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나긋나긋한 목소리 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이 소년의 인생의 목표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가족끼리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남들에게 욕 안먹고 부족하지 않게 돈 벌면서 살고 싶어한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는 하지만, 소년의 욕심은 그리 과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소년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삶의 우선 순위 때문이 아닐까 싶다. 늘 하루하루 바쁘게 쫓기고 살면서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잊고 있는 우리에게, 15세 소년의 혜안은 삶의 정수를 되돌아보게 한다. 차분하지만 부지런하게, 빠르진 않지만 쉬지 않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도 꼭 그렇다.
'리틀 포레스트'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일본 원작의 만화를 바탕으로 한다. 일본에서는 '하시모토 아이' 주연의 동명의 영화도 두 편이나 나왔다. 비록 원작 만화나 영화를 접하진 못했지만, 차분하고 감성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은 건너들었다. 그래서 이번 리메이크판, 즉 '한국화'에서 다소 걱정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이번 평창 올림픽 국가대표팀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가상 시나리오들을 그저 웃고 넘길 수 만은 없을만큼, 한국 상업 영화들에게서 이미 고착화된 공식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리틀 포레스트'도 그렇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영화는 앞뒤 다짜른 로맨스도, 강박증에 가까운 신파도, 쥐어짜내는 억지 웃음도 없다. 대신 봄의 따스함과 여름의 햇살, 가을의 풍요로움과 겨울의 고요함으로 영화를 채운다.
'혜원'(김태리 역)은 도망치듯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온다. 임용고시는 떨어지고, 연애는 실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그녀는 고향에 내려와 삼시세끼 밥을 짓고, 사계절을 온전히 보낸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성실하게 살아가며, 다시 한번 미래를 그린다. 영화는 이 과정을 욕심없이 잔잔히 보여준다. 단순히 음식을 예쁘게 담아내는 것에 급급하지 않으면서, 재료를 키우고, 다듬고, 음식을 만들고, 또 그 음식에 담긴 의미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혜원은 진정으로 배를 채우고, 자신을 채우며, 자신의 삶에 자신을 뿌리내린다.
푸드 포르노에 가까울만큼 영화 속 음식들은 맛깔스러우며, 풍경은 정겨우면서도 포근하다. 그렇다고 마냥 귀농에 대한 환상만을 부풀리지도 않는다. 많은 걸 내어주는 자연은 또 많은 걸 거둬간다. 이렇게 자연의 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일 일도 있지만은, 영화는 마냥 쓰러져 있지 말라고 토닥여준다. 올해는 안되더라도 내년에는 다시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듯이, 때로는 고기를 재우고 술을 숙성시켜야 더 맛깔나듯이, 삶에도 타이밍이 있다. 영화는 이 타이밍을 위해 급하지 않게 찬찬히 기다릴 줄 안다. 이 과정은 자극적이지 않지만 감동적이고, 억지스럽지 않게 미소를 띄우게 만들고, 뜨겁지 않지만 훈훈하게 마음을 뎁혀준다. 이런 영화의 잔상을 올해의 사계절이 지나도록 오랫동안 꼭꼭 곱씹어먹고 싶어진다.
부모님이 혼자 사는 나에게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밥 챙겨먹어라'의 깊은 의미를 이제 좀 알 것 같다. 조미료 잔뜩 들어간 편의점 도시락으로 단순히 허기를 가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배를 채운다는 의미말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스스로가 하는 음식이랬던 것처럼,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그 음식을 찬찬히 씹으며 나와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갖고, 또 그 음식을 나눌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밥 한끼에 담긴 의미가 아닌가 싶다. 한끼 식사일지라도 제대로 꼭꼭 씹어먹는다면 삶을 배부르게 하듯이, 주린 나의 마음도 든든히 채우고 싶어진다. 늘 허겁지겁 끼니를 떼우기에 급급했는데, 내일은 단촐하게라도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 먹어야겠다, 꼭.